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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영주와 현은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다. 제주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과 2등인 둘은 말 그대로 전도유망한 고3들이다. 두 청춘은 서로 사랑했다. 그런데, 분명히 콘돔을 사용했음에도 영주가 임신을 했다.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의 아버지들은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영주의 아버지도 현의 아버지도 어떻게든 임신을 중단시키려 한다. 임신 따위로 자식들의 ‘인생을 조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두 사람의 임신은 걱정 아니면 조롱거리다. 따라서 서울 의대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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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은 존재를 특징짓는 한 가지 속성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성별에 따라, 세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20대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이대남・이대녀, 586 등이 대표적으로 그런 말들이다. 선거가 끝나면 지도에 지역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시뻘겋게 혹은 시퍼렇게 지지율을 표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최근엔 서비스 노동자를 모집하는 까페에서 MBTI(성격유형검사)로 사람을 구별하여 어떤 유형의 사람은 우대하고, 어떤 유형의 사람은 아예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모집 공고를 붙여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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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 무심코 하는 말들은 대개 이 사회의 ‘정상성’을 반영한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은연중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노동인권 교육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물을 때가 있다. 어느 학교에서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남학교에선 ‘여친’이고 여학교에선 ‘남친’이다. 나는 학생들의 대답을 하나하나 칠판에 적다 말고 돌아서서 다시 묻는다. “여러분이 말하는 여친(남친)은 연인을 말하는 거지요?” 그리고 “남자라고 연인이 꼭 여자일 필요는 없으니까”하면서 학생들이 말한 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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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강의가 끝나고 보니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라서 무심히 지나쳤는데, 다음 날 전화기에 같은 번호가 떴다. 택배기사였다. 우리 집을 못 찾고 계시단다. 내가 찾기 쉽도록 설명하는데, 그 택배기사는 10초도 듣지 않고 “씨×”을 연발하더니 전화를 툭 끊었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다시 들은 건 육두문자뿐. 설명을 들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듣지 않고 연신 쌍욕만 해대면서 우리 마을을 뱅뱅 돌고 있다는 그는 전화를 또 끊어버린다. 나는 마을길에 나가서 기다리면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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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소년 약 4명 중 1명은 일주일에 3번 이상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지가 벌써 4년 전이다. 대학생이나 청년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지갑 사정이 좀 나은 직장인들은 버젓이 식당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조미료 듬뿍 들어간 ‘단짠’ 식단으로 한 끼를 때우기는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이런 사람들 앞에 TV 프로그램이나 1인 방송에서 과장된 감동을 연출하며 흔히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엄마 밥’이다. 유튜브에서 ‘엄마 밥’을 검색하면 스크롤을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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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혐오표현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10명 중 7명은 온·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는 웹툰, 개인 방송 등 혐오를 팔아 장사하는 산업이 번창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19년에 발표된 김지수의 논문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혐오 발언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에 따르면 여성 혐오 발언이 등장할 때 후원 수익금은 107% 증가하고 그 발언의 공격성이 높을수록 수익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혐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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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농민, ‘순수한’ 아이들, ‘꽃다운’ 청춘, ‘천사 같은’ 장애인, ‘위대한’ 어머니…….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특히 안타까운 희생자가 생겼을 땐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성명서, 정부나 고위 공직자의 발표문, 언론에도 수없이 등장하는 말들이다.얼핏 보면 긍정적인 말이고, 특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을 땐 목격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더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농민운동가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을 때 줄줄이 따라붙었던 수사가 바로 ‘순박한’ 농민이었다. 대체 이런 표현에 어떤 ‘정치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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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소리를 ○○1)하라!”세상에는 버스요금이나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 평생 몰라도 되는 사람들이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전셋값 폭등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매일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리고, 매달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쪼개 쓰고, 계약 기간이 끝나갈 때마다 불안해하며 집을 보러 다닐 필요가 없는 사람들.전체 인구 대비 장애인은 5.1%이고, 성소수자는 3~7%나 된다는데 왜 내가 일하는 직장엔 장애인이 없는지 몰라도 되는 사람들이 있고, ‘내 주변엔 성소수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건물에 경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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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페미니스트, 혹은 인권교육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아무 때나 지적질을 당할까 두려워하거나, 인권의 모든 사안에 대해서 나에게 정답을 요구하거나.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받는 일을 그리 두려워할까?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을 억울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흔히 언급될 만한 이 짧은 문장을 한 번 뜯어보자. 특별한 언급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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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왼손잡이인 아들이 죽어라고 오른손으로 글씨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엄마가 자랄 때와 달리 우리 집엔 아무도 너에게 오른손잡이가 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는데, 힘들어 죽겠다면서 넌 대체 왜,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느냐고. 아이의, 울분에 찬 비난이 속사포처럼 날아왔다. “엄마는 공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자는? 키보드 숫자판이나 엔터키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알아? 카메라 촬영 버튼은? 화장실 물 내리는 꼭지가 어디 붙어있는지는 알아? 엘리베이터 버튼은? 손잡이를 어떻게 해야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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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정상성은 ‘신체 건강한’, ‘젊은’, ‘남성’의 몸이 기준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이 원하는 ‘노동력’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이라도 자본이 원하는 노동력이 되기에 어리거나 늙으면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법과 제도에서 ‘장애인’을 정의하는 기준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재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판정하는 기준을 생각해보면 쉬운 얘기다. 여성의 몸은 신체 건강하고 젊더라도 노동력의 ‘재생산 도구’일 때만 정상으로 취급된다.이게 바로 여성은 약하지만, 모성은 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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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교육’에 참여한 남성들에게 ‘요즘도 성차별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다수가 없다고 대답한다. 자신들의 어머니 시대엔 성차별이 심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고. 심지어 젊은 남성들의 경우 요즘은 역차별의 시대라고 항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은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중 몇 가지만 간략하게 살펴보자.첫째, 2019년 한국 사회 남성고용률은 70.7%인데 비해 여성고용률은 51.6%다.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은 여전히 40%에 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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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하면 떠오르는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말하라면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1위를 꼽으라면 사실 ‘불편하다’가 아닐까?‘그동안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왔는데 언젠가부터 목소리를 높이는 시끄러운 여자들 탓에 세상살이가 불편해졌다. 이제는 그런 것도 알아야되는 시대가 됐다기에 물어보면, 까칠한 대답만 돌아와서 괜히 물어봤다 싶다. 성평등 교육을 받다보면 솔직히 공감이 되기보다는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든다. 여성 문제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생각해야 하고 더 중요한 문제에 집중해야 할 때도 많은데 여성들은 이기적으로 자기들 문제만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