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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2023.01.12 17:08
오늘은 그다지 반갑지 않은 상황을 곱씹어 보자고 제안한다.내가 만일, 내가 속한 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제일 먼저 어떻게 반응해왔을까? 사건이 아직 공론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먼저 알게 되었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내가 온라인상에서 폭로된 사건을 보았다면 나는 제일 먼저 어떻게 반응하는 사람이었을까? 만일 내가 피해자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반대로 내가 가해자와 가까운 사람이라면 내 반응은 같을까, 다를까?이런 상황에서 나는 사건의 경중에 따라 신중하게 반응해왔을까? 첫째, 똑같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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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2022.12.12 18:05
“넌 어쩌다가 이성애자가 되었니?” 이런 질문을 받아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바로 이 질문 앞에서 치열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2004년, 당시 민주노동당은 당직 선거가 한창이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성소수자 모임 ‘붉은이반’에서 당직 선거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보냈다. 그런데 성소수자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한 후보는 “동성애는 자본주의적 파행 현상”이라고 답변했다. 또 한 후보는 “동성애자 차별에는 반대하지만, 동성애자들이 언젠가는 비정상적인 동성애를 극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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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2022.11.11 16:00
살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사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건에 개입한다. 내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말을 보태는 순간 우리는 사건에 개입된다. 사건의 전말을 다 알든 모르든, 사람들은 자기들이 쏟아내는 말로 사건을 판단하고 규정한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사건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가령,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이 나왔던 이런 말을 생각해보자.“그러게 왜 외국 명절에 떼로 몰려가서 사고를 당해?”애초에 악의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닐 수 있다. 이 말은 그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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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07:57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들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청소년 약 4명 중 1명은 일주일에 3번 이상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는 기사가 나온 지가 벌써 4년 전이다. 대학생이나 청년들이라고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지갑 사정이 좀 나은 직장인들은 버젓이 식당 밥을 먹을 수 있지만, 조미료 듬뿍 들어간 ‘단짠’ 식단으로 한 끼를 때우기는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다.이런 사람들 앞에 TV 프로그램이나 1인 방송에서 과장된 감동을 연출하며 흔히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엄마 밥’이다. 유튜브에서 ‘엄마 밥’을 검색하면 스크롤을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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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1 14:55
우리는 자주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는 장면을 본다. 국민의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 표현의 자유와 혐오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등. 이런 현상이 최근에 새로 생긴 건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자기 의견을 펼칠 수 있는 세상에서 권리끼리 싸우는 일은 개인과 개인들 그리고 집단 사이에서도 이제 너무 흔해졌다. 장애인 이동권과 시민들이 불편을 겪지 않을 권리가 충돌하고, 어떤 남성들은 남성이 살기 힘든 게 페미니즘 때문인 양 여성 인권을 적으로 삼고, 어떤 여성들은 생물학적 여성의 인권만 챙기겠다며 인권에 서열을 매긴다. 학생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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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30 09:17
영주와 현은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다. 제주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과 2등인 둘은 말 그대로 전도유망한 고3들이다. 두 청춘은 서로 사랑했다. 그런데, 분명히 콘돔을 사용했음에도 영주가 임신을 했다.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의 아버지들은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영주의 아버지도 현의 아버지도 어떻게든 임신을 중단시키려 한다. 임신 따위로 자식들의 ‘인생을 조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두 사람의 임신은 걱정 아니면 조롱거리다. 따라서 서울 의대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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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5 10:51
추석에 전을 부친 아들에게올해 성균관에서는 ‘차례상 간소화 및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다지? 심지어 전같이 기름진 음식을 제례 상에 올리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고 했대. 명절마다 이른바 ‘진보 단체’에서는 ‘평등 명절’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더구나. 엄마는 궁금하다. 성균관과 그런 진보 단체들은 대체 ‘평등한 명절’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명절 음식을 간소화하고 음식 장만을 남성도 하면 평등한 명절? 너는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할 때마다 여성들은 몽땅 부엌에 서 있고 남자들만 절을 하는 모양새가 너무너무 싫다고 했었지.차례를 다 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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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1 19:12
‘라떼’는 “나 때는 말이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성세대를 희화화하는 표현이다. 젊은이들이 살아가야 할 현재를 더 어렵고 각박하게 만들어놓은 건 정작 기성세대들이면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일반화해서 자기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꼰대질’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그런데 요즘 우리 부부는 자주 서로의 ‘라떼’를 묻는다. “당신의 일곱 살은 어땠어?”, “당신이 옥인동에 살 때 얘기 좀 해봐.” 하는 식이다. 작년에 옆지기의 낙상 사고로 우리가 더 이상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절절한 실감, 건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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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2 16:05
갓난아기에게 울음은 거의 유일한 의사소통 방법이다. 아기의 울음소리 하나로 대개 엄마들은 아기가 졸린 건지, 배가 고픈 건지, 기저귀를 갈 때가 됐는지, 아픈 건지 등을 알아차린다. 의사소통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사람만 엄마가 되는 것도 아니고, 엄마라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엄마는 그만큼 아기에게 귀를 기울인 시간이 많고,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기의 필요에 응답해왔을 뿐이다. 주 양육자가 엄마가 아닌 경우엔 주 양육자가 그렇다. 아기의 요구에 얼마나 민감한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돌본 시간과 경험이기 때문이다.언어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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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5 13:47
노동조합이나 사회 운동 단체 안에서도 크고 작은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난다. 사람이 모인 집단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필연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노동조합이나 사회 운동 단체엔 특별한 도덕성으로 무장한 사람들만 모이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상 그렇지 않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평범한 사람 누구나 노동조합이나 사회 운동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사건・사고에 대비하여 우리는 규약이나 그에 상응하는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한다. 그러나 규약이나 제도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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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10:38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혹은 유일한 안식처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가장 위험한 곳, 폭력과 착취의 지옥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든든한 비빌 언덕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은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족들과 이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꽤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이미지는 우리의 생각과 감수성에 생각보다 강력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이성애자 부부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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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4 12:11
요즘 언론은 존재를 특징짓는 한 가지 속성으로 사람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성별에 따라, 세대에 따라, 나이에 따라,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20대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이대남・이대녀, 586 등이 대표적으로 그런 말들이다. 선거가 끝나면 지도에 지역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시뻘겋게 혹은 시퍼렇게 지지율을 표시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최근엔 서비스 노동자를 모집하는 까페에서 MBTI(성격유형검사)로 사람을 구별하여 어떤 유형의 사람은 우대하고, 어떤 유형의 사람은 아예 지원을 받지 않는다는 모집 공고를 붙여서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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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3 10:15
사람들이 흔히 무심코 하는 말들은 대개 이 사회의 ‘정상성’을 반영한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은연중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노동인권 교육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물을 때가 있다. 어느 학교에서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남학교에선 ‘여친’이고 여학교에선 ‘남친’이다. 나는 학생들의 대답을 하나하나 칠판에 적다 말고 돌아서서 다시 묻는다. “여러분이 말하는 여친(남친)은 연인을 말하는 거지요?” 그리고 “남자라고 연인이 꼭 여자일 필요는 없으니까”하면서 학생들이 말한 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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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1 15:49
필자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강의가 끝나고 보니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라서 무심히 지나쳤는데, 다음 날 전화기에 같은 번호가 떴다. 택배기사였다. 우리 집을 못 찾고 계시단다. 내가 찾기 쉽도록 설명하는데, 그 택배기사는 10초도 듣지 않고 “씨×”을 연발하더니 전화를 툭 끊었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다시 들은 건 육두문자뿐. 설명을 들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듣지 않고 연신 쌍욕만 해대면서 우리 마을을 뱅뱅 돌고 있다는 그는 전화를 또 끊어버린다. 나는 마을길에 나가서 기다리면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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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12:09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혐오표현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10명 중 7명은 온·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는 웹툰, 개인 방송 등 혐오를 팔아 장사하는 산업이 번창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19년에 발표된 김지수의 논문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혐오 발언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에 따르면 여성 혐오 발언이 등장할 때 후원 수익금은 107% 증가하고 그 발언의 공격성이 높을수록 수익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혐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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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2 12:37
‘순박한’ 농민, ‘순수한’ 아이들, ‘꽃다운’ 청춘, ‘천사 같은’ 장애인, ‘위대한’ 어머니…….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특히 안타까운 희생자가 생겼을 땐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성명서, 정부나 고위 공직자의 발표문, 언론에도 수없이 등장하는 말들이다.얼핏 보면 긍정적인 말이고, 특히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을 땐 목격자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더하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농민운동가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을 때 줄줄이 따라붙었던 수사가 바로 ‘순박한’ 농민이었다. 대체 이런 표현에 어떤 ‘정치적 맥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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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2021.10.05 12:32
“요즘 여자들은 너무 예민해”“요즘은 무서워서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나아”“요즘은 겁이 나서 여학생들을 예뻐하지도 못해”“요즘 여자들은 목소리가 너무 크고 기가 세”독자 여러분도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까? ‘성평등 교육’ 시간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면 흔히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아도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고, 조심해야 한다고 여긴다는 사람들도 많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여학생부터 나이 든 여성에 이르기까지 ‘너무’ 예민하고 목소리가 커서 두려워하는 남성들이 이렇게 많아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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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1 15:54
“우리의 목소리를 ○○1)하라!”세상에는 버스요금이나 지하철 요금이 얼마인지 평생 몰라도 되는 사람들이 있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전셋값 폭등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사람도 있다. 매일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리고, 매달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쪼개 쓰고, 계약 기간이 끝나갈 때마다 불안해하며 집을 보러 다닐 필요가 없는 사람들.전체 인구 대비 장애인은 5.1%이고, 성소수자는 3~7%나 된다는데 왜 내가 일하는 직장엔 장애인이 없는지 몰라도 되는 사람들이 있고, ‘내 주변엔 성소수자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건물에 경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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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5 17:23
내가 페미니스트, 혹은 인권교육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아무 때나 지적질을 당할까 두려워하거나, 인권의 모든 사안에 대해서 나에게 정답을 요구하거나.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왜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받는 일을 그리 두려워할까? 사람들은 정말로 ‘자기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줄 수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을 억울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저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흔히 언급될 만한 이 짧은 문장을 한 번 뜯어보자. 특별한 언급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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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2 17:07
아들이 어렸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왼손잡이인 아들이 죽어라고 오른손으로 글씨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엄마가 자랄 때와 달리 우리 집엔 아무도 너에게 오른손잡이가 되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없는데, 힘들어 죽겠다면서 넌 대체 왜, 그런 연습을 하고 있느냐고. 아이의, 울분에 찬 비난이 속사포처럼 날아왔다. “엄마는 공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 자는? 키보드 숫자판이나 엔터키가 어느 쪽에 있는지는 알아? 카메라 촬영 버튼은? 화장실 물 내리는 꼭지가 어디 붙어있는지는 알아? 엘리베이터 버튼은? 손잡이를 어떻게 해야 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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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2021.05.31 12:21
이 세상의 정상성은 ‘신체 건강한’, ‘젊은’, ‘남성’의 몸이 기준이다. 현재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이 원하는 ‘노동력’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이라도 자본이 원하는 노동력이 되기에 어리거나 늙으면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법과 제도에서 ‘장애인’을 정의하는 기준도 이 사회가 요구하는 노동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다. 재해를 입었을 때 보상을 판정하는 기준을 생각해보면 쉬운 얘기다. 여성의 몸은 신체 건강하고 젊더라도 노동력의 ‘재생산 도구’일 때만 정상으로 취급된다.이게 바로 여성은 약하지만, 모성은 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