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외국인 가르친다고 교원(노동자)이 아닐 수는 없잖아요”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한국어교원 노동자, 문선미·이수현

  • 기사입력 2020.04.10 19:17
  • 최종수정 2020.11.23 15:43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외국인 가르친다고 교원(노동자)이 아닐 수는 없잖아요”
한국어교원 노동자, 문선미·이수현

문선미(왼쪽), 이수현(오른쪽)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본부 경희학원지부 조합원. ⓒ 변백선 기자
문선미(왼쪽), 이수현(오른쪽) 민주노총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본부 경희학원지부 조합원. ⓒ 변백선 기자

(문선미)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소속 한국어강사로 일해요. 외국인 학생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칩니다. 2006년 가을 입사했으니 14년째네요. 대학 졸업하고는 중·고등학생 국어 수업을 했어요. 그러다 태국에서 2년 정도 우리 말을 가르쳤고, 이후에 경희대에서 계속 일하고 있어요.

(이수현)
저는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어교원을 시작했어요. 명지대학교에서 16주가량 수업을 했지만, 제대로 된 직장은 경희대학교가 처음이에요. 저도 2006년에 입사했으니 우리는 입사 동기인 셈이죠.
대학원에서는 한국어교육을 공부했어요. 석사과정을 마치면 2급 자격증을 줍니다. 한국어교원 자격증은 1~3급이 있는데, 2급과 3급은 대학(원) 과정을 마치거나 시험을 치면 되지만, 1급은 5,000시간 이상 수업을 해야 얻을 수 있어요. 경희대에 와 1급으로 승급했습니다.

(문선미)
저는 석사 때 국어교육을 전공했어요. 국어교사 자격증으로 한국어교원을 시작했고, 시험 봐서 3급을 취득했어요. 지금은 1급 자격증이죠. 한국어교원 자격증은 5년에 한 번씩 승급 심사를 봐서 가르친 시간과 경력을 인정받아서 올릴 수 있어요. 이 자격증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관리한다는 게 흠이지만요.

(이수현)
우리는 국민을 가르치는 게 아니니까요. 외국인이잖아요. 그래서 자격증이 문체부 이름으로 나온대요. 말이야 대학교 강사지만, 교육부 소속이 아니니 강사법을 적용받지도 않아요. 그렇다고 무기계약직이라든가 정규직이라든가, 그런 평가를 받지도 않고요. 한국어교원은 사실 대학교에서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이건 서울대든 연세대든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노동조합에 가입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우리가 가진 지위를 확인하고 싶어서고요. 대학교 강사도 아니고 국민을 가르치지 않아 교육부 소속도 아니지만, 한국어교원의 지위를 적용해달라는 거에요.
어쨌거나 우리는 한국어를 가르치니까요. 우리나라도 점점 국적이 다양한 사람들이 늘어나잖아요. 다국적국가, 다문화사회로 조금씩 바뀌고 있는데, 외국인 가르친다는 이유로 교원 자격증이 문체부에서 나오는 건 불만이에요. 당연히 교육부 소속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원으로 받아들여야죠.

(문선미)
묘한 부분이 있어요. 외부에서 볼 때는 한국어교원이란 직업이 그럴 듯해 보이거든요. 대학 소속으로 누굴 가르치니까요. 그런데 내부를 보면 아르바이트 노동자보다 열악해요. 우리는 아직 근로계약서도 없어요. 15년 가까이 한국어교원으로 일을 하고 있어도 말이죠. 비정규직조차 아닌 거에요. 대학에서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사람들이죠. 최근 코로나19 때문에 고용유지지원금을 준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는 그 제도에 해당하지도 않고요. 고용보험 가입도 안 되어 있으니까요. 그러니 육아휴직을 해도 지원금을 못 받아요.

(이수현)
일단 우리는 어딘가에 고용된 것이 아니니까요. 급여도 월급 형태가 아닌 강의료 형태로 받고요. 우리 업무는 근로로 잡히지도 않아요.

(문선미)
최근 서울대학교 소속 한국어교원들이 전원 무기계약직이 됐어요. 그나마 거기는 상황이 좋아진 거에요. 조건이야 조금씩 서운한 게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서울대에서 틀을 갖춰가는 거라고 봐요.

(이수현)
경희대 한국어교원은 120명이 넘어요. 매머드급 기관이죠. 계속 이렇게 내버려두면 큰일 나겠다 싶었는지, 2018년 10월에 학교 측이 강의계약서를 내밀었어요. 계약 내용도 듣지 못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다음 주 월요일에 전부 계약서에 사인을 해라’라는 내용이 내려온 거죠. 이후 알려진 내용을 보고 모두 당황했어요. 계약기간은 ‘2018년 9월 28일부터 2019년 8월 29일까지’로 되어 있더라고요. 11개월인거죠. 근로환경 개선 조건 등은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지키지 않으면 경희학원에서 계약을 진행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가 생길 때는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식의 조항만 있더라고요.

(문선미)
의무와 징계사항만 가득했어요. 1번이 계약 기간, 2번이 강의대상자, 3번이 강의 시간, 4번이 강의료, 5번이 계약 해지, 6번이 재계약, 7번이 기타 의무. 이게 다입니다.

(이수현)
120명이 넘는 강사들이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죠. 일단 계약서에는 ‘NO’를 외쳤어요. 이후 ‘우리끼리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노조에 가입하자’고 얘기했어요. 민주노총 대학노조 경희학원지부를 찾아갔고 그해 12월 120여 명 강사 중 105명이 한꺼번에 가입했어요.

(문선미)
노조에 오기 전에는 말을 할 수 없었어요. 평소 불합리한 것들이 있어도 아무 데도 할 수 없었거든요.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느끼는 게 있지만 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항의 이메일이라도 쓸 수 있고 선전전도 할 수 있고, 하다못해 노조위원장에게 일러바칠 수도 있게 된 거죠.

(이수현)
공부도 돼요. 우리의 권리를 알았죠. 막연히 불안해했던 것을 이젠 방어할 방법도 찾았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서로에게 힘도 되고요.

(문선미)
노동조합이란 건 예전부터 알았죠. 어릴 때는 노동운동하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 막연한 경외심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나이가 들고 부당한 일을 겪으면서는 그 사람들이 고맙더라고요. 내게 직접 도움이 되지 않아도 그들의 존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으니까요.

(이수현)
우리는 나름 다 갖춰진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하고 있잖아요. 반면 50년 전에는 어떻게 노동운동을 했나 싶어요. 우리는 서명지에 주소 하나 쓰는 것도 고민하거든요. 전태일을 다룬 영화〈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면 그때는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겠다는 생각도 해요. 때론 자조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잖아요. ‘누가 죽어야 관심을 둔다’라고.

(문선미)
대학교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영화도 봤어요. 그때 느낀 감정은 ‘우리 아버지다’라는 거였어요. 내 윗세대 사람들,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작은어머니나 고모가 생각난 거죠. 저는 그 세대보다 공부도 많이 했고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죠. ‘전태일’이란 이름은 그런 면에서 제게 가시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어요. 작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통증은 느껴지는, 외면하고 싶은데 외면할 수도 없는 것.

(이수현)
그 시절과 다르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 작업장에서 여성들은 지금도 결혼을 하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걸림돌이 생긴다는 거예요. 한국어교원은 압도적인 비율로 여성이 많은 직종이지만, 특별히 누군가 밀어주지 않으면 경력이 쌓이고 높은 자리로 가는 사람은 남성이에요. 그들이 우리를 양성하는 교원이 되죠.

(문선미)
교수 비율도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아요. 이걸 100% 기관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죠. 교원 각자의 사정도 있고 직업의 특성도 있으니까요. 다만, 여성 비율이 높아 제도적인 배려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데도 그런 게 없어요. 여전히 여성이 일하기 불편하고 힘든 사회니까요.

인터뷰 송승현 / 사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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