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여잔데 할 수 있을까?’가 아니구요, 무조건 덤벼서 하면 돼요”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플랜트 노동자, 김신혜

  • 기사입력 2020.04.13 17:27
  • 최종수정 2020.11.23 15:43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여잔데 할 수 있을까?’가 아니구요, 덤벼서 하면 돼요”
플랜트 노동자, 김신혜

김신혜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충남지부 배관분회 조합원(용접사). ⓒ 백승호 기자 (세종충남본부)
김신혜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충남지부 배관분회 조합원(용접사). ⓒ 백승호 기자 (세종충남본부)

이름은 김신혜고요, 올해 마흔아홉, 1972년생입니다. 일 시작한 지 딱 9년 됐어요. 나이 마흔에 시작했거든요.

본래 서산 사람이에요. 서산시 대산. 지금은 현장에서 용접을 하는데, 이 일 하기 전에는 근처 삼성 석유화학에서 교대근무를 했어요. 이쪽 현장에 화기 감시하러 다니다 용접하는 걸 보고 ‘할 만 하겠다’ 싶어서 시작했어요. ‘너도 할 만할 거다’, ‘울산 쪽에 가면 여성 노동자들도 많다’. 그래서 시작했죠.

친오빠가 이 지역 플랜트노조 지부장이었어요. 그때 일을 처음 배웠죠. 오빠도 탱크 쪽 용접사였거든요. ‘오빠, 이거 나도 하면 어떨까?’ ‘해. 너도 할 수 있어’

배관 용접을 해요. 기본 카보부터 시작해서 서스, 알로이까지. 특수 비철이나 다른 비철 업무도 다 합니다.

소속된 회사는 달리 없어요. 공사 맞춰서 테스트 보고 회사 들어가요. 공사 따라다니는 거죠.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면 7시에 도착해요. 일은 8시부터 합니다. 퇴근은 오후 5시에 해요. 플랜트 노동이라고 퇴근이 자유로운 건 아니예요. 회사에서 정한 노동시간이 있어요. 8시간. 그거에 맞춰 일하니까, 퇴근시간은 오후 5시죠. 강제는 없지만 연장근무가 있을 때도 있어요. 거의 다들 일이 우선인 사람이라… 대부분 합니다.

일당도 정해져있어요. 플랜트노조에서. 남성들하고 똑같이 받아요. 주차, 월차도 있고요. 다른 분회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제가 속한 배관분회는 남녀 차이가 없어요. 아무래도 여자다보니 힘 쓰는 일은 좀 부족하긴 해요. 그래도 업무 차별은 없어요.

제가 배관분회에선 최초예요. 여성 노동자로는. 맨 처음 용접고데기 잡고 이력서 넣을 때는 안 받아주더라고요. 뺀찌 많이 먹었죠. 지금도 우리 분회 중 한 명이 취업이 안 되고 있어요. 이쪽에 온 지 얼마 안 됐거든요. 회사에서 인정할 수 없으면 쓰지 않으니까. 남자들은 이력서 넣으면 ‘시험을 봐라’, 그래서 못 보면 탈락인 건데, 여성들은 기회를 받기가 어렵죠.

얼마 전에는 그런 일도 있었어요. 제가 들어가기로 한 현장에 다른 지역에서 배관사가 온 거예요. 저를 보더니 ‘여자라고? 안 받아 안 받아’ 그런 거예요. 노조에서 난리가 났죠. “그 배관사 당장 들어내!”라고. 그런 차별이 어딨냐고요. 알고 보니 그 분이 여성 노동자와 작업을 해본 적이 없다더라구요.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그랬다’고 조심스럽게 얘기하더라구요. 그러려니 했죠.

노동조합은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했어요. 이 동네에서 벌어먹고 살려면 노동조합 가입은 필수니까. 노조는 우리 같은 노동자들 위해서 해주는 일이 많아요. (투쟁해서) 쟁취한 부분도 많고. 가령 여성분들 생리수당 받는 거요. 그게 여성들에게는 큰 일이거든요.

저는 외지에 나가지 않고 근방에서만 일을 해요. 안 다녀본 현장이 없어요. 자칭 대산의 연예인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많이 알려졌죠. 또 하는 일이 배관용접이잖아요. 기능공이에요. 그러니 남자분들도 함부로 대하진 못하기도 해요.

사실 우리는 약자에요. 여자라서기 보다도 노동자들은 회사에 비해 약자에 속해있어요. 그럴 때 우리 노동자 편 들어주고 어려울 때 얘기하면 같이 해결해주려고 하고. 그런 부분이 참 마음에 듭니다.

전태일 그 분이 청계천에서 분신하셨잖아요. 미싱하는 여성분들 위해서. 제 언니들이 다 그 일을 했거든요. 정확히는 몰라도 그분으로 인해 노동조합이 생기고 또 그분으로 인해 노동자가 일하기 편한 세상이 됐다고 생각해요. 물론 여전히 아닌 부분도 많겠지만.

이쪽은 일 시작할 때부터 노조 가입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서울도 많이 갔어요. 몇 년 전에 시청에서 투쟁할 때 농민 한 분 돌아가셨잖아요? (故 백남기 농민) 그때도 현장에 있었어요. 박근혜 탄핵도 기억에 남고. 그거는 대산에서도 많이 했죠. 근처 보령에서도 농성을 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당진제철에서 돌아가신 노동자에요. 일하다 쓰러져 돌아가셨는데, 보상을 못 받는 거예요. 그때 빈 관 짜서 밤새 농성했던 기억이 있어요. 결국 보상 받을 수 있게 됐죠.

하는 일이 이런 쪽이니, 아무래도 안전 문제에 신경이 많이 쓰여요. 그나마 플랜트 쪽은 많이 좋아졌는데, 가장 열악한 곳은 제철이에요, 제가 다녀보니까. 특히 현대제철. 거기 사람 많이 죽었잖아요. 심지어 직원도 아니고 다 협력업체들. 태안화력도 마찬가지고. 나쁜 일은 우리들이 다 하는 거죠. 위험한 일만 시키고, 자기들은 안전한 작업만 하고.

저도 일하면서 1미터 높이에서 떨어진 적도 있어요. 나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 다른 사람이 물건 떨어트려서 멍이 든 적도 있고, 죽을 뻔한 적도 있어요. 아슬아슬하게 피했기에망정이지.

그래도 일 열심히 합니다. 탱크 꼭대기에서 성큼성큼 올라가요. 남녀 차별 없이 일하는 거죠. 어느 현장에 가도 가장 위험한 곳, 가장 안 좋은 자리에 제일 먼저 올라갑니다. 다른 사람들이 못 하는 일을 제가 많이 해요. 또 제가 양손잡이거든요.

제가 일을 하면 더 많이 하지, 남들보다 덜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스스로 노력도 많이 하죠. 그렇게 해야 하구요. 파고 들면 다 되더라구요. 저도 처음에는 울면서 파고 들었어요. 여자라고 이력서 안 받아줄 때도 그렇고, 일하다 결함이 나올 때도 그렇고. 여성 노동자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못 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난 여잔데 할 수 있을까’ 이런 게 아니구요. 무조건 덤벼서 하면 돼요.

인터뷰・사진 백승호 / 정리 송승현

김신혜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배관분회 조합원(용접사). ⓒ 백승호 기자 (세종충남본부)
김신혜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충남지부 배관분회 조합원(용접사). ⓒ 백승호 기자 (세종충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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