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투쟁은 중독. 끝 봐야 하니”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요양보호사 노동자, 추임호

  • 기사입력 2020.04.20 18:57
  • 최종수정 2020.11.23 15:43
  • 기자명 이윤경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투쟁은 중독. 끝 봐야 하니”
요양보호사 노동자, 추임호

추임호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효림원분회 분회장(요양보호사). ⓒ 이윤경 기자 (부산본부)
추임호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효림원분회 분회장(요양보호사). ⓒ 이윤경 기자 (부산본부)

노인요양시설 효림원에서 7년을 일하다 해고됐어요. 이름은 추임호, 1955년생입니다. 효림원에는 2012년 5월 7일 입사했어요. 그전에도 요양보호사로 일했구요. 시어머니가 입소해 계시던 작은 규모 요양원이었죠. 제가 효림원으로 옮기면서 시어머니도 함께 왔어요.

2교대로 일했어요. 주간은 아침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야간은 저녁 6시에 출근해서 아침 9시에 퇴근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20여 명의 어르신 목욕을 시켜요. 기저귀 가는 일이 좀 힘들지만, 어르신들이 가족 생각하며 눈물을 보일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돌봄은 육체적으로 참 힘든 일이에요. 그래도 보람이 있어요.

보호사들이 교대로 점심식사를 해요. 그러니 식후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기 어렵죠. 휴식시간 같은 건 아예 없다고 생각했어요. 야간에는 5시간 정도 휴식시간이 있는데, 4시간만 쉬고 일했죠.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나서야 그게 불법이었단 걸 알았어요. 노조와 함께 한 시간 분량 야간근무수당을 받기 위한 소송을 했어요. 요양보호사 50여 명에 대한 체불임금 1억6백만 원을 지급하라는 거죠. 그런데 아직도 못 받았어요.

다치는 경우도 있어요. 4년 전에 어르신 부축하다 허리를 다쳤거든요. 1주일 정도 쉬었는데, 병가 3일, 연차 3일을 썼어요. 치료비는 약 9백만 원 정도? 효림원에서는 천 원짜리 한 장 안 주더라구요. 다친 게 다 제 잘못이라고만 생각했어요.

남성 보호사도 두 명 있었어요. 업무가 조금 달라요. 남성들은 기저귀도 안 갈고 야근근무에서도 빠져요. 그런데도 급여는 10만 원이나 더 많더라구요. 남자니까요.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도리가 있나요.

예전보다는 여성 권익이 상승한 것 같아요. 여성을 필요로 하는 영역도 많아졌잖아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차별받아요. 일하다 사업주나 어르신 보호자에게 그런 얘기를 듣고 했어요. “요양보호사 주제에” “아줌마가 뭔데?” 언어폭력도 자주 당했어요. 그냥 어르신들 보며 삭히고 견뎠죠.

돌보던 어르신이 돌아가셨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내가) 조금만 더 잘했으면 하루라도 더 사실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어요. 시어머니도 효림원에서 돌아가셨거든요.

작년 1월 중순인가, (효림원에서) 계약서를 내밀었는데 3개월짜리더라구요. 늘 1년씩 계약했는데 갑자기 3개월짜리를 내민 거죠.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경위서를 쓴 이력 때문에 그렇대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에서 보낸 문자를 누가 보여줬어요. 부당한 일에 대해 상담을 해준다는 내용이었어요. 바로 통화를 했죠.

범일동 민주노총 사무실로 갔어요. 진은정 지부장님이 친절하게 맞아주시더라구요. 냉대만 받다가 환영을 받으니 마음이 놓였어요. 그렇게 노동조합에 가입했죠. 주변 요양보호사들에게도 가입을 권유했고, 한 명씩 가입하기 시작했어요. 3개월이 지나자 효림원이 또 3개월짜리 계약서를 내밀길래 민주노총에 가입했다고 말했어요. 원장이 부르더라구요. 온갖 막말과 협박을 두 시간 정도 들었어요.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녹취를 했죠.

부산시청 광장에 천막을 친 날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방해도 많았지만, 풍산노동자들과 민주노총이 도와줘서 간신히 쳤어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네요. 그래도 노동조합 아니었으면 효림원의 부정과 비리를 멈출 수 있었을까요? 효림원은 5억3천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된 상태예요. 그게 제일 잘한 일이예요.

가끔은 ‘(노조를)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어요. 조합원들이 생계문제로 힘들어할 때, 차라리 내가 민주노총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에 힘이 들죠. 그래도 시작한 거니까, 끝을 봐야 되잖아요. 투쟁은 중독성이 좀 있더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내일은 죽어도 못 나가겠다고 해도 막상 아침에 눈 뜨면 또 궁금해져요. 어느새 투쟁현장으로 가고 있다니까요. 중독성이 강해요.

제가 10대 때 전태일 열사가 돌아가셨어요. 그때 언론 통해서 보고는 ‘왜 죽을까’ ‘차라리 살아서 더 좋은 세상 만들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삭발이든 고공농성이든 어떤 투쟁도 할 수 있거든요. 그래도 분신은 못 할 것 같아요. 온전히 나를 버려야 가능한 일이잖아요. 전태일 열사는 정말 대단한 분이에요.

민주노총이 뭔지도 몰랐을 때 티비에서 데모하는 장면을 보여주더라구요. 그때 아는 얼굴이 보였어요. 철도기관사로 일하는 동생이에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데모하면 안 된다고 나무랐죠. 해고된 후 동생한테 전화했어요. 그랬더니 “누나, 건강 챙기면서 투쟁하세요”라고 위로를 하더라구요. 동생에게 미안해서 밤새도록 울었어요.

동생은 퇴직한 뒤 귀촌했어요. 얼마 전에는 “경찰서에 가서 조사도 받고 그래야 하는데 어쩌냐”라고 걱정하더라구요. 그런 데는 안 간다고 말했어요. 실제 경찰서는 수도 없이 잘 다니고 있지만요. 검찰청도 매일 가고요.

투쟁이 끝나면 쉬고 싶어요. 아무 고민 없이 24시간 잠만 자고 싶은데, 끝이 안 날 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벌써 봄이 두 번이나 왔는데…. (10년째 투쟁 중인) 풍산노동자 보며 견디고 있어요.

이번 총선 결과가 안타깝더라구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줄 수 있는 진보정당이 힘을 못 썼잖아요. 4년 후에는 꼭 좋은 결과가 있도록 저도 힘을 좀 보태려고요.

돌아보면 참 많이 힘들었지만,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싶어요. 요즘도 때마다 (어르신들) 생각이 나요. ‘지금은 점심을 드시겠구나’ ‘이제 산책을 나가셨겠구나’ 어르신들이 많이 보고 싶네요.

인터뷰・사진 이윤경

추임호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효림원분회 분회장(요양보호사). ⓒ 이윤경 기자 (부산본부)
추임호 서비스연맹 전국요양서비스노조 효림원분회 분회장(요양보호사). ⓒ 이윤경 기자 (부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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