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나도 노동자다’라는 걸 정확히 인식하면 좋겠어요”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콜센터상담원 노동자, 조지현

  • 기사입력 2020.04.20 21:56
  • 최종수정 2020.11.23 15:43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우리가 ‘나도 노동자다’라는 걸 정확히 인식하면 좋겠어요”
콜센터상담원 노동자, 조지현

조지현 전국철도노동조합 콜센터지부장(콜센터상담원). ⓒ 변백선 기자
조지현 전국철도노동조합 콜센터지부장(콜센터상담원). ⓒ 변백선 기자

전국철도노동조합 철도고객센터지부 조지현입니다. 2004년 입사한 16년차 상담원예요. 처음 노동조합 설립 때부터 집행부로 개입했고, 철도노조 소속으로 전환된 뒤 올해 2년째 지부장을 맡고 있어요.

입사할 때는 코레일 소속이었어요. 코레일 고객센터에서 일하다 입사 1년만에 자회사로 외주화됐어요. 2005년에 코레일네트웍스가 됐죠. 지금도 코레일네트웍스가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일을 시키는 곳은 코레일이지만요.

요즘은 자회사 전환 문제로 여러 업종에서 투쟁을 계속 하고 있지만, 우리가 자회사로 넘어갈 때는 ‘왜 그러냐’라고 묻는 분위기도 없었어요. “코레일에서 다른 회사로 넘어간대. 그냥 싸인하면 돼.” 이런 분위기였어요. 당시는 강압적이고 억압된 상태였어요. 관리자들이 싸인해야 한다고 하면 그저 싸인을 했던 거죠. 자회사 전환도 모두의 동의가 이뤄진 상태로 전환이 됐고,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싸인의 의미가 뭔지 알게 됐어요.

자회사로 전환된 뒤에는 좋았어요. 한 1~2년 정도? 회사에서도 잘 대해줬죠. 명절이면 상품권도 주고 복지카드도 쓸 수 있었거든요. 1년에 30~40만 포인트 정도 쓸 수 있었어요. 우리는 급여가 낮거든요. 공공기관이라서 기획재정부 예산 편성 지침을 따라야 한 대요. 최저임금을 지키는 수준인 거죠. 따져보면 알바생에게 주는 최저임금 시급 정도죠. 그러니 명절에 선물만 줘도 우리는 정말 감사했죠.

언젠가 코레일네트웍스가 공공기관이 됐더라구요. 우리는 공공기관이 뭔지도, 이 회사가 무슨 회사인지도 모른 채로요. 어느날 ‘(코레일네트웍스가)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정부방침에 따라 복지부분을 축소해야 한다’라고 하더라고요. 복지포인트가 없어졌어요. 다른 것도 다 없어졌죠. 그래도 그런가보다 했어요. 그때는 회사가 어려우면 우리도 그에 맞춰서 우리가 가진 것도 좀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던 때니까요.

그러다 언젠가부터 업무 강도가 세졌어요. 네트웍스가 상담원 TO를 코레일에서 받아오는데, 늘 부족하게 인원을 받아와 일을 시켰더라고요. 그러니 시간 외 근무도 잦아졌어요. 30~40분 밖에 되지 않는 점심시간도 줄여서 전화를 받아야 했어요. ‘조금 일찍 출근해라’ ‘조금만 더 남아서 전화 받아라’ 이런 일이 심했죠. 그건 근무시간에도 안 들어가요. 급여에 반영 안 되는 거예요. 업무강도가 세져 아픈 사람이 생겨도 연/반차 제한했어요. 못 쓰게 하죠. 하혈할 때까지 잡아놓으니까요. 일이 점점 힘들고 그러면서 동료가 떠나가고, 누군가 자릴 채워도 금방 나가버리고. 그런 일이 반복됐죠. 2011년이었던가? 그때는 1년에 사람을 11번 모집한 적도 있어요.

신기하게도요, 이런 일이 노조가 생긴 뒤에 다 없어졌어요. 우리는 2014년에 노조를 만들었어요. 5월 1일은 노동절이잖아요. 우리도 쉬는 날이라는 거 다 아는데, 회사는 쉬는 날이 아니래요. 논리가 이상하잖아요? 9명이 모여서 가까운 곳에 있던 민주노총에 물어보러 갔어요. 그러니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자리에서 바로 조직을 했어요. 그후에 다른 상담원들에게 알렸는데 다들 좋아하는 거예요. 그때 상담원은 200명 정도? 관리자는 30명 정도였는데, 155명이 바로 노동조합을 결성했어요. 지금요? 1명 제외하고 상담원 전부 조합원이에요.

민주노총이 ‘노동조합 설립했다’라는 내용을 회사에 보냈어요. 그러자마자 점심시간이 다시 1시간으로 돌아왔어요. 출근 전 시간 외 교육도 사라졌고요. 무엇보다 서명지 하나 돌려서 강요하던 시간 외 근무가 사라졌어요. 가장 큰 변화죠. 그때부터 일한 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점심시간 1시간이에요. 몇 년이 지난 일인데도, 예전에 급하게 밥을 먹던 서러움이 남았는지 점심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여럿이 모여서 뭔가를 하는 것이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죠. 집단의 힘이 강하다는 걸 우리는 몇 번이나 경험하고 있어요. 실제 노조 설립 전후로 여러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그래도 바뀌지 않는 건 여전히 있어요. 시설 문제도 그런데요, 요새 코로나19로 말이 많잖아요. 어느 콜센터 상담원들 중에는 감염자도 나왔고요. 일부에서는 콜센터를 닭장이라고 하잖아요? 상담원 간격이 너무 좁아요. 그런데 근본적인 대책은 책상 등 자재를 아예 교체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일하는 건물이 코레일 소유거든요. 당연한 건가? 코레일에서는 예산이 없다고 해주지 않네요. 그나마 비어있는 층을 수리해서 상담원 재배치하는 정도인 거죠.

원청이 책임져야 할 일은 또 있어요. 콜센터는 전화를 받아 실적을 따지는데요, 코로나19로 실적이 완화가 됐거든요. 그런데 아직 폐지는 아니에요. 우리는 1년에 한 번씩 위탁계약을 하는데, 그 조항에 서비스 레벨이란 걸 넣어서 계약을 해요. 원청과 하청이 계약할 때부터 이 조항을 넣거든요. 그러니 코로나19와 같은 문제가 불거져도 하청은 ‘바이러스 전염돼서 (회사) 문 닫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만 하는 거죠.

아주 훌륭하지 않더라도, 회사는 최소한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시설은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청은 돈이 없고, 돈이 있어도 원청 소유물은 함부로 건들지 못하고. 이번 코로나19로 안전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이번 기회에 원청이 확실히 책임질 수 있는 뭔가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콜센터노조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했으니 나름 오랫동안 노조를 하고 있어요. 저도 그렇고 우리 모두가 가장 좋아하는 건 노조 설립하고 점심시간이 늘어난 거예요. 우리는 이제 노조 사라지면 다시 점심시간 줄어드는 거냐는 농담도 하거든요. 회사가 지키지 않던 것을 당연히 지킨 것, 당연한 일에 기뻐했던 우리에 대한 느낌이 지금도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어요.

대전역사 안에 농성장을 꾸린 적이 있어요. 그때 조합원들 오라고 해서 파업교육도 하고 선전전도 했거든요. 그러면서 흰 천을 펴고 조합원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했어요. 그때 한 조합원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썼어요.

노조가 생기기 전 하루 8~9시간씩 쉬지도 못하고 계속 전화 받을 때를 돌아보면 우리가 참 인간답지 못했어요. 예전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말과 똑같죠? 노조를 만들고 나서야 우리가 일하는 게 굉장한 착취란 걸 깨달았어요. 그런 맥락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쓴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노동조합은 당연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해요. 특정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모든 노동자가 잘 살지 않으면 개인의 이익도 보장될 수 없어요. 예전 서울역에서 문화제 열었을 때 한 동지가 이런 문구를 썼어요. ‘일 시킬 땐 철도의 얼굴, 월급 줄 땐 철도의 알바.’

사람들이 ‘나도 노동자다’라는 걸 정확히 인식하면 좋겠어요. 노동자의 시선에서 전체를 보면 좋겠구요. 우리가 뭉쳐 무엇을 해야 인간답게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런 것을 고민하면 좋겠어요. 그게 전태일 열사가 우리에게 준 의미라고 생각해요. 우리 스스로가 노동자이면서 타성에 젖어 시키는대로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모든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 거죠.

인터뷰 송승현 / 사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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