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내 자리에서 내 노동의 당당함을 외칠 수 있다면”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제품서열작업자, 최정은

  • 기사입력 2020.05.12 09:18
  • 최종수정 2020.11.23 15:44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내 자리에서 내 노동의 당당함을 외칠 수 있다면”

제품서열작업자, 최정은

 

최정은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대의원. ⓒ 변백선 기자
최정은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대의원. ⓒ 변백선 기자

최정은입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대의원이에요. 기아자동차 경력은 14년 정도 됩니다. 본래 자동차 품질을 검사하는 PDI를 했고, 지금은 제품서열작업을 해요. 이건 1년 조금 넘었네요. 작업장은 공장 밖에 있어요. 기존에 하던 일을 정규직이 차지하면서 공장 밖으로 쫓겨났거든요.

기아차에 오기 전에는 수입자동차 사무실 경리로 일했어요. 직원도 적고 하는 일이 경리라 커피 심부름이며 사장 비위 맞추는 일이 흔했어요. 차라리 대기업 생산직이 낫겠다 싶어 이직을 했죠. 당시 기아차 PDI 공장에는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었어요. 남성들은 나중에 배치되다 지금은 정규직 남성 노동자들이 다 차지했어요. 비정규직이 쫓겨난 거죠. 그나마 기아차 사내하청이 단체협약된 게 있어서 해고되지 않고 다른 사내하청으로 전직을 온 거예요.

자동차 업계 대부분이 비슷해요. 한국GM도 그렇고 쌍용차도 그렇고. 비정규직은 전적을 당하다 더 갈 데 없으면 그 끝은 해고일 테죠. 그런 불안함 속에서 계속 싸우고 있어요. 언젠가 정규직도 해고당할 거예요. 본인이 살기 위해 비정규직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계속 되풀이하는 거죠.

기아차 오기 전엔 노동조합을 몰랐죠. 어릴 때니까. 여기는 입사하면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이 돼요. 조합비가 첫달부터 바로 빠져나가는데, 정작 노조는 새로 입사한 제게 ‘노조는 이런 겁니다’라는 설명도 안 했어요. 저도 먼저 다가가지 않았죠. 사실 자신이 어려워야 노동조합을 찾으니까요. 저도 그랬어요. 그러다 아이 낳고 육아, 출산휴가를 맞닥트리면서 노조가 내민 손을 잡았죠.

많은 사람이 일하는 만큼 여성 노동자도 많아요. 여성들은 육아 때문에 휴가를 쓰거나 업무에서 빠지는 일이 잦거든요. 저도 잔업 하지 않고 혼자 조퇴투쟁을 하기도 했고요. 그럴 때 사측이 노노갈등을 조성하기도 했어요. “네가 빠져나간 자리 메꾸려고 다른 사람들이 더 힘들어진다”라는 식이죠. 그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처음에는 노조 차원에서 원만히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러니 노조에 대한 반감도 있었죠. 이런 경우는 노조에서 사측을 괴롭혀야 한다고 봐요. 우리는 같은 노동자니까요. 동지애라는 것을 자신도 스스로 느껴야 하고, 노조에서도 조합원 교육을 해야 해요. 나중에 집행부가 몇 차례 바뀌면서 저도 깨달았어요.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하는구나.” 노동조합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 고집대로 하려 했거든요. 그러니 너무 힘들었죠. 노조와 함께 하니까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노동조합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공장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가 밖에 나와 알게 된 사실이 있어요. 공장 밖 물류사에 전직 당한 여성 노동자 임금이 남성에 비해 300~400원 적다는 거예요.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요. 회사에 문제제기를 해서 바로 시정했어요.

또 보건휴가 문제도 있었어요. 물류사에 여성 노동자가 적을 땐 150%를 챙겨줬다가 점점 전직 온 여성 노동자가 늘어나니 다시 100%로 내려버린 거죠. 임금도 적고 받던 보건휴가 상여금도 줄고. 계속 그렇게 차별을 받고 있었더라고요. 지금은 150% 지급이 100%로 깎였지만 시급을 맞춰서 결과적으로 급여는 올랐어요.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미리 알고 문제제기를 했으면 더 빨리 고쳐졌을 거예요. 다만 여성이 몇 없을 때는 일종의 혜택 같았던 거였죠. 그러다 여성이 다수가 되니 문제가 불거졌고, 그제야 고쳐진 거예요.

여성들이 많은 사업장은 남성들이 느낄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아이를 키우기 때문이죠. 그래도 우리 사업장은 육아휴직, 출산휴가를 인정받지만, 그런 게 인정되지 않는 회사도 많아요. 당당하게 쓰고 나와도 전혀 눈치 보지 않는 직장이 돼야 해요. 그런 부분에서 노동조합의 힘이 필요하죠.

예전보다는 많이 바뀌었지만,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의원 활동을 하고 노조와 더 가까워지면서 느낀 건, 여전히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적다는 거예요. 남성의 비율이 높고 목소리도 더 커요. 그게 속상해요. 어느 자리에서든 남성과 여성의 비율을 맞출 수 있는 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간부를 뽑아도 그렇고, 노사 협의를 해도 양쪽이 여성, 남성 비율이 비슷해야죠. 그래서 여성의 차별 문제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기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회가 주어져도 주눅이 든다거나 스스로 위축되는 면도 있어요. 저도 스스로 위축돼서 자신 있게 나서지 못한 일도 있었으니까요. 그런 부분은 본인 스스로가 변해야 해요.

저는 노조를 하면서 저 스스로 많이 변했어요. 아이 둘을 낳은 뒤 뭔가에 미쳐 뛰어들기 시작했거든요. 그게 노조예요. 기아차 비정규지회는 고용노동청 싸움이 잦았는데, 그때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어요. 한 일주일 정도 농성장 안에서 생활한 적도 있죠. 아이들을 데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큰 아이가 4학년, 작은 아이가 2학년 일 때부터였는데, 아이들도 엄마와 이모, 삼촌들이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해 싸운다는 걸 알더라고요. ‘왜 경찰이 나빠?’라고 묻기도 하고. 경찰은 나쁜 사람으로 인식하는 건 조금 속상하죠. 그래도 어른들이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보호를 받아야 할 때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명확히 알려줬어요.

아이들은 늘 즐겁다고 이야기를 해요. 본인들이 따라다니려고 하고요. 아들은 투쟁이 참 즐겁다고도 해요. 농성장에서 힘든 모습보다 즐거운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함께 투쟁하던 동지들이 아이들에게 즐겁게 대해줘서 그랬을 거예요.

기아차 비정규 동지들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투쟁의 의미보다도 함께 투쟁하는 동지들의 동지애, 같이 싸워야 한다는 마음에서 아이들의 즐거움이 기인한 게 아닐까요? 전태일 열사도 같은 경우라고 생각하거든요. 함께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불합리에 맞서 싸우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전태일 열사와 같은 절박함은 아무에게서나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10명이 절박해도 10명 다 그렇게 할 수 없거든요.

하찮은 노동은 하나도 없어요. 자신이 선 각자의 위치에서, 내가 어떤 노동을 하든 그에 맞는 권리를 주장하고 외치고 싸울 수 있어야 해요. 동지의 일에 눈감지 않고 함께 싸울 수 있는 노동자, 저는 그 모든 사람이 전태일이라고 생각해요. 내 자리에서 내 노동의 당당함을 외치고 싸울 수 있으면 그 사람이 다 전태일이죠.

인터뷰 송승현 / 사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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