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예술도 노동력을 파는 일입니다”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성악가, 김민정

  • 기사입력 2020.05.18 18:05
  • 최종수정 2020.11.23 15:44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예술도 노동력을 파는 일입니다”

성악가, 김민정

 

김민정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사회서비스노조 경기문화예술지부 양주시립예술단지회 지회장. ⓒ 변백선 기자
김민정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경기문화예술지부 양주시립예술단지회 지회장. ⓒ 변백선 기자

김민정입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경기문화예술지부 양주시립예술단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어요. 경기문화예술지부 부지부장도 겸하고 있죠. 직업은 성악가예요. 2011년 양주시립예술단에 들어왔고 파트는 알토입니다.

예술단 경쟁률이 꽤 높은 편이에요. 소프라노 1명 모집하는 데 300명씩 몰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소속감 때문이에요. 밖에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를 거예요. 음대를 졸업하고 나면 개인/팀 연주자 외에 달리 할 일이 많지 않아요. 그러니 예술단 경쟁률이 높을 수밖에 없죠. 소속이 있어야 개인 레슨도 구할 수 있고 연주할 자리도 늘어나요. 일반 프리랜서 성악가와 양주시립예술단 소속 성악가는 다르니까요.

저희는 농담처럼 “누구 한 명 죽어야 자리가 난다”고들 해요. 그만큼 취업 문이 좁다는 뜻이죠. 저는 입사 전에 유치원 아이들 음악 특기수업을 했어요. 그러다 양주시립예술단 공채가 떠서 시험을 치르고 들어왔습니다.

저희도 출퇴근 시간이 있는 노동자예요. 정해진 시간에 연습실로 출근해서 정해진 때 퇴근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만 일한다는 게 다른 직업과 좀 다르지만요. 일하는 시간이 적은 만큼 급여도 적어요. 월 50만 원을 받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월 57만 원을 받는다죠? 간혹 여러 차례 공연을 하는 경우에는 급여가 70만 원이 되기도 해요.

사정이 이러니 개인 레슨을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는 경우도 많아요. 단원 중에도 택배노동을 하는 분도 있어요.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도 있고요. 개인 레슨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지만, 경쟁자가 한둘이겠어요? 예체능계가 대부분은 인맥으로 많이 얽혀있다는 건 다들 아실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출근해서 일하는 시간도 적은데, 그에 비해 많이 받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해요. 그런데요, 3시간 일하는 동안 저희는 협업을 합니다. 협업하려면 개인적으로 연습해야 하잖아요. 그 시간은 근무시간에 포함되지 않아요. 실제 노래 한 곡 완성하는데는 연습실에 모여서 하는 협업 외에도 수많은 개인 연습시간이 있다는 거죠. 단체협약에 들어가 그 시간을 노동시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예술단 중에는 서울세종시향이 개인 연습도 노동시간으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어요. 양주시립예술단은 비상임(비정규직)이예요. 다른 지자체에 비해서 급여도 유독 낮아요. 제가 들어온 이래 월급은 한 번도 오르지 않고 50만 원을 유지하고 있어요.

양주시는 그렇게 말을 해요. ‘너희는 개인 레슨도 다니지 않느냐. 프리랜서로 사는 게 아니냐’라고요. 그러니 월급이 적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양주시립예술단 소속 단원이에요. 여기가 본업이고 여기 스케쥴이 생기면 다른 일정을 포기해요. 모든 생활 패턴이 예술단에 맞춰져 있어요.

저희는 단체협약에서 주 3회 출근과 임금 인상을 하려고 합니다. 연주의 질을 높이려면 그만큼 연습이 많아야 하고, 그 노동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좋은 공연을 준비해 시민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그게 양주시립예술단원들이 해야 할 일이죠.

예술도 노동력을 파는 행위예요. 다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졌을 뿐입니다. 우리는 시민들에게 좋은 노래를 한 곡 들려주기 위해 악보 한마디만 한 시간 넘게 연습할 때도 있거든요. 노래 한 곡 한 곡이 그렇게 준비돼요. 사람들은 그걸 취미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노조를 시작하고 달라진 점 중 하나예요. 노조를 하기 전에는 저도 내 일이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그런데 노조하면서 개념이 잡힌 거예요. ‘내 노동력을 할애해서 이 정도의 임금밖에 못 받고 있구나.’

노동조합을 만들 때 제가 합창단 수석단원이었어요. 우리 같은 예술단은 지휘자, 단무장의 갑질이 심하거든요. 시에서 예술단을 관리할 수 없으니 지휘자나 단무장에게 모든 권한을 주는 거죠. 반말은 기본이고, 각종 부당행위가 많았어요. 항의를 했다가 지휘자의 타켓이 됐죠. 3개월 동안 연습실에 들어가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양주시에도 항의했죠. 그런데 해결은커녕 예술단 예산을 0원으로 만들더라고요. 단원 60명을 모두 해고한 거죠. 갑질을 일삼은 지휘자도 포함해서.

2018년 9월 18일 창립 총회를 했어요. 지휘자나 단무장은 우리가 초단시간 근무자라 노동조합을 못 만들 거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되더라고요? 노조 결성하고 양주 시민단체와 함께 6개월을 싸웠어요. 우리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까, 양주 곳곳을 다니면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죠. 우리가 해고된 상황도 알렸고 시민들 응원도 많이 받았어요.

우리가 노동조합을 만들기 전에 한 단원이 지휘자에게 갑질을 당해서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이겼죠. 노동자로 인정받았어요. 우리도 해고된 후 지방노동위원회를 거쳤는데요, 이 사례까지 묶어서 노동자로 인정을 받았어요.

다른 지회 투쟁 현장에서 연대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때 우리 사례를 얘기하곤 해요. 그때마다 말하지만, 사람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합니다. 물론 사람에게 상처받아 노조를 만들었지만, 노조를 만들고 지회장이 된 뒤 간부들과 마음이 정말 잘 맞았거든요. 그게 투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힘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혼자 못 하는 걸 나눠서 할 수 있는 동지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우리 지회는 다른 곳과 다르게 끈끈함이 있어요.

투쟁 중 열었던 ‘찾아가는 음악회’도 그런 이유에서 했던 거지만, 저희는 대중들이 우리가 하는 일은 노동으로 생각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재능기부를 해라? 그러면 우리는 무슨 직업을 갖겠어요. 사람들에게 문화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야기예요. 우리는 연주 한 곡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그 한 곡을 위해 쏟아붓는 노동을 인정받고 싶어요. 우리 무대를 봐주는 사람들이 그 점을 배제하지 않고 바라봐주면 좋겠어요.

인터뷰 송승현 / 사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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