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불공정, 부당한 것 등 개선하기 위해 계속 외칠 거예요”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대리운전 기사, 강금주

  • 기사입력 2020.06.03 09:03
  • 최종수정 2020.11.23 15:45
  • 기자명 변백선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불공정, 부당한 것 등 개선하기 위해 계속 외칠 거예요”

대리운전 기사, 강금주

강금주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전남지부 여수지회 지회장. ⓒ 송승현 기자
강금주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전남지부 여수지회 지회장. ⓒ 송승현 기자

여수산단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한지는 15년 정도 됐어요. 아들이 13살 때부터 시작했죠. 처음부터 대리운전을 주 업무로 한건 아니에요. 그 전에는 보험회사를 다녔어요. 보험회사 일을 하고 있는 중에 대리운전 사업을 하는 동생이 도와달라고 해서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처음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지금은 즐기면서 하고 있습니다.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운전한 차가 15인승 봉고차였어요. 운전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대형면허도 갖고 있거든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했어요. 아침에는 어린이집 차량을 운전하고, 보험회사 출근하고, 오후 2시정도에 어린이집 차량 운전하고, 저녁에 대리운전 기사를 했죠. 하루 시간을 풀가동해서 일을 했어요. 잠을 2~3시간 정도만 잤던 것 같아요. 밤낮이 바뀌기도 하면서 10kg정도가 빠지기도 하고요. 어린 자식들이 우선이었거든요. 엄마로 살 것인가, 여자로 살 것인가의 선택지에서 엄마로서의 삶을 선택했어요. 존경받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대리운전 기사 출근시간은 자유에요. 콜을 받는 핸드폰의 어플을 켰을 때 화면에 ‘출근을 하겠습니까?’라고 떠요. ‘YES’를 누르면 출근이 되는 거예요. 등록된 전화번호를 회사에서 컴퓨터로 볼 수 있어요. 기사 위치라던가 동선을 확인할 수 있죠. 끝나는 시간도 어플을 끄면 퇴근이에요. 일하는 시간은 자유죠. 하지만 하루 수입에 따라서 일하는 시간이 달라요. 평균 14시간정도 일하는데 요즘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밤 11시 정도면 콜이 끊겨요. 피크타임 오후 8시부터 11시 반까지는 기다림 없이 계속 콜을 타지만 그 이후로는 기다리는 시간이에요. 팀으로 움직이는 분들은 4~5km 방경으로 차를 이용해 콜을 받지만 뚜벅이들은 1시간 대기하시는 분들도 있고, 2시간, 3시간까지 기다려서 콜 하나를 받는 분들도 있고요. 기다리다 지쳐서 퇴근하는 경우도 있어요.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콜을 하나라도 더 탈 수 있는 거죠. 12시만 넘어가면 기사들 간에 시간과 싸움이 시작돼요. 그렇다고 쉼터는 없어요. 시의원들에게도 요구를 했지만 쉴 수 있는 쉼터는 없어요. 그래서 기사들이 추울 때는 편의점에서 커피한잔하면서 기다려요. 30분이면 괜찮은데 넘어가면 눈치 보이거든요. 추울 때하고 더울 때가 가장 문제에요. 봄 가을에는 의자도 없을 시 박스, 신문지 깔고 기다리는 경우도 있어요. 쉼터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대리운전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욕을 하셔야 술이 깨시는 분들, 싸움을 해야 깨시는 분들, 속에 있는 것을 개워내야 깨시는 분들 등 천차만별이에요. 한번은 해수욕장 쪽으로 콜을 받아서 갔어요. 젊은 손님이 키를 바닥에 던지면서 산꼭대기에 있는 차를 끌고 내려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손님 정중히 키를 주서서 저한테 주시지요. 그러면 제가 차를 가지고 오겠습니다”라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욕을 하는 거 있죠. 야, 이 00년아 시작으로 계속 욕을 하는데요. 말이 안나오더라고요. “왜 저에게 욕을 하십니까, 제가 잘못했나요?”라고 물었더니, 건방지다는 거예요. 대리기사는 대리기사답게 하라고, 손님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예요. 손님 나이가 30살도 안됐어요. 한참을 실랑이 했죠. 대리운전 기사들은 손님의 안전한 귀갓길을 위해 운전을 대신 해주는 사람일 뿐이에요.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동등한 위치에서 동등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리운전 1년 정도 지나니 머리가 비워지고, 3~4년 정도에는 가슴이 비워지고, 5~6년이 넘어가니까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고 술로 인해서 술이 하는 행동이자나요. 처음에 부당하고 열 받기도 했죠. 지금은 손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들어주고 말동무 해주는 부문이 즐겁고 좋아요. 저를 기억해주시는 손님도 계셨는데 뿌듯했습니다.

처음 대리운전 기사를 등록할 때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사측에 유리한 계약서를 써요. 이중등록(두개의 어플 사용)을 했을 때, 외각지에 가지 않았을 때, 내번호로 다른 타인이 사용했을 때 해지하겠다는 등의 계약서를 쓰는데 읽어볼 시간도 없고, 사본을 주지 않아요. 전국에서 식스대리운전만 이중등록을 막고 있어요. 그렇다고 카카오대리를 사용하는 것은 터치를 하지 않고요. 법적대응에서 졌거든요. 그래서 자기보다 힘이 약한 업체의 어플을 사용하면 터치를 하겠다는 거예요. 코로나19로 콜도 많지 않은데 어플 하나로 돈을 벌기에는 수입이 너무 적어요. 대리운전 기사들이 전체 시내 콜을 볼 수 있게 해야 해요. 여수 전체 시내에서 생성되는 콜을 볼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권한인데 이런 권한을 식스대리에서 막고 있어요. 정부에서 긴급재난기금을 주는데 이 상황에서 자기네들이 이중등록을 막아야 하는 상황은 아니자나요.

보험을 가입 하는데 보험료도 확인이 안됐어요. 보험료가 얼마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죠. 노동조합이 투쟁을 통해서 금융감독원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됐거든요. 우리가 내는 보험료는 1년에 100만원 정도 인데 확인해보니 40~50만원 뿐 이더라고요. 사고가 났을 때 우리가 센터에 전화하면 센터에서 보험회사에 사고접수를 해서 현장출동을 나와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센터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직접 전화하라고 하는 거예요. 직접 보험회사에 사고접수를 하지 않고 센터로 요청하면 사고접수를 하겠다는 목적으로 보험가입료를 받는 거거든요. 그래서 보험가입 관련해서 투명도를 요구했죠. 그랬더니 원칙적으로 할 것이라고 공지가 들어왔지만 또다시 지금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리운전 보험이 단체보험으로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차익금 문제도 발생되는 거고요. 우리는 계속 개인보험으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어요. 보험 1개만 가지고도 충분하게 모든 어플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죠.

그리고 보험 단일화부터 시작해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도 요구하고 있어요. 일을 하면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회사에서 잘리면 먹고살만한 것이 없어요. 대리운전을 하고 있는 기사 평균나이가 55~60세에요. 고용보험이 있으면 실업급여라도 받을 텐데 그런 부분이 없는 거죠.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전국민고용보험이라는 말이 나왔고, 제일 먼저 대리운전 기사가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빠졌더라고요. 어이가 없었어요. 대리운전기사들이 제일 절실해요. 정부 지자체 지원금 관련해서도 대리운전 기사가 빠졌었어요. 죽어도 들어가야 한다고 요구해서 들어가게 된 거예요. 정말로 필요한 직업군은 빠진 상태죠.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정확히 돼야 해요. 점차적으로 한다고 하는데 우리를 특수고용 노동자라고 사장과 사장의 계약이라고 국가는 어렵다고만 하고 있어요. 출근, 임금, 카드결제 등 센터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거든요. 이런 부분만으로 봤을 때 노동자라는 얘긴데 이런 부분을 싹 빼고 계약서 하나만 갖고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은 한가지에요. 수수료 등 불공정한 것이 너무 많았기에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노동조합 대표가 됐다는 이유로 부당해고를 당하기도 했고요. 우리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이 될 때까지 계속 투쟁을 할 거에요. 불공정적인 것, 부당한 것 등을 개선하기 위해서 전태일 열사처럼은 할 수 없겠지만 그의 정신을 계승받아서 전남지역의 대리운전 기사를 위해서 계속 외치고 활동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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