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노조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전태일 50주기 기념 사진전 인터뷰]
환경미화원, 박정미

  • 기사입력 2020.07.07 16:24
  • 최종수정 2020.11.23 15:46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 속에서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오는 11월, 지금의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현재를 사진전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우리는’. 사진전에 앞서 민주노총이 만난 여성노동자들을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노조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세요”

환경미화원, 박정미

 

박정미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제주지부 제주대학교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박정미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제주지부 제주대학교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제주대학교에 다니는 박정미입니다. 여기서 미화원 일을 하고 있어요. 건물을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고 있죠. 마흔세 살에 들어왔어요. 그전에는 주부였어요. 집안일하면서 과수원을 맡아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귤값이 폭락하면서 애들 학원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어요. 결혼 전에는 사무직을 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가정주부로 살았으니까, 여기가 결혼하고 첫 직장인 셈이네요.

일은 소개받아서 하게 됐어요. 아는 분도 여길 다녔거든요. 처음 일자리 소개해달라고 했을 때는 ‘그런 일 못 한다’면서 절 말렸어요. 해보지 않은 생소한 일이긴 했지만, 하지 못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일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일을 시작한 거죠. 제주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학생이잖아요. 제 자식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내 딸, 내 아들이 공부하는 곳이니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죠.

집을 청소하는 것과 다르게 학교는 통제가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가령 화장실에서 누가 담배를 피웠을 때 ‘깨끗이 써달라’ ‘건물 내에서 담배 피우지 말아달라’고 해도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행동하기도 하거든요. 그럴 땐 아무리 내 자식 같아도 “하지 마!”라고 강하게 말은 못해요. 학생들도 저도 각자의 자존감이 있는 거잖아요? 인간 대 인간으로.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하면 안 되니까, 그런 일들이 있어도 말을 조심해서 하는 편이에요. 암만 그래도 서로를 대우해주고 교감을 나눠야 하니까요.

만날 때마다 “이모님 고생하십니다”라고 얘기해주면 학생들도 있어요. 그럴 땐 기분이 좋죠. 일하는데 자부심도 느끼고요. 여기 처음 왔을 때 음악관 건물을 맡았어요. 정말 형편이 없었거든요. 구석구석 다니면서 청소를 했는데, 학생회장이었던 학생이 학교 홈페이지 ‘칭찬합시다’에 제 이야기를 썼나 봐요. “음악관 이모님이 청소를 참 깨끗하게 해주신다”라고요. 기분이 좋았죠.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렇게 일해왔어요. 18~19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용역으로 들어왔고, 2018년 3월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제주대는 국립대예요. 그러니 학교도 정규직 전환 요구가 있었고, 저희도 그런 생각이 있었고요. 일치가 돼서 협상을 시작했어요. 학교 측 몇 명, 우리 노동자도 몇 명. 처음부터 의견이 잘 맞진 않았어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만큼을 학교는 해주지 않으려 했거든요. 반대로 학교 요구안은 우리가 볼 때 못마땅했고요.

남녀 임금 차이도 있었어요. 8만 원 정도? 용역 시절 5만 원이었던 남녀 임금 차이가 더 늘어난 거죠. 그래서 협상이 중단됐어요. 저희는 8명이 협상에 임했는데, 남자 넷, 여자 넷이었거든요. 여자들이 전부 일어서서 나가버렸죠.

작년에 퇴직하신 소장님이 있는데요, 그분이 저희를 설득하셨어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딱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용역보다 정규직이 더 나으니, 하나씩 하나씩 맞춰가자”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정규직이 됐어요. 그런데 막상 정규직이 됐어도 용역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구요. 조건이 너무 똑같은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노동조합을 생각했어요.

노조는 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희가 아직 용역 소속일 때 공공연대노조에 이성일 위원장님이 계셨는데요, 그분이 제주대에 오신 적이 있어요. 위원장님이 미화 아주머니들 만나서 얘기한 거죠. “고생하십니다. 혹시 사람들 모아서 노동조합에 관해 설명할 자리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작은 건물에 한 25명 정도 모여서 노조 설명회를 들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늘 소장님이 만류하셨어요. 소장님은 학교 측 사람이니까, 노조가 생기면 피곤한 거잖아요. 그래도 소장님에게 자꾸 얘기했어요. 이번에는 저희가 소장님을 설득한 거죠. 소장님이 퇴직하기 2년 전쯤이었거든요. “소장님, 퇴직하시면서 저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노조를 해라’, 우리 직원들 모아 가지고 소장님이 한번 밀어주십서. 소장님 마지막에 가시면서 해줄 수 있는 건 그 일 밖에 없수다.”

소장님도 느낀 게 있었나 봐요. 어느 날 산책로에 모여서 ‘나도 교섭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학교와 우리의 요구사항이 맞지 않는다. 힘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힘을 많이 받았죠. 그때 노동조합에 100% 가입했어요.

노조를 하기 전에는 솔직히, 안 좋게 봤어요. 제가 직장생활을 했던 게 아니잖아요? 매번 텔레비전을 보면 주변에서 ‘으쌰으쌰’만 하잖아요. “쟤네는 왜 저렇게 꼭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막상 노조를 하고 알게 되니 노동조합 덕에 노동자의 권리를 내가 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았죠. 더 찾아보게 되고 그런 것 같아요. 아까 학교와 협상을 할 때 임금 차이가 발생했다고 했잖아요? 노조를 하면서는 동등한 급여를 받고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깨달은 거죠. 예전에는 내가 노조를 잘못 이해하고 판단했구나 싶어요.

노조가 되면서 달라진 점도 있어요. 저희는 지금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제주지부 제주대학교지회 소속인데요, 미화는 물론 경비, 시설, 조경, 생활관, 급식 업무 노동자들이 소속돼있어요. 미화 파트에도 남성 노동자가 있고요. 이 부분에서 차이가 있었거든요. 기존에는 남성들이 하는 일과 여성들이 하는 일이 조금씩 달랐어요. 가령 비바람이 치는데 하수구를 살펴야 한다, 우리 여자들은 겁나거든요. 그럴 때 남자들이 나섰어요. 기계를 만져야 하는 일이라든가. 반면 우리는 그런 일을 못 하는 데다 여기서 일하는 남자들은 다 가장이잖아요. 그래서 노조를 하기 전에 남녀 임금에 조금 차이가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노조를 하면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개념이 생겼고, 지금은 남자분들도 건물마다 들어가서 청소를 해요. 고무장갑 끼고 변기도 닦고. 차이를 두면 안 된다는 밑바탕이 생긴 거죠.

노조를 하면서 변화도 생겼고 인식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주변에서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해요. 우리 신랑부터 ‘노조 하는 건 이해하지만, 너무 나서지 마라’라고 하죠. 저희는 다 80년대 세대예요. 전태일 열사를 다 알죠. 그런데도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나서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총무 업무만 하고 더 나가지 말라’라고 해요. 제가 지회 총무부장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전태일 열사를 알고 있는 건 신랑 덕이에요. 열사가 분신했을 때 저는 사무직 노동자였어요. 그러니 신문에 나도 깊이 알려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신랑하고 서울에 갔는데 평화시장 지날 때 저를 부르더라구요. 이게 뭔 줄 아느냐고. 열사가 분신했던 자리를 보여주면서요. 전태일 열사를 기리기 위해서 이걸 만들어 놓은 거래요. 이런 분 덕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 있는 거라고 하면서. 우리 신랑이 그렇게 얘기해준 거예요.

저희만 봐도 정규직이 되기 전과 후가 굉장히 달라요. 전에는 매년 이력서를 써야 했는데 이제는 정년보장이 됐어요. 용역 때는 없던 연차를 쓸 수 있구요, 퇴직금 적립도 돼요. 상여금도 받죠. 전에는 남들이 버린 냉장고, 커피포트 주워다 구석에서 쉬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당당히 휴게실도 받고 냉장고도 바꿔줬어요. 호칭도 바뀌었죠. 예전에는 ‘아줌마’, ‘아저씨’였는데 지금은 ‘선생님’으로 불러줘요. 대우도 달라졌어요.

아까 말했던 전태일 열사, 또 예전부터 노동조합을 했던 분들 덕에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 덕에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노조를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저부터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지금은 참 좋은 점이 많다고, 꼭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박정미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제주지부 제주대학교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박정미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동조합 제주지부 제주대학교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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