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나 하나 꽃 피어’…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게 노동조합이니까요”

[전태일 50주기 여성노동자 인터뷰]
케이블방송CS매니저, 최아름

  • 기사입력 2020.08.28 09:54
  • 최종수정 2020.11.23 15:46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나 하나 꽃 피어’…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게 노동조합이니까요”

케이블방송CS매니저, 최아름

최아름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딜라이브금곡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최아름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딜라이브금곡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최아름입니다.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딜라이브금곡지회 조합원이에요. 우리 노조는 따로 가입된 가맹조직은 없고 민주노총 서울본부에 직접 가입됐습니다.

노조 이름처럼 저는 딜라이브 금곡점에서 CS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비즈팀이라고 하는데요, 아파트나 호텔, 헬스장, 요양원, 병원 등 단체계약을 관리해요. 요금이나 민원 등 전산처리 업무를 맡고 있죠. 지역적으로는 경기도 남양주, 여주, 양평, 광주, 구리, 하남까지 관리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업무량이 증가하는 때가 있어요. 요금청구서가 나오는 기간인데요, 그럴 때는 일이 많아요. 정해진 시간 내 처리할 수 없으니까 시간 외 근무도 하죠. 그 외에는 저희도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합니다.

직업 특성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에요. 특히 민원이 발생했을 때죠. 가입자와 통화를 하다 보면 욕을 하거나 막무가내로 화를 내는 분들도 있거든요. 회사 응대 체계에 따르지만, 사실 별다른 응대 방법은 없어요. 가입자 불만이 풀릴 때까지 전화를 먼저 끊지 않으려고 하죠. 갑자기 끊어지면 불만신고가 접수되거든요.

불만이 접수되면 책임전달로 연결돼요. 나중에 인사평가 등 고과에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할 수도 있죠. 최대한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고 하는데, 제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니까… 그런 부분에서 지칠 때도 잦죠. 저희도 감정노동을 하니까요.

저는 2010년에 CNM 하청업체에 입사했어요. CNM은 지역별로 지사를 두고 그 아래 하청업체를 뒀는데요, 그 업체 중 한 곳에 들어간 거죠. 올해로 벌써 10년 차예요.

입사 후 첫 한 달을 일하고 월급을 받잖아요? 그런데 당직비가 잘못 계산돼 지급됐더라고요. 당시 총무과장에게 가서 말했어요. 당직비가 잘못 나온 것 아니냐, 그랬더니 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흐르더라고요. 다른 직원이 제게 “여기는 무조건 하루에 얼마로 계산해서 지급해. 그리고 이런 거 물어보는 거 별로 안 좋아해”라고 조용히 귀띔해주더라고요.

그러다 노동조합에 가입했어요. 입사 3개월 만에요. 그때 CNM 하청업체 중심으로 비정규직노조가 생겼거든요.

본래는 희망연대 소속으로 딜라이브노동조합은 정규직지부만 있었어요. 정규직노조가 생기고 몇 년 뒤에 비정규직지부가 생긴 거죠. 저는 그때 가입했고요. 지금도 같이 일하시는 김진억 국장님이 “우리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가입할 수 있겠냐?”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때 꽤 많은 직원들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CNM 정규직지부만 있던 회사였다가, CNM이 운영하는 전국 지사별로 비정규직노조가 확산됐죠.

그리고 해고됐어요. 노조 가입한 지 6개월 만에요. 당시 하청업체 대표가 CNM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요. 그 과정에서 직원들 재계약이 안 되고 모두 계약해지가 됐거든요. 그러다 새 업체가 CNM와 계약을 맺었고 기존 업체 직원들 면접을 봤어요. 문제는 그때 노조에 가입했던 직원들에게만 ‘채용에서 떨어졌다’라는 문자를 보냈어요. 그렇게 해고가 된 거죠. 당시 109명이 함께 해고됐어요.

109명이 전부 광화문에 모여서 투쟁을 시작했어요. 6~7개월 가량 한 것 같아요. 강성덕, 임정균 동지가 전광판 고공농성을 한 게 그때예요. 임단협을 할 시기이기도 해서 CNM 직원이 전부 파업을 했어요. 직장폐쇄 당해서 회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도 있었죠. 정규직지부 파업이 끝난 뒤에는 저희 109명만 광화문에 남아서 투쟁을 했어요.

그때 제가 동두천에 살았거든요. 매일 시청역까지 다녔어요. 지하철로 한 시간 반인데, 마치 회사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 9시에 맞춰서 나갔죠. 조금이라도 늦으면 조합원들이 눈치를 줬거든요. (웃음) 6개월 동안 매일 광화문으로 출근했어요. 주말도 빠지지 않고요.

농성장에서 밥을 주면 먹고, 잠을 자야 하면 길에 누워서 자고 그랬죠. 겨울엔 너무 추워서 집에 있는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갔던 기억도 나요. 그런 거 아세요? 엄청나게 추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따뜻한 곳에 들어가면 얼굴이 새빨개지잖아요? 종일 밖에서 떨다가 집에 가려고 지하철 타면 사람들이 ‘쟤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렇게 집에 오곤 했죠.

그때 사무차장을 맡고 있을 때였어요. 전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 간부를 했으면 좋겠다고들 해서요. 그러니 뭔가 책임감이 생기잖아요? 주위 지인이며 가족들도 다 반대했거든요.

아빠가 회사 다니실 때 노조를 하셨는데, 경찰서에 한 번 끌려가신 적이 있대요. 오락부장을 맡으셨는데, 앞에서 춤을 추다가 끌려나갔대요. (웃음) 처음에는 노조 활동을 엄청 반대하셨어요. 해고된 상태라 아빠한테 돈을 빌리기도 했거든요. 대출을 받았는데 대출금을 못 갚아서 대출업체가 우리 집에 찾아간 일도 있었어요. 동네에 소문이 다 났었대요. “딸내미가 노조를 하다가 빚쟁이가 됐다더라.” 그 작은 시골 동네에 말이죠.

최아름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딜라이브금곡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최아름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 딜라이브금곡지회 조합원. ⓒ 변백선 기자

굉장히 힘들었죠.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저뿐만 아니라 다른 조합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그래도 억울한 게 있으니, 그 억울함 풀려고 끝까지 버텨냈어요. 그렇잖아요, 내가 저 사람들보다 일을 못 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채용되지 않았으니까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투쟁 끝나고 다른 업체가 109명을 관리하게 됐어요. 한 80여 명이 다른 업체에 채용되는 방식으로 고용됐다가 이후 면접을 보고 정규직에 채용됐어요. 지부에서 매년 임단협 할 때마다 조건을 걸거든요. ‘올해는 무조건 몇 명 이상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이게 아니면 우리는 합의를 하지 않는다.’ 작년에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됐어요. 노조에 가입한 업체 소속인 분들은 다 정규직이 됐고, 노조가 없는 곳은 아직 비정규직으로 남아있고요. 그분들이 노조에 들어온다고 하면 다시 정규직 전환을 내걸고 투쟁을 준비하겠죠?

사회적으로 노동조합을 좋게 보지는 않잖아요. 대부분은 삐뚤게 보기도 하니까요. 농성장에 있을 땐 지나가던 어르신들이 “너네는 공부를 안 해서 이러고 있는 거야”라고 하시기도 했어요. 저도 예전에 그랬고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보면 단순히 ‘빨갱이들이 데모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당신도 언젠가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 그래서 전 누군가는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조합 활동이란 게 나쁜 것을 바꾸려고 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점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우리 다음 세대에게 열악한 노동환경을 물려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노동조합을 하는 건 노동자인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잖아요. 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만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요. 우리가 싸워 쟁취한 혜택은 노조원 비노조원 구분 없이 모두에게 적용돼요. 저는 그런 자부심이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가 있어요.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예요. 이 시를 너무 좋아해서 화분에 캘리그라피로 써서 주위에 선물도 하고 그랬어요. 저는 노동조합을 하는 사람들이 이 시에 나오는 ‘꽃’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열사라 부르는 전태일도 그렇고요.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모두가 그렇게 꽃을 피우고, 그 꽃 덕에 풀밭이 다 꽃으로 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남편은 딜라이브 멀티업무매니저로 일해요. 현장 설치와 A/S, 철거 등의 업무를 하거든요. 저희 부부는 광화문 농성 투쟁도 같이했어요. 그땐 연애하던 시기였는데, 주위에서 ‘투쟁하러 온 게 아니고 연애하러 온 거냐’라는 볼멘소리도 많이 들었죠. 투쟁 다 끝나고 결혼했는데, 후에 아이를 낳으면 꼭 그렇게 얘기해주려고 해요. “엄마아빠는 노동조합 활동을 한 사람이야. 너도 나중에 더 크면 노동조합을 하게 될 거야”라고요.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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