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먼저 손 내밀면 좋겠어요, 노동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요”

[전태일 50주기 여성노동자 인터뷰]
수도검침원, 박은옥

  • 기사입력 2020.11.17 17:50
  • 최종수정 2020.11.23 15:47
  • 기자명 백승호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먼저 손 내밀면 좋겠어요, 노동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요”

수도검침원, 박은옥

박은옥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박은옥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저는 박은옥입니다.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소속이고요,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을 맡고 있어요.

당진시와 위탁계약을 맺고 수도검침하는 일을 해요. 개개인 집에 있는 검침기를 직접 방문해서 검침하는 거죠. 수치 확인하는 일이에요.

물 사용량을 원격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까, 누군가는 직접 가서 수치를 확인해야 하거든요. 누수가 되는지도 확인해야 하고요. 누수된 부분이 있거나 체납내역, 사용량을 수용가에게 알려주죠. 또 그런 수치를 당진시에 보고하는 일도 합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고지서 작업도 했어요. 봉투에 고지서 넣어 우체국에 갖다 주는 것까지죠. 지로라고 부르잖아요? 그걸 접어서 봉투에 넣고 또 물 아껴쓰라는 홍보물, 수도요금까지 다 넣는 거예요. 수도계량기가 밖에 있으니까 겨울엔 보온재 안 넣으면 터지거든요. 그러니 겨울이면 보온재가 필요한 집에 그것도 넣어줬죠. 그걸 지난해 10월까지 했던 거 같아요.

수도검침 일은 2013년 3월부터 시작했어요. 그전에는 학습지교사를 했고요. 눈높이요. 요새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가 이슈잖아요? 그때도 밤늦게 다녀야 하고 그랬으니까, 마음의 부담이 컸어요. 학습지 그만두고 쉬던 차에 수도검침원 공고문을 봤죠. 당진시가 검침원을 모집했어요. 지자체에서 모집하는 거니까 아무래도 처우가 좋을 거란 생각을 했죠. 그래서 지원했어요.

마흔다섯 먹기 전까지는 다른 데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어딜 가도 갈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나이 50이 넘으니 자신감이 떨어지더라고요. 어디서 뽑아주는 곳도 없고요. 여자 나이 50 넘었다고 하면 잘 안 뽑아줘요. 그래도 힘닿는데까지, 할 수 있는 데까지 일하자고 생각해서 하게 됐죠.

저는 주로 아파트가 많은 지역에서 일해요. 가고 싶은 지역을 선택해서 다닐 순 없어요. 배정 받았더니 아파트가 많았던 거죠. 처음엔 좋다고 생각했어요. 한 아파트에 800세대가 있다고 하면, 수도계량기는 딱 하나만 있거든요. 그리고 상가에서 쓰는 것까지 하나. 우리가 메인 계량기 하나만 검침해서 시에 보고하면, 그걸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나누는 거예요. 그래서 좋아했어요, 단지 전체에 2개면 간단할 거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수도계량기는 땅에 있어요. 가스와 달라요. 땅 속에 있거나 아주 깊이 있거나. 말이 좋아 땅 속이지, 그 땅 속이란 게 깨끗하지 않거든요. 일일이 뚜겅을 열고 확인해야 하는 건데, 뚜껑을 열면 쥐며 뱀이며 온갖 벌레가 다 있어요.

검침 다니다보면 이런 일도 있어요. 이달 사용량이 평소보다 많으면, ‘다음 달에 요금 더 나올 거다’ 그렇게 알려주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인정하지 않아요. “나는 지난 달과 똑같이 사용했다” 그렇게 나오죠. 민원 상담도 보통 일이 아니예요. 본인들이 써놓고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비가 오는 것도 문제예요. 계량기는 아파트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있어요. 비를 맞으면서 흙을 만지고 계량기 열어야 하니까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일을 못하죠. 부슬부슬 내릴 때는 그냥 하기도 하지만요.

저희는 처음부터 별도의 출퇴근이 없었어요. 검침 중에 무슨 일 있으면 시청에 들어가고, 검침 끝나면 말일이나 1일에 수치를 PDA에 입력해요. 2일에는 상호나 전화번호 등 정보가 바뀐 걸 사무실 돌아가서 입력하는 거죠. 그러다 10~12일쯤 고지서 나오면 2~3일 고지서 작업을 하고, 수도검침은 매월 20일부터 30일까지 해요. 노동시간이 만만치는 않죠.

약 200가구 정도 몰려있는 지역이 있어요. 그걸 하루에 해내야 해요. 시골 같은 경우에는 거리가 멀잖아요, 그래서 하루에 100~150가구도 하기 어렵죠. 밖에서 땅을 파는 일이니까, 폭염기나 혹한기가 문제예요. 여름엔 뜨거우니까, 동네 사람들이 ‘쓰러지고 싶어 미쳤냐. 빨리 집에 들어가라’고 하죠. 겨울엔 길이 얼어요. 계량기 자체도 물을 머금고 있어서 얼어있고요. 여름에는 뜨거우니까 해 없을 때 일찍 나가고, 겨울엔 추우니까 해가 떠서 좀 녹을 때 나가는 거예요.

보람 있을 때도 많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어디서 누수가 되는지 잘 모르시잖아요. 그런 거 살펴봐주면 너무 고맙다고 하세요. 어떤 동료는 밭에서 쓰러진 노인을 옮겨드린 적도 있대요. 부인이 암 말기인 수용가와 통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신세한탄을 하시는 거예요. 방법이 뭐 있나요, 이야기 다 듣고 힘내시라고 했죠. 때론 아무 위로도 없이 들어주는 것 자체가 위로일 수 있잖아요. 나중에 그분을 직접 만난 적 있는데, 정말 고맙웠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저희는 대부분 여성들이에요. 남성검침원도 있기는 하지만요. 시 수도과 담당자 말로는 남성들은 검침을 꼼꼼하게 안 한다고 해요. ‘여성들이 깔끔하게 더 잘한다’ 뭐 그렇게 얘기하는데, 아무래도 자기 밑에 두고 지휘하려면 남성들보단 여성들이 통제하기 쉬우니까 쓰는 거겠죠.

저희는 당진시가 고용했어요. 직접고용은 아니고요, 시에서 위탁한 거죠. 일할 땐 위탁이 뭔지도 모르고 했어요. 언젠가는 처우도 좋아지고 오랫동안 일하면 직접고용도 되지 않을까, 한때는 그런 희망도 있었죠. 당진시 수도검침원은 전부 스물한 명이에요. 다들 위탁계약을 맺고 일하죠. 중간매개체는 없어요.

시는 저희를 ‘사장님’이라고 불러요. 당진시장하고 1대 1로 위탁계약을 맺거든요. 그러면서도 “집에서 노는 주부들을 써준 취지를 생각하면 (검침원들이 시에) 고마워해야 한다”라고 하죠. 그래서인가, 일하는 중에 차가 고장나도 저희는 자비로 고쳐야 해요. 기름값도 자부담이고요, 밥값은 뭐 당연한 거죠.

업무량이 상당해요. 수도검침은 매일 한 달 내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느 기간에 집중해서 하게 돼요. 12일 동안 저는 1,420가구를 집중적으로 돌거든요. 그러면 산술적으로 하루에 110가구가 넘게 방문하게 되는 거예요. 이것도 분명히 몸을 쓰는 노동이잖아요? 일을 오래 하면 할수록 몸이 아파요.

저희 급여는 건당 계산돼요. 내가 한 건을 하면 한 건당 한 건당 돈을 먹는 거예요. 한 만큼. 내가 열 곳을 검침하면 그에 맞게 돈을 주는 거죠. 공무직은 아파서 쉬어도 급여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니니까…. 아플 수가 없죠.

박은옥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박은옥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저는 다른 건 모르겠어요. 정부에서 상시지속적인 업무, 그리고 생계와 관련된 업무는 직접고용했으면 좋겠어요. 당진시민들이 물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꼭 검침을 해야 하는 것도 맞잖아요. 처음 일 시작한 2013년 3월부터 지금까지 단 한 달도 저는 일을 거른 적이 없어요. 심지어 구제역이 있을 때도 저희는 수도검침을 했거든요. 그러면 상시지속업무 맞잖아요. 당연히 직접고용 대상이에요. 고용노동부에서도 민간위탁 5분류로 판단됐어요. 또 권고사항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당진시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해 7월엔 당진시에서 서약서를 쓰라고 했어요. 어느날 검침원 회의에 갔더니 한 공무원이 그걸 쓰라는 거예요. 읽어보란 말도 없이 ‘다른 검침원들도 다 썼으니까, 여사님도 쓰시면 돼요’ 그런데 읽어봤더니 기분이 너무 나쁜 거예요. “집에 가서 고민해보고 쓸게요.” 그럤더니 온갖 욕설을 내뱉더라고요. ‘너 일을 얼마나 잘 하나 보자’ 등등. 그러다 실갱이가 좀 오갔죠.

‘내가 왜 굳이 이걸 써가면서까지 일을 해야 할까’ ‘쟤는 왜 나한테 저렇게 욕을 하면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할까’ ‘왜 이 일로 따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할까’ … 잘못된 거 같아서 감사실에 전화를 했어요. “이거 갑질 아닌가요? 서약서를 한번도 쓴 적이 없는데 도대체 왜 서약서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했죠. 감사실에서 변호사와 상의하더니 ‘쓸 의무는 없다’고 하더라고요. 웃긴 건 그 직원은 ‘자기는 경고, 주의만 줬다’라는 거예요. 그 정규직 공무원이요.

그 전부터 저희 임금도 오르지 않았어요. 아, 임금이 아니고 저희가 받는 돈은 ‘수수료’예요. 그게 계속 동결 상태였어요. 당진시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우리 수수료가 비싸다고 해요. 그건 당진시가 하는 말이니까, 저희도 알아봐야 하는데 알아볼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가입하면 좋겠다. 임금이나 수수료에 대해서, 부당한 처우에 대해서 누군가 같이 맞서서 싸워줄 노동조합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지난 2월쯤 했어요. ‘우리 직접고용 대상이라는데, 계속 가만히 있을 거야? 이렇게 바보취급 당하면서 있을 거야?’

지난해 8월 노조 설립과 함께 가입했어요. 노동조합이 참 고마웠죠. 노조가 없을 땐 개인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거든요. 당진시도 저희를 우습게 봤고요. 지금은 그런 거 없어요. 직접고용 문제 때문에 지금은 지휘감독을 안 하고 있으니까, 저희를 건들 수 없죠. 사실은 지휘감독을 해야 하는데. 저희 목표는 직접고용이에요. 지금은 공무직으로 100% 전환할 것인지 단시간근로를 유지할 것인지 심의할 단계가 남았어요.

노조를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희는 노동조합을 하기 전엔 외로운 섬 같았거든요.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죠. 아직도 그런 분들이 많을 거에요. 노동조합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좋겠어요. 어렵지 않게, 현장 노동자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손을 내밀면 좋겠어요. 그러면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도 노동에 더 관심을 갖고 한 걸음 다가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인터뷰·사진 백승호 / 정리 송승현

박은옥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박은옥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당진시수도검침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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