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조금 더 목소리 내서, ‘나 봉제인이야’ 당당한 게 목표예요”

[전태일 50주기 여성노동자 인터뷰]
봉제인, 홍은희

  • 기사입력 2020.11.19 14:06
  • 최종수정 2020.11.23 15:47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조금씩 목소리 내서, ‘나 봉제인이야’ 당당하고 싶은 게 목표예요”

봉제인, 홍은희

홍은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부지회장. ⓒ 송승현 기자
홍은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부지회장. ⓒ 송승현 기자

이름은 홍은희라고 하고요, 현재 숙녀복을 만드는 미싱사로 일하고 있어요. 재단된 옷감으로 완성된 옷을 만드는 일을 하죠.

1984년부터 일을 시작했어요. 16살이었을 때죠. 37년 가까이 이 일을 했네요. 원래는 그 나이 때 학생이어야 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봉제 쪽에 온 어린 여공들은 대부분 집안이 어렵거나 식구들 생활비, 동생들 학비 벌려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당시엔 취직하기 제일 쉬웠던 곳이고 또 잠도 재워주니까 이쪽으로 많이 흘러들어왔죠. 저도 오남매 집안이에요. 시작은 서울 중화동 쪽이었어요. 외숙모 소개받아서 들어가게 됐죠. 거기서 1년 정도 일하다가 나왔고, 그 뒤에 종로, 동대문 쪽으로 나와서 일을 했어요.

많이 힘들었어요. 지금이야 작업장에서 정해진 시간에 맞춰 일만 하면 되지만, 그때는 강요와 강제가 심했거든요. 작업시간을 지킨다기보다는 ‘무조건’ 일하다가 쪽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서 일하고…. 이런 시간이 많았어요. 사실 그런 걸 견뎌내기에 16살은 너무 어린 나이죠. 생각해보면 사람 대접은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일하는 노예 느낌?

전태일 열사가 분신했을 때가 1970년이잖아요? 제가 일했던 80년대와 달라진 게 없어요. 현장은 바뀌지 않고 비슷했죠. 다락방은 여전하고 그 위에 재단방 있고 그 옆에 칸막이 하나 문 하나 달아놓고 기숙사로 썼고요. 당시를 다룬 영화를 보면 다락방 나오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거기 나온 거랑 똑같았어요, 제가 일할 때도.

저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미싱사는 시다를 거쳐서 돼요. 예전엔 미싱사 몰래 미싱판 올라가면 크게 혼났거든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몰래 배우기도 하고 밤 늦게 배우기도 하면서 다들 미싱사가 돼요.

그러다보니 지금은 시다가 많이 줄었어요. 전에는 팀을 짜서 일했다지만, 지금은 미싱사 혼자 옷을 만들어요. 잘하시는 분들은 하루에 50벌 정도씩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70~80년대야 미싱사가 돼야 형편이 나아진다고 했지만, 지금은 도급제를 해서 5대 5로 똑같이 나눠 갖거든요. 그러니 굳이 미싱 안 해도 되죠. 오히려 ‘이쪽이 더 적성에 맞다’며 시다만 하는 분들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을 다 가리켜서 봉제인이라고 해요. 옷 만드는 사람이 미상사와 시다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재단사도 있고요 옷 마무리를 하는 시아게도 있어요. 단추만 다는 분도 있죠. 이 모두를 봉제인이라고 해요. 그리고 저희는 서울 지역 봉제인, 즉 봉제노동자가 모인 서울봉제인지회 노동조합인 거고요.

지회 조합원 중 30%는 사장님이에요. 과거에 재단사 하다가 자기 사업장을 차린 경우죠. 봉제인 자체가 원래 일하던 분들이 대부분이긴 해요. 30년, 50년씩 일한 사람들. 조금 젊다 싶은 봉제인이 있으면 거의 다 외국인노동자죠.

젊은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현장에 오는 게 아니라 옷 한두 장씩 만들어서 플리마켓 형식으로 팔아요. 봉제산업의 새로운 형태이기도 하죠. 아니면 디자이너 쪽으로 가는 친구들도 많아요. 동대문시장 쇼핑상가에 가면 젊은 디자이너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디자인을 하면 저희가 옷을 만드는 거죠. 그러니 현장에는 젊은 노동자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봉제산업이 없어질 수는 없어요. 특히 우리나라 미싱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뛰어나거든요. 바느질 자체도 그렇고 옷을 살펴보면 티가 확 나거든요. 국내 생산 제품만 찾아서 입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문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외면 받으면서 사각지대에 버려져 있다는 거예요. 너무 방치됐죠. 후배들과의 연결고리가 없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물론 후배들도 봉제가 엄청난 기술인 걸 잘 알죠.

그리고 노동환경이 다른 직업과 다르다는 것도 잘 알아요. 봉제산업 노동환경이 엄청나게 좋아졌다거나 산업이 제도권 내에 들어와있다거나 노동전문직으로 인정을 받는 형태라거나… 그러면 이쪽으로도 많이 오겠죠.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아는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자기 개인시간 갖고 싶어하잖아요. 누가 잠 못자고 자기 시간 내어가며 일을 하려고 하겠어요. 그러니 디자이너로 많이 진출하기도 해요. 디자이너는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5시면 퇴근하니까요. 대기업에 가면 연차, 연봉도 올라가고요.

반면 봉제산업은 점점 어려워졌어요. 올해야 코로나19 여파가 있었다지만, 그전부터 물량도 점점 줄어들었거든요. 예전에는 힘들어도 서로 다독이면서 일했던 분위기도 있었는데, 지금은 경쟁도 늘어났고요.

저희 1년 연봉을 따져보면 최저임금이 안 될 거예요. 봉제산업 성수기는 3~5월로 보는데요, 이럴 때는 하루에 15~16시간씩 일해요. 두 배 잖아요? 한 달에 두 배 일해서 두 달치 돈을 버는 거예요. 한 달로 보면 엄청 많이 버는 것 같지만, 시간으로 계산해보면 사실 최저임금이 안 되거든요.

이렇게 봉제산업이 어렵다는 거 모두가 다 알지만, 그렇다고 어디에 알리지도 못하고 뭘 원한다고 소리를 내지도 못할 건 아니잖아요. 산업 특성 상 많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이들을 모으려고 해요. 조금이라도 모아서 더 나은 제도권에 목소리 높여서 요구하고 싶은 거죠. 그게 서울시든 서울 지자체든, 어디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노조 만들었어요. 3~4년 정도 준비해서 2018년 11월 27일에 창립했죠. 전국 봉제인이 9만 명 정도라고 알고 있거든요. 아마 집계되지 않은 사람까지 하면 10만 명 넘을 거예요. 그중 조합원에 가입한 사람은… 사실 적어요.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다들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잖아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조는 과격한 모습이고. 그래서 대부분 거부반응을 보여요. 얼마 전까지 집중홍보기간이라 해서, 사업장 찾아다니며 노조 홍보를 많이 했거든요. 처음보다는 노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쉽긴 하죠.

저희 봉제인지회는 사장님이든 직원이든 함께 어우러져서 제도권 내에 들어가자는 거예요. 홍보하러 다니면서 그런 이야기를 잘 설명하죠. 우선 봉제인을 가능한 많이 보으려고 해요. 봉제인지회 내에 공제회를 뒀고요, 그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복지를 만들어가고자 해요. 인원이 더 늘어날수록 공제회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니까, 시작은 좀 작더라도 그런 부분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사실 예전에 청계노조에서 활동했었어요. 1987년에요. <전태일 평전>에서 보는 것처럼 다락방에서 지내며 한두 시간만 자고 일하고… 그러다 6~7명이 항의를 했는데, 한 명이 잘렸거든요. 나머지는 쫓겨났고요. 어디 말할 데도 없어서 대자보 써서 벽에 붙이고 그랬죠. 그런 인연 덕에 지금도 노조를 하는 것 같아요.

우연히 선배들이 봉제인지회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사실 ‘지금에 와서 이게 될까’ 싶었거든요. 예전이라면 큰 상가를 상대로 노동운동을 했다지만, 지금 현실은 또 다르니까요. 정말 의문이긴 했어요.

그런데 노종조합과 공제회가 결합하면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더 나이 먹기 전에 해보려고 해요. 저도 봉제산업 노동환경이 정말로 바뀌었으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

언론에서 봉제인을 조명하면 다들 ‘전태일의 후예’ ‘전태일 직계후배’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사실 엄청 부담스러워요. 그저 일만 하고 살다가 이제야 봉제인지회를 만든 건데, 이렇게 주목받아도 되는 건가 싶어요. 특히나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잖아요. 부담감도 크죠. 더 잘해야 할 텐데… 걱정도 많고요.

서울봉제인지회를 만든지 3년이 됐어요. 지금 저희는 너무 오랫동안 끊어져 있었던 봉제산업의 맥을 이어간다고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봉제인들은 삶의 외곽에서, 생각지도 못한 관계 속에 있었거든요. 이젠 우리가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또 모여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물론이거니와 작업환경이나 노동계좌제부터 이력증빙까지 이뤄내고 싶은 거예요. 어디 가서 ‘나 이런 일 하고 있다’라고 당당할 수 있는 게 저희 목표예요.

홍은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부지회장. ⓒ 송승현 기자
홍은희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서울봉제인지회 부지회장.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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