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교사도 ‘노동자’니까… 아이들의 노동자성을 키워주고 싶어요”

[전태일 50주기 여성노동자 인터뷰]
초등교사, 문경미

  • 기사입력 2020.11.25 08:01
  • 최종수정 2021.05.12 17:38
  • 기자명 송승현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교사도 ‘노동자’니까… 아이들의 노동자성을 키워주고 싶어요”

초등교사, 문경미

문경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동두천양주지회 사무국장. ⓒ 송승현 기자
문경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동두천양주지회 사무국장. ⓒ 송승현 기자

 

초등학교 교사 문경미입니다. 제주교대 졸업하고 선생님이 됐어요. 2003년 발령을 받고 서른 살까지 제주도에 있었어요. 결혼하면서 육지로 나왔죠. 지금은 경기도 양주시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 아이들을 맡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을 하고 있어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동두천양주지회 사무국장입니다. 지금 일하는 초등학교분회 조합원이기도 하고요. 분회에선 저 혼자예요. 1인분회거든요. 지회 자체는 전체 교사수 대비 조합원 비율이 높지만, 일부 몇 개 분회에 집중돼 있어요. 많은 분회가 저처럼 1인분회로 활동하고 있죠.

전교조 조합원 내내 통일위원회 소속이었어요. 교사이자 전교조 조합원으로서 제게 멘토가 되는 선생님들이 계시거든요. 그분들이 전부 통일위원회 소속이어서 저도 함께 활동했죠. 그러다 올해부터 지회 사무국장을 맡았어요. 지역운동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에요. 마침 경기북부지역에 터를 잡기도 했으니까, 지역운동을 오래 하려면 실무를 더 잘 알아야 할 것 같았거든요. 자원한 거예요.

교대를 다녔지만 본래 교사에 대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예요. 엄마가 선생님 되지 못한 게 평생의 한이라면서, ‘내 딸이라도 선생님 하는 걸 보고 싶다’라는 레파토리를 듣다가, 교대에 다니게 됐어요. 나중에 보니 동료 선생님들도 비슷하더라고요.

제가 3학년 때 교육투쟁이 있었어요. 그때 크게 실망했죠. 교사양성 체제가 보수적이란 생각에 ‘양성 체제를 더 알차게 해달라’, ‘교대 강의 질을 더 높여달라’ 등을 요구했는데, 결국 전반적으로 물러선 채 타협이 됐잖아요. 교사에 대한 정이 떨어졌어요. 우리나라가 교사를 바라보는 수준이 이 정도구나, 교사를 바라보는 자체가 지나치게 경제논리란 걸 깨달았죠.

그 때문에 졸업하고도 임용고시를 안 봤어요. 아르바이트 하면서 다른 직업을 찾았죠. 그러다 운동을 하게 됐는데, 제가 교대 다닐 때 전교조 예비조합원이었거든요. 그때 알고 지내던 선생님들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가진 것으로 제일 잘 할 수 있는 운동이 뭘까’ 그래서 교육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죠. 전교조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다음 해에 임용고시 합격하고, 그렇게 저는 전교조 교사가 됐어요.

농촌으로 교육봉사활동을 가면 교대생들은 아이들 돌봐주는 역할을 주로 맡았어요. 방과후교실처럼요. 생각해보면 그때 경험이 제가 교사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친정 아버지 어머니가 다 막내셔서 친척 중 저보다 어린 아이를 만난 경험이 없거든요. 당연히 아이 돌보는 게 서투르지 않겠어요? 그런데 점점 아이들 마주하면서 교육이 소중하단 걸 깨달았죠.

요새 ‘중2병’이라고 하잖아요. 중학교 아이들 다루기 힘들다면서. 저희 지회 중학교 선생님께 저도 여쭤봤죠. “선생님, 중학생 힘들지 않아요?” 아주 잔잔하게 웃으면서 그러시더라고요. “다 애들이에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선생님이 마음을 열고 열심히 하면, 그걸 다 알아본대요. 아이들도 그렇게 노력하고요.

전교조에 이런 선생님들이 많아요. 저도 그런 영향을 많이 받고요. 무엇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관점이 남다르거든요. 전교조 선생님들은 스스로 노동자라고 생각하니까, 아이들 부모가 노동자란 것과 아이들도 후에는 노동자가 될 거란 걸 아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은 남다른 사명감과 관점이 생긴 거 아닐까요? 저도 늘 그 지점을 가슴에 품고 아이들을 바라보려고 하고요.

학부모들도 노동자예요. 특히 엄마들도 모두 보통의 여성노동자예요. 학부모 상담 때 많이 깨닫곤 해요. 학부모를 만난다는 느낌보다 같은 노동자를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요. 서로 이야기 하다보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나 회사 내 고용상황이 좋지 않은 이야기, 아이들 키우는 문제를 서로 나누게 돼요.

저도 아이가 셋이에요. 결혼하면서 육지로 왔다고 했잖아요? 제주도에서 30년 동안 만든 친인척이며 친구들… 모든 인적 관계를 두고 혼자 올라온 거예요. 제주도에 있었으면 친정 엄마가 봐줬을 육아 문제도 홀로 떨어져서 고민하게 됐죠. 이쪽에는 전혀 연고가 없으니까요. 공동육아에도 관심이 있었는데요, 직장 다니는 엄마들은 공동육아 들어가기 힘들더라고요. 정기적으로 회의 참석해야 하죠, 못 가면 또 미안해져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 엄마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으니까요, 그런 부분을 서로 공유하기도 하죠.

아이들도 부모님에 대해서 가감 없이 얘기해요. 순수하니까요. ‘엄마가 마트에서 일하는데요, 어쩌고 저쩌고…’ 직업은 무엇이며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듣게 돼요. 그러다 정서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너무 마음이 아프죠.

코로나19 때문에 원격수업을 하고 있어요. 등교는 1주일에 하루만 하고요. 저는 형편상 원격수업이 어려운 아이들을 매일 등교하게 했어요. 그중에는 늘 삐딱한 태도로 있던 아이도 있는데, 당연히 그 아이도 나오게 했죠. 하루 만에 친해졌어요. 그러니까 아이가 다 불더라고요. 집에 혼자 있으면 ‘엄마는 언제 전화하고요, 아빠는 밤에 언제 전화해요.’ 그동안 아이가 삐딱했던 이유가 있었어요.

어른과 마찬가지예요. 아이들도 나름의 걱정과 어려운 점이 있어요. 누구에게 한번 털어놓으면 속 시원해지는 일들이 있는 건데, 그런 걸 선생님들이 어떻게 챙겨야 하나 고민이에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대마다 매체에 대한 감정이 많이 다른데, 지금 대학생들은 전화 통화에 두려움이 있대요. 감정적 에너지를 많이 쏟는다는 거죠. 오히려 문자나 댓글을 다는 문화에 더 익숙한 거예요. 그 이야기 들으면서 ‘지금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뭘 두려워하게 될까’ 생각했어요. 제 생각엔 광장공포가 아닐까 싶어요. 특히 사람에 대한 공포, 또 하나는 관계에 대한 공포요. 그러면 이걸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요? 나중에 어른이 됐을 때 교사에 대한 뭇매가 쏟아질 것도 같고….

그래서 저는 지금 아이들에게 밀착감을 주고 싶어요. 친구들끼리 비비적거릴 기회를 주고 싶은 거예요. 교사와 학생, 또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틀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게 올해 교육 목표였는데, 원격수업을 하면서 다 틀어져버렸네요.

원격수업을 하면 교육활동이 쉽지 않은 건 자명하니까요. 초등교육의 목적인 두 가진데요, 기본 생활습관과 기초 학습능력이에요. 무엇보다 지금은 기본 생활습관이 많이 흐트러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원격수업을 해도 9시에 출석 확인하고 서로 인사 나누고 체조부터 시작해요. 사회적으론 거리두기를 해야한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밀착감을 높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이렇게라도요.

이 학교에 오기 전에 있던 초등학교에서 ‘원시라이프’란 이름의 동아리를 운영했어요. 학교 서클활동에 계절학교를 접목한 프로그램의 일환인데요, 3~4일 동안 5~6교시 내내 동아리 수업만 하는 거예요. 저는 원시집짓기 계획을 세웠어요. 의식주를 생태적으로 해결하는 원시인들의 지혜를 몸소 체험해보자, 뭐 그런 거죠. 원시인의 가장 주요한 특성은 공동체를 향한 노동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아이들에게 심어주고 싶었어요. 각자가 가진 커다란 역량을 활용해서 마치 하나의 부속품처럼, 남을 위해 헌신하고 함께 일을 하는 체험을 했죠. 학교 운동장에 불 피워놓고 거기에 대통밥 지어먹고 그랬어요. 야산에서 물푸레나무 주워다 움집도 짓고요. 정말 좋았죠.

한번은 6.15 앞두고 통일수업을 한 적이 있거든요. 별다른 준비 없이 영상 하나 보여주고 아이들이 궁금한 걸 물어보게 했어요. 아이마다 통일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니까요. 한 시간 내내 질문받아서 대답하는 형식으로 끌어갔는데, 늘 냉소적이던 아이가 다가와서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선생님으로 살아온 지 17년 정도 됐어요. 아이들이 앎을 성취했을 때 내는 소리가 있거든요? “아!” 그러는. 그 소리를 들을 때 저는 가장 보람을 느껴요. 

저는 교사가 한 명의 사람으로 살면서 접하는 모든 경험이 다 학생들에게 간다고 생각해요. 교사로 살아가는 건 그 영역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학교에서 배우는 의무교육뿐만이 아니라, 사회에 나와 옆자리 동료교사에게도 배우는 게 많잖아요.

우리나라에 훌륭한 선생님들이 정말 많아요. 특히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분들요. 아이들 눈을 들여다보고 많이 안아주고 또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그런 모습 속에서 아이들이 변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반항하고 우울했던 아이들이 점점 웃고 말도 많이 하는 걸 보면서,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그 힘이 너무 신기했어요. 아무 것도 안 하시는 거 같은데, 초능력처럼 아이들을 바꾸는 선생님들이 있어요.

교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지점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이건 전태일 열사도 마찬가지였다고 봐요. 우리 사회의 다수를 점하는,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을 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운 거요. 우리에겐 그 약자가 아이들이겠죠?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지금 상황은 분명한 위기잖아요. 이럴 때 교육 영역에서는 어떤 시도를 해야할까 싶은 거죠. 또 기회라면 기회일 수도 있으니까요. 우리 아이들을 비롯해 사회계층 다수가 점하고 있는,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도 노동자니까, 저는 교사로서 전태일 열사의 그런 부분에 공감해요. 인간을 위한 교육을 하는 거, 그리고 아이들의 노동자성을 키워주는 거.

문경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동두천양주지회 사무국장. ⓒ 송승현 기자
문경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동두천양주지회 사무국장.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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