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조합원 모두 힘 있는 노동자… 신미지회의 목표예요”

[전태일 50주기 여성노동자 인터뷰]
식품제조업종사자, 권승미

  • 기사입력 2020.12.02 15:25
  • 최종수정 2020.12.02 16:28
  • 기자명 백승호 기자

2020년 전태일 열사 항거 50주기를 맞았다.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고 산화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한 것은 노동자의 권리였다. 노동자의 열악한 현실 고발이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열악한, 어린 여성노동자들을 지키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여전히 불평등에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노동과세계〉에서 소개한다. [편집자주]

 

“조합원 모두 힘 있는 노동자… 신미지회의 목표예요”

식품제조업종사자, 권승미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식품제조사에서 일하는 권승미입니다. 회사는 천안에 있고요, 신미C&F라는 곳이에요. 노동조합도 하고 있습니다. 화학섬유식품노조 신미C&F지회 지회장을 맡았습니다.

신미C&F는 콩으로 식료품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대부분 OEM 방식이라 CJ나 한성, 이마트(노브랜드) 등의 브랜드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물론 신미 자체 브랜드도 있습니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유부초밥 중에 생산자가 신미C&F라고 된 게 있어요. 그건 저희 브랜드로 나가는 거죠. 주로 콩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다 보니까, 두부도 저희가 만드는 제품에 해당되고요, 풀무원에 납품되는 낫또도 만듭니다.

저희가 하는 일은 단순생산업무예요. 그러다보니 누구는 이 일이 쉬울 거라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 하루 종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아실 거예요. 당연히 힘들죠. 주로 한 자리에 10시간씩 서있거나 무거운 걸 반복적으로 들기도 해요.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하면 ‘인이 박인다’라고 하죠? 하도 오래 일하다 보니 아주 몸에 밴 버릇처럼 된 거예요. 그래서 일할 수 있는 거죠. 왜, 월급타면 20%는 병원비로 떼어놓는다고들 하잖아요. 신입사원들이 금방 그만두고 나가는 건 아직 인이 박이지 않아서 그래요.

출근은 아침 9시에 합니다. 커피 한 잔하고 현장 투입되고요, 10시까지 일하다가 10분을 쉬어요. 다시 일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죠. 퇴근 전에 또 한 번 쉬는 시간이 있어요. 쉬는 시간은 하루에 두 번, 10분씩 총 20분이에요. 점심시간은 40분이고요. 같은 일을 하지만 오후 시간이 더 힘들어요. 오전에 비해 현장에 들어가는 시간이 길거든요.

휴식시간이나 점심시간, 출퇴근 등은 정확하게 지켜지고 있어요. 원래는 그렇지 않았거든요. 휴식시간도 무급이었어요. 그러다가 이번 단체협약을 하면서 유급으로 변경됐어요.

저희는 식품제조업종사자예요. 아무래도 식품을 다루는 일을 하는 만큼 회사에서도 위생관리가 철저해요. 간식 같은 경우도 식당에 따로 준비된 공간이 있어요. 탈의실에서도 아무 것도 먹으면 안 돼요. 현장에 들어갈 때 에어샤워를 거쳐서 들어가고, 복장도 위생복에 위생모를 쓰죠. 액세서리 착용도 금지돼요. 무엇보다 식품을 만드는 회사니까, 위생에 항상 신경을 쓰죠.

위생물품을 노동자들이 모두 준비하긴 어려워요. 회사에서 준비해줬지만 관리자에게 두 번, 세 번 얘기해야 겨우 받아서 쓸 수 있었어요. 눈치가 엄청 보이죠. 그러니 각자 사비로 위생물품을 사서 사용하곤 했어요, 그러다 노조가 생긴 뒤로는 바뀌었어요. 지금은 위생물품이 딱딱 잘 나옵니다.

저는 2014년 10월에 입사했어요. 천안시청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소개받았죠. 처음부터 정규직은 아니었어요. 그땐 용역회사로 입사를 했는데, 3개월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켜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2015년 2월에 정규직 전환이 됐어요.

여기 처음 입사할 땐 파견직이 뭔지도 몰랐어요. 들어와서 하나둘 깨닫게 된 거예요. 같이 일하던 분 중엔 10년 동안 용역 소속으로 계시다가 정년퇴직하는 분들도 있어요.

신미 들어오기 전엔 금융기관에서 회계, 대출, 구상권청구 관련 일을 했어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고, 신미에 들어올 땐 이미 경력이 단절된 상태였죠. 우리 사회 구조 상 여성들이 재취업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다시 일자리를 구한다고 해도 단순생산직 등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는 일이 단순반복작업, 생산라인 투입이라 우리 사회에서 낮은 위치로 평가되기도 해요. 게다가 우리는 여성이잖아요? 일단 생산직이라 한 단계 아래, 거기에 단순제조생산이라 또 다시 한 단계 아래, 나이 많은 아줌마라 다시 한 단계 아래… 뭐 이렇게 쭉쭉 떨어지는 거예요. 업무가 단순생산이니까 팔‧다리만 달렸으면 바로 투입해도 일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말이 있어요. “니들이 함 해봐라~”

저희 조합원은 80%가 여성이에요. 사업장 자체도 여성노동자가 훨씬 많고요. 남성들은 대부분 외국인을 고용해요. 이주노동자와 우리 사이에 임금 차이는 없지만, 아마 정규직인 한국인 남성노동자가 있었다면 임금차이가 나지 않았을까요? 아까 얘기했지만, 우리는 여성노동자에다가 단순생산업무 투입, 뭐 이런 것 때문에 저희의 ‘급’은 자꾸 아래로 내려가니까요.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신미C&F지회는 지난해 12월 12일 설립했어요. 2018년에 회사가 상여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했거든요. 최저임금이 급격히 올라서 부담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2019년에도 상여금을 삭감하려고 든 거예요. 그때 노동조합을 만들었죠. 상여금을 지켜냈어요. 상여금 삭감이 도화선이 돼 노동조합이 설립된 셈이에요.

물론 그전에도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 조합원이 총 96명인데요, 96명 모두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했거든요. 노조 설립 전엔 그랬어요. 그저 ‘일 시켜주는 것만도 감사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죠. 회사도 그런 생각으로 다녀야 한다는 분위기였고요.

“노동조합을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마음먹기까지는 힘들었어요. 그래도 결심이 선 뒤에 다른 조합원들과 뜻을 모으고 함께 용기를 내니까, 다음부터는 진척이 잘 됐어요. 새벽까지 자료 만들다가 출근하기도 했고요, 일주일 내내 퇴근 후에 조합원들 만나서 간담회도 했고요.

그땐 힘든 줄 몰랐어요. 제가 죽을 만큼 아프지 않으면 보통 약을 잘 먹지 않는 편인데, 노동조합 만들 때 보약을 먹기도 했어요. 제가 중간에 아프면 안 되니까요. 건강식품 이런 것도 찾아 먹고 그랬죠.

노조 설립 앞두고 민주노총을 찾아갔어요. 세종충남본부 미비담당 국장님과 면담을 했는데, 화섬노조를 소개하셨어요. 화학섬유연맹과 세종충남본부에서 힘을 많이 실어주셨고, 덕분에 수월하게 설립할 수 있었죠. 처음 노조를 결심하고 한달이 채 안걸렸으니까, 빠르게 설립된 편이예요.

조합원 대부분은 여성노동자지만, 남성노동자도 8명 있어요. 조합원 중에는 촉탁직도 있고 이주노동자도 있어요. 이주노동자 중에 간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경영자들은 노동조합이 뭔가를 뺏어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리하게 일방적인 요구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노조가 빼앗아간다’는 게 아주 쓸데 없는 걱정이란 걸 말해주고 싶죠.

우리 조합원들도 회사 성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 성장으로 인해 발생한 이익은 노동자에게도 일정 부분 돌아오게 할 거고요. 노조 설립 전엔 회사 운영이 잘 돼도 그저 잘 됐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성과급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최저임금 오르자마자 상여금을 삭감하곤 했으니까요.

이젠 노동조합이 있으니까, 말도 못 하는 힘 없는 조합원이 없게 할 거예요. 그게 우리 신미C&F지회의 목표예요. 입이 있어도 용기가 없어 억울한 일을 말하지 못하는 조합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거요. 또 힘들게 일하면 그에 맞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노동조합이 되는 것도 있고요.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권승미 화섬식품노조 신미씨앤에프지회 지회장. ⓒ 백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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