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홍석만의 Not Today] 양날의 검, “노동이사”의 민주적·계급적 운영 가능성

  • 기사입력 2020.12.07 14:05
  • 기자명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원

 

 

지난 11월 25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는 '공공기관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합의'를 발표하며,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입법을 건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동이사제도는 2016년 서울시가 조례를 제정한 뒤 2017년부터 서울시 공기업에 노동이사가 나온 것을 시작으로 광주시, 경기도, 울산시 등 지방 공기업으로 확산해 왔다. 이번 합의는 지방공기업을 넘어 중앙정부 공기업에도 노동이사를 두는 입법 건의다.

노동이사제도는 노동자 경영참가의 일환으로 사고된다. 노동자 경영참가는 다른 사안에 비해 큰 논쟁이 벌어진 사안은 아니다. 오랫동안 노동조합은 인사와 경영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해 왔고, 자본 측에서는 경영권을 천부인권으로 주장하며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를 적극적으로 막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동자 경영참가에 대한 이해의 폭은 매우 넓다. 사회적 합의주의의 기업 차원의 문제로 보는 입장에서, 노동자의 현장통제력 강화 방안으로 보는 입장까지 존재한다. 이처럼 스펙트럼이 넓은데도 논쟁도 별로 안 됐다는 것은 경영참가나 노동이사제도에 대한 정리된 입장이 없거나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면 좋은 거 아닌가 싶다가도 괜히 이사회에 들어갔다가 사측에 코 꿰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번 경사노위 합의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은 아무런 언급이 없었고, 공공운수노조는 이번 합의 사항 중 직무급제 문제에 대해서만 비판 논평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재 운영되는 방식대로 도입되면, 노동이사제도는 노동자의 이해를 관철할 창구는커녕 합의주의 도구조차 되지 못한다. 때에 따라서는 노동자 사이의 차별을 더 심화하고 분열과 갈등을 확대하는 노동자 ‘관리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 높다. 그저 입 닫고 있을 문제가 아니라 하지 않든가, 할 거면 제대로 하게 만들던가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단체교섭 vs 직접 경영참가

고용문제 자체가 인사와 경영과 관련이 있어서 노동조합은 항상 인사 문제 특히 노동조합 구성원에 대한 탄압과 인사상 불이익에 대응하고, 구조조정이나 작업환경, 노동조건의 변동을 야기하는 경영 문제에 대해 개입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 면에서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은 교섭틀을 통해 인사와 경영권에 대한 지속적인 개입을 시도해 왔다. 법, 제도적으로도 노동조합의 교섭권이 일정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단체교섭 (일반적으로 기업 단위 단체교섭과 산별교섭 및 공공부문에서는 노정교섭도 포함한다)의 확대를 통해 경영참가 또는 현장통제력 강화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런데 최근의 노동자 경엉참가는 교섭력 확대를 통한 경영문제에 대한 개입이나 경영 정보 획득을 위한 이사회 참관과 같은 방식이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상 직접적인 참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인 공세로 인해 노조의 교섭력이 약화하고 노동유연화와 노동시장 분절화가 확대하면서 단체교섭의 한계가 계속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하나의 이유가 된다. 가령 구조조정이 벌어지고 있는데, 단체교섭과 파업 등으로도 이를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교섭력 확대를 위한 투쟁방법에 회의하면서 유럽식 공동결정제도나 합의주의 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직접적인 경영참가가 얘기되었다. 이제 노동자 경영참가는 교섭력 확대가 아니라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직접 참가하는 ‘노동이사제’로 수렴되고 있다.

 

노동이사제, 양날의 검

노동자 경영참가 특히, 노동이사제도는 모두가 인정하듯 양날의 검이다. 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영참가는 양면적 성격을 띠고 있다. 기업경영에 참여하여 노조나 노동자 대표가 사용자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노조나 노동자대표의 자율성과 능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노동자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더 관철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이 공존한다. 경영참가는 노동조합이 개별 기업(기관) 차원에서 산업민주주의와 작업장 민주주의를 구현할 제도적 장치가 되고, 경영활동을 규율하거나 성과를 공유함으로써 노동 소외를 극복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노조가 경영에 일정한 책임을 부담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노사협조주의에 빠질 수 있고, 노동이 자본에 포섭되거나 통제되는 방식으로 귀결되어 노조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자주성이 약화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본 입장에서도 기업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에 노동이 참가하는 것을 ‘경영권 침해’로 보는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다. 노조(또는 노동자대표)의 경영참가가 의사결정 구조와 과정을 복잡하게 하고 최종 결정을 지연시키며 노동자 대표의 전문성 부족에 따른 불합리와 비효율이 초래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로 민간 기업에서 사외이사에 노동자 출신을 선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주주총회에서 거부됐다. 특히 영미식 주주자본주의가 주류를 이루는 현재 상황에서 노동이사제도는 민간기업에서는 어불성설로 여겨지며, 현재까지는 공기업 차원에서만 노동이사제도가 얘기되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 전체로 노동이사제도가 확대하면 민간 기업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노동자들이 경영참가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이사제도의 모태인 독일 공동결정제도에서도 (감독이사회에서) 노사 동수일 경우 사측의 회장이 두 표를 행사해 실제 결정권은 명백하게 사측에 있다. 노동자가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에 결합하더라도 언제나 소수로 남을 뿐이며, 그런 의미에서 ‘참여’인 것이지 ‘결정’ 또는 ‘합의’가 아니다.

또한 노동이사제도가 산업민주주의나 작업장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한 기제라고 볼만한 내용도 없다. 현실적으로 서울시를 필두로 다수의 광역시도 지방공기업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는데, 노동자에게 유리한 어떤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반대로 노동이사를 더 약화 내지는 무력화시키기 위해 독일처럼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분리하자는 입법 논의도 있다.

현재와 같은 형태로 노동이사제도가 도입되면 경영참가에 따른 부담만 늘리고 ‘이사’라는 자리를 두고 노동자들 내부 경쟁만 더 가속화 해 노동자의 단결을 확대하기보다는 노동자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지방공사의 경우 2017년부터 노동이사가 선임되어 임기가 끝나고 올해 다시 선거를 치르고 있는데, 일부에서 벌써 이런 우려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심지어 복수노조의 교섭단위 문제와 맞물려 노동이사 선출을 둘러싼 갈등도 증폭되기도 한다.

 

노동이사제도의 민주적 운영 가능성

지방공기업은 물론이고 어떤 형식이든 중앙정부 공기업과 은행 같은 금융기관들로도 확대될 모양새다. 전체 공기업에서 노동이사가 도입되면 민간기업에서도 노동이사 의무제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수의 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원컨 아니건 노동이사제도는 계속 확대된다. 그렇다면 노동이사제를 어떻게 노동조합과 노동자에게 유리하고 유의미한 제도로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제도를 통해 ‘경영참가’라는 목표가 아니라 ‘현장통제력’ 또는 ‘작업장 민주주의’(나아가 산업민주주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고려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노동자 대표성의 확대다.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낮고 노동시장이 분절화 된 상황에서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비정규직, 미조직, 불안정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이해를 현재의 노동조합이 대표할 수 있는가 혹은, 어떻게 대표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경영참가 문제로 한정해서 보자면, 참가의 주체로서 노동조합이 적절한가, 아니면 독일식 노동자평의회 또는 한국에서 (유명무실한) 노사협의회에 참여하는 노동자 대표를 사업장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선출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즉, 노동자 경영참가라는 개념과 위상을 ‘노동자의 (이해)대표(labor representation)’라는 더 넓은 프레임 안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입장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공공연구원에 의해 소개된 바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의 쟁점과 과제”, 김철·이상훈, 사회공공연구원, 2016. 참조)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단으로서의 노동자가 자신의 이익을 대표하는 제도적 형식은 단체교섭, 작업장 및 기업지배구조에서의 영향력, 중앙 및 지방정부와의 정책협의, (지지정당 지원 등) 정치세력화, 사회운동적 참여 등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 (이해)대표제는 크게 노동조합을 통한 이해대변이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또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단체교섭과 중앙 및 지방 정부와의 정책협의가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 대표제의 가장 보편적 방식이라면, 기업지배구조 상 경영참여의 경우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는 형식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를 통해 해당 기업 노동자 전체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통일적 기제를 이 속에서 실현할 수도 있다. 유럽과 미국(일부)에서 경영참가를 ‘작업장 민주주의’ 차원에서 제기한 맥락이 이와 같다.

그런데, 현재 노동이사를 시행하고 있는 지방공기업들은 지방자치 조례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데, 노동이사(법령에는 근로자 이사)의 자격은 공사 소속 노동자로 제한하고 임명 방식도 공사 내부규정을 따르게 했지만, 내부규정상 모두 공사 소속 정규직 노동자가 모두 선거-피선거권을 갖는다. 노동이사가 노동조합원 자격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이전에 어쨌든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있고 어디서도 노동이사의 자격과 선거권을 비정규직 노동자로 확대하자는 주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경영참가를 고리로 노동이사제도를 노동자 대표성과 작업장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기제로 보고 노동조합 또는 평의회, 현장조직을 강화하는 형태로 제도 설계를 다시 해 볼 수 있다. 즉, 노동이사의 선출 자격(노동이사 선거권)을 해당 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만이 아니라 기업과 관련된 사내외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로 확대하고, 노동이사의 운영을 개별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 대표 조직으로 하고, 보고 의무와 소환 제도를 두는 등 노동이사의 민주적 운영을 실질화하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둘째, 단체교섭틀 확장의 일환으로 노동이사를 배치하는 문제다.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유연화와 구조위기 속에서 산업재편과 구조조정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조건에서 어찌 됐든 노동조합이 경영에 직접 개입하고 통제해야 하는 상황인데, 기존의 단체교섭으로는 여러 한계를 갖고 있다. 노동이사 또한 경영에 대한 참여일 뿐이지, 합의나 결정이 아니므로 노동자 입장에서 결정은 단체교섭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경영에 개입하는 방식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과 노동이사가 서로의 영역과 역할을 잠식하거나 대체해 경쟁적이고 갈등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역할이 여전히 우위에 설 수 있고 노동이사가 그렇게 운용될 수 있다면, 상호보완적인 틀로 단체교섭과 노동이사의 관계를 구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사측, 공기업에서는 정부의 결정력이 더 크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위와 같이 노동이사를 운영하려고 해도 제도적으로 이를 가로막고 봉쇄할 가능성이 크다. 노동이사의 자격과 선출권을 비정규직으로 확대하는 문제에서부터 정부와 언론의 대대적인 공세로 가로막힐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가 실제 시행되느냐 여부보다 이런 요구로 목소리를 내고 투쟁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이사에 대한 현실적인 규정력은 지금보다 더 확대할 것이고, 노동이사의 운용과 역할에 대한 노동자 내부 논의도 확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업, 사업장, 산업 차원에서 단체교섭과 경영참가 확대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기업운영과 관련된 것이므로 경제의 구조적, 대안적 전망이 결여되면 기업 내부의 실리적인 이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이사들 간의 전국적인 조직이나 연대 틀을 구성한다 하더라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노동이사제도의 모태로 삼고 있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20세기 초에 형성된 ‘경제민주주의론’ 속에서 제기되었고, 경제민주주의론은 ‘이행과 대안’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과 산업 차원을 넘어 경제 전체의 구조개혁을 전제로 했다. 이런 전망이 완전히 날아간 이후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다수의 사업장으로 확대됐지만 유명무실해졌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들어 ‘하르츠 콘셉트(Hartz-Konzept)’와 같은 노동조건 개악을 기업 단위에서 수용하는 틀로도 활용되었다.

어떤 제도든 시행되는 맥락과 조건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가령, 복수노조 허용은 1980년대 민주적 노동운동 진영의 핵심적 요구였고 지난 수십 년간 이를 위해 투쟁해 결국 복수노조는 허용됐다. 그러나 복수노조의 시행은 노조전임자 타임오프제도와 교섭창구단일화 문제를 엮어 복수노조의 역사적인 의미를 완전히 탈각한 채 시행되었다. 이처럼 제도는 제도 자체의 내용보다 그것이 시행되는 조건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노동이사제도 입 닫고 모른 척 도입을 방관할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유의미하도록 투쟁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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