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30여 년 전 친북교사 증언 '죄스럽다'는 제자에게

재심중인 강성호 교사, “그때나 지금이나 너를 원망한 적이 없단다”

  • 기사입력 2021.01.30 16:56
  • 기자명 김상정 기자(교육희망)

"그때나 지금이나 너를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단다"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앞두고 ‘북침설 교육 조작 사건’에 휘말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교직을 잃고 형을 살았던 강성호 교사가 30년 만에 열리는 재심 법정 증언대에 차마 서지 못하겠다는 제자에게 전하는 말이다. 

 

당시 재판에서는 ‘북침설 교육을 받았다’라는 학생 7명의 증언이 ‘수업 중에 북침설을 들은 기억이 없다’라고 쓴 359명 학생의 탄원서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해 강교사의 유죄 선고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 강성호교사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매주 화요일 11시 반 청주지방법원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강성호 교사
▲ 강성호교사는 지난해 12월 1일부터 매주 화요일 11시 반 청주지방법원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강성호 교사

지난해 1월 30일, 31년만에 강성호 교사에 대한 재심이 개시되었다. 재심 재판부(청주지방법원 제 2형사부)는 “가급적 심문을 많이 하더라도 진실을 밝히는 방향으로 (재판을) 진행해보겠다.”라며 당시 ‘북침설교육을 받았다’라고 증언한 학생 7명을 증인으로 법정에 소환했다.  현재까지 89년 당시 북침설 교육을 증언했던 학생 7명중 4명이 증인으로 나왔고, 재판부는 나머지 3명을 6차 공판 증인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지난 28일, 6차 재심 공판에 증인은 출석하지 않았고 재판은 3월 18일로 연기됐다.  

  "그 당시 이유 없이 불려가서 마음 졸이며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올라와,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당하고 있던 내 자신에게……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조차도 꺼내기 죄스럽다."

강성호 교사는 재판부의 거듭되는 증인소환요청에도 증언석에 서지 못한 제자들의 심경을 담은 문자를  다른 제자들을 통해 전해받았다.  

  28일, 법정에서 끝내 만나지 못한 제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강성호 교사가 교육희망에 글을 보내왔다. 다음은 강성호 교사가 보내온 글 전문이다.

1월 28일 16시 40분, 청주지방법원 621호 대법정에서 열린 재심 6차 공판을 시작하며 주심 판사는 증인으로 소환한 3명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증인들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증인들, 32년 전인 89년 5월 25일 새벽 1시경, 제천경찰서 대공과 조사실에서 대질신문으로 마주쳤던 그 제자들입니다.

"제자가 선생님에 대해 어떻게 감히 경찰서에 와서까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강 선생님은 분명히 6.25는 남침이 아니고 북침이라고 말했고 사진을 보여주면서 북한이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진술했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들은 대로 이야기하는데 선생님은 그런 말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만 하십니까?"하고 나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진술했던 그들은 그 수업이 있던 날 결석한 사실이 출석부 기록과 같은 반 학생들의 증언으로 드러났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당시 검찰은 그런 증언을 증거로 제출하고 법원은 유죄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후 저는 '북침설 교사'라는 멍에를 쓴 채 모진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코 그 제자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 제자들과 저는 다 같이 군부 독재정권이 만든 희생양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아온 고통스런 세월만큼 그들 역시 힘든 삶을 이어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과 제가 안고 살아온 아픔을 치유하는 길은 오직 하나, 감추어진 진실을 밝히는 일이라고 믿으며 그날을 기다려왔습니다.

지난해 1월 30일부터 다섯 차례 이어진 재심 공판 과정에서 힘겹게 말문을 연 제자들 증언으로 숨겨진 진실이 조금씩 드러났습니다.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담임교사 말을 믿고 경찰서에 갔고, 수사경찰관이 짧게 쓴 자술서를 길게 쓰라고 했다든가 강 선생 하숙방에서 불온문서가 많이 나왔다는 말을 들려주며 경찰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자술서를 쓰게 한 정황을 증언했습니다. 그렇지만 속내를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고 그들이 안고 살아온 삶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평생 마음의 멍에를 짊어지고 살아왔고 지금까지도 힘들다…… 그 당시 이유 없이 불려가서 마음 졸이며 고생한 걸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올라와, 아무것도 모르고 멍청하게 당하고 있던 내 자신에게……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죄송하다는 말조차도 꺼내기 죄스럽다……얼굴 뵙고 싶지 않아……살아가면서 더 벌 받고 살라 하면 그리할게. 미안하다."

28일 증인신문에 나타나지 않은 제자가 동창생에게 보낸 카톡 내용을 읽어 보았습니다. 32년 전 경찰서와 법정에서 만났던 그 제자 얼굴이 떠오릅니다. 차마 선생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는지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던 열여덟 고등학생이 마흔여덟 중년이 되어 동창생에게 보낸 글입니다. 이제 육십이 된 스승은 그 제자가 남긴 글을 읽으며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리기만 합니다.

32년 세월이 흘렀지만 스승을 간첩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제자에게 법정에서 만난다면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만나지 못한 제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남깁니다.  

"네 잘못이 아니란다. 선생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를 미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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