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두리공감의 노동자 마음건강] 우리는 모두 언제든 트라우마로 고통받을 수 있다

  • 기사입력 2021.02.01 16:18
  • 최종수정 2021.11.03 09:33
  • 기자명 허윤제 두리공감 상임활동가

 

“‘외상사건’은 세상이 안전하고, 자기는 가치 있으며, 세계 질서에는 의미가 있다는, 피해자가 가지고 있었던 기본적인 가정들을 파괴한다.” (트라우마, 주디스 허먼)

‘외상사건’이란 갑자기 예기치 않게 일어난 끔찍한 일로 인해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사건들을 말한다. 홍수, 지진, 전쟁, 성폭력, 학대, 폭발, 화학물질의 유출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외상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심리적인 손상을 ‘심리적 외상’ 즉 트라우마라고 한다. 2021년 현재까지 전 인류에게 불안함을 일으키는 코로나 19 역시 ‘심리적 외상’을 남길 수 있는 ‘외상사건’이다.

노동현장에서도 ‘외상사건’은 공공연히 발생한다. 하루 평균 6.8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는다. 끊이지 않는 중대재해의 발생, 괴롭힘, 성폭력, 신체적·언어적 폭력들, 이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휴직을 선택해도 나아지는 것 없는 일터,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에 사직을 고민하는 상황들이 종종 벌어진다. 갑작스러운 폐업, 해고는 노동자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때로는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재해와 폭력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것을 목격하는 사람들도 많다.

외상사건의 영향은 다양하다. 불면, 악몽, 두통, 식욕 변화, 만성피로와 같은 신체적 증상과 불안, 우울, 예민함, 죄책감과 수치심, 분노 등의 심리정서적 증상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기억력 감소나 대인관계의 위축, 음주량이나 흡연량이 증가하기도 한다. 외상사건으로 인한 증상들은 사건을 경험한 후 3개월 이내에 대부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하지만 3개월을 경과 하고서도 증상이 한 달 이상 지속된다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는 ▲외상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외상사건의 기억이 떠오르고 반복적으로 악몽을 꾸며, 해당 사건이 마치 현재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외상사건이나 그와 관련된 기억, 생각, 감정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사람, 장소를 회피한다. 때로는 ▲외상사건의 중요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거나 세상과 자기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해 “나는 나쁜 사람이다,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은 모두 위험하다”등 지속적으로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나아가 ▲모든 일에 흥미가 떨어지고, 고립되거나 소외된 느낌, 타인(또는 사물)에 대한 과민한 행동과 분노 폭발, 무모하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이 나타나기도 한다. ▲과도한 놀람 반응, 집중하기 어려움, 수면장애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그 전에 비해 악화되는 증상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모든 외상사건이, 모든 사람들에게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사건마다,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외상사건을 두 사람이 같이 경험했다 하더라도 각자가 경험하는 증상의 내용, 강도, 지속기간이 다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객으로부터 인격적 모욕을 당한 후 한 사람은 너무 화가 나고 치욕스러워 며칠 악몽을 꾸고, 고객을 대하는 것이 두려워졌다가 자연스레 평상심을 되찾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그 이후 몇 년이 지났음에도 자신을 부르는 고객의 목소리만 들어도 손발이 떨리고 숨을 쉴 수가 없으며 그날 있었던 일이 나도 모르게 자꾸 떠올라 도저히 일을 더 할 수 없고, 내가 왜 이러지 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다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라는 진단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을 때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었으나 이번 사건에서는 큰 고통을 심하게 경험할 수 있다. 혹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경험하고서 “이제 좀 괜찮아졌어” 하고 잘 지내다가도 비슷한 사건을 다시 겪으면서 더욱 심각하게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유독 마음이 여리거나, 원래 약한 어떤 특정 개인에게 고통이 더 심하거나 잘 일어나는 것 아니라는 말이다.

“다들 괜찮은데 왜 너만 그래?”, “이제 괜찮을 때도 됐잖아?”, “이번보다 더 큰 사건에도 괜찮았는데 왜 이번에는 왜 그래?”라는 주변의 얘기를 들을 수도 있는데 그런 말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사용할 수 없는 말들이다.

노동자 A씨는 고의적 악성소문으로 힘들어하던 중 해고를 당했다. 이후 부당해고로 인정받아 복직했지만, 이 전 과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경험하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고 산재신청 했으나 '사건이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킬 만큼의 심한 스트레스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불승인됐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사건에 따라 개인이 느끼는 고통도 다르게 나타나는 ‘심리적 외상’의 특징은 때때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지지받거나 공감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일터에서 우리의 동료들이 외상사건을 경험한 후 악몽이나 반복되는 기억으로 고통받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리적 외상은 그것을 유발한 분명한 외상사건이 존재한다. 그것이 일회성 사건이든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상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사건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의 크기, 모양, 내용 등은 달라질 수 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응급처치에 소요되는 시간, 구조과정 등에 따라 피해자의 상태가 달라지는 것과 같다.

외상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를 심리적 응급처치라고 한다. 그 과정은 개인이 느끼는 고통의 정도를 파악하고 그에 적절한 치료 방안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똑같은 외상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포함한다. 그래서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이들에게 동일한 사고나 사건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며 대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노동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외상사건들은 계속 반복되어 일어나고 일터에서의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노동자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터의 안전, 그것은 우리의 신체만이 아니라 정신적 안전과 건강과도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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