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명숙의 인권프리즘] 출현할 권리가 보장된 사회

  • 기사입력 2021.03.22 13:01
  • 최종수정 2021.04.06 16:43
  • 기자명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차별과 억압이 일상인 된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칫 권력의 언어, 억압의 태도에 포섭되기 쉽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인권프리즘’을 통해 교묘한 차별과 억압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편집자 주>

“짜잔, 나 여기 있지!”

숨바꼭질의 재미의 극치는 나를 찾는데 실패한 술래에게 내 존재를 알릴 때다. 어릴 적 하던 게임이 즐거웠던 것은 나를 드러내며 이길 때였다.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가능한 조건은 무엇일까. 주변의 사람들이 나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는 때가 아닐까. 만약 누군가 나의 모습을 비웃거나, 비아냥거리거나, 위협을 가한다면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을 넘어 위험한 일이 된다. 마치 공포영화처럼 쫓아오는 살인자로부터 그 공간에 없는 것처럼 숨을 죽이고 있어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다. 출현한 권리가 보장되는 조건은 관계에 달렸다. 상대를 해하려는 것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관계 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살아간다. 나이나 장애유무, 성별 정체성, 성적지향, 국적, 학력 등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주류가 아닌 ‘다른 사람’, ‘다른 몸’을 가진 사람을 차별하거나 ‘비정상’이라 부르며 혐오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존재를 지우는 사회는 생존을 위협한다. 최근 트랜스젠더의 잇따른 죽음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얼마 전 돌아가신 트랜스젠더 군인 고 변희수 하사는 성전환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2019년 1월, 군대에서 강제 전역당했다. 전차 조종수였던 그녀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군대의 동료들과 상사들이 보내줬던 응원 덕분이었던 것 같다. 수술 전부터 그녀는 상사와 동료에게 상담하고 조언을 구하는 과정을 이어왔다 격려와 응원도 받았다. 국군수도병원의 주치의도 그녀의 수술을 응원했다. 그녀와 함께 생활한 현장의 군인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보이기보다 그녀를 응원했고, 그녀는 그 힘으로 용기있게 커밍아웃하고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변하사의 기대와 달리 그녀의 주변보다 더 멀리 있는 ‘군대’는 ‘전역명령’을 내렸다. 트랜스젠더를 차별했다.. 그녀의 동료 장병들과 달리 육군본부는 변 하사를 전역심사위원회에 회부하고 국군수도병원 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진행된 적법한 수술을 ‘고의적인 신체 훼손’로 몰아 그녀를 신속하게 쫓아냈다. 국방부와 군 수뇌, 권력을 쥔 자들은 여전히 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했고 권리를 침해했다.

트랜스젠더 군인의 입대를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승인한 미국과는 확연히 다르게 한국 군대는 성소수자를 차별한다. 2020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육군의 강제전역 조치가 법적 근거가 없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라고 결정했지만 아직도 국방부와 육군은 사죄는커녕 명예회복조치도 없다.

믿었던 군대로부터 ‘강제전역’이라는 ‘해고’를 당한 변하사의 마음은 어땠을까. 1년 가까이 자신이 원하던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녀의 마음과 생활은 점점 빈궁해졌을 것이다.

누군가를 조직에서 배제하고 내보낼 때 1순위는 누구일까. 소수이거나, 주류가 아닌 자들, 힘이 없는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다. 연말이면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난다. LG트윈타워에서, 신라대에서 벌어진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가 단적이다.

10년 이상을 일했던 해고자들이 많이 말하는 것은 ‘배신감’이다. 믿었던 관계가 깨지는 고통을 호소한다.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했던 회사나 군대 등 조직이 갑자기 ‘당신은 이제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성원’이 아니라며, ‘쫓아내는 권력’을 행사할 때 삶은 흔들린다.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이다. 출현할 권리의 보장이란 안정적으로 살아갈 권리로 이어질 때 온전한 것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일의 박탈로 이어진다면 그/녀는 숨어 살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고, 신뢰를 쉽게 침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들도 삶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으려면 노동법이나 군인사법 등 법이 바뀌어야 한다. 적어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수자들이 생명까지 박탈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야 성소수자들에게 없는 존재인양 시청광장도 사용하지 말고 저기 주변에나 숨어있으라는 정치인들의 혐오발언을 멈추고, 군대에서 트랜스젠더를 쫓아내는 강고한 기득권의 체제를 바꿀 수 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