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어느 우편배달부의 실종

  • 기사입력 2021.04.15 16:48
  • 기자명 이송희일 감독

시골집 노모의 택배가 도착했다. 머위, 쑥, 미나리, 냉이, 수삼 등 바리바리 싸서 보냈다. 상자를 열자마자 봄 냄새가 와락 달려든다. 침샘이 맹렬히 흘렀지만, 한편으론 속이 상했다.

보내지 마시라 한사코 만류한 터였다. 이걸 서울로 보내려면 여든에 가까운 노친네가 손수레로 20kg 무게의 상자를 끌며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고, 2킬로 남짓 떨어진 읍내의 농협까지 가야 한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무겁다면서도 기어이 보낸 거였다.

예전엔 전화만 하면 우체국 직원이 달려와 냉큼 가져갔다. 직접 연락하라며 개인번호도 줬다는 살가운 직원. 하지만 작년 우체국 규모가 확 줄어들면서 택배 서비스가 사라졌다. 우정사업본부는 적자를 이유로 2023년까지 전국 우체국의 절반을 싹둑 줄이는 중이다. 이제 우리 고향 노인들은 택배 하나 보내려면 손수레를 끌고 읍내까지 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노모는 자식들에게 김치를 부칠 때마다 배시시 웃던 그 우체국 직원의 미소를 못내 아쉬워했다.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도 시인 네루다에게 우편배달부는 그저 편지를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다. 삶을 배달한다. 세상과의 끈을 잇는 존재다.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칠레에서 쫓겨나 이탈리아 오지 섬으로 망명온 늙은 네루다. 편지와 소포만 조용히 전달하던 젊은 우편배달부가 ‘시’에 대해 질문하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 나중에는 섬 마을 사람들과도 어울리고, 배달부의 사랑도 이어주며 끈끈히 우정을 쌓아올린다. 우편배달부가 배송한 건 그렇게 삶의 활력이었다.

마찬가지로, 농촌에서의 우편배달부도 노인들에게 활력을 제공한다. 약도 배달하고, 공과금도 내주고, 노인들의 시시콜콜한 민원도 들어주고, 읍내 소식도 전달해준다. 농촌 노인들과 우체부는 서로의 안녕을 챙겨주는 공적인 친밀성의 관계다. 교통도 여의치 않고, 거동도 불편한 노인들에게 우체부만이 줄 수 있는 서비스가 특화된 형태로 진화한 것이다. 본래 업무인 우편 서비스를 초월해 신자유주의 국가가 도태시킨 사각지대의 ‘복지’까지 덜컥 떠안았던 것.

그랬던 우체부가 이제 사라지고 있다. 의료와 버스 같은 필수 공공서비스마저 끊긴 농촌 노인들에게 외부와의 끈을 이어주던 유일한 존재였다. 세상의 온기와 계절을 나르던 그 성실한 심부름꾼들이 실종된 것이다. 농촌 변방의 늙은 노인들은 그렇게 점점 고립되고 있다. 유폐나 다름없다.

이 와중에 정부는 ‘다시 돌아가는 농촌’을 홍보하고 있다. 우체국도 없고, 버스길마저 끊긴 곳으로 과연 누가 돌아가겠는가. 교통, 의료, 우편, 돌봄 같은 기간 서비스가 아예 형해화된 폐허에 누가 가겠는가. 유럽연합의 경우 전체 예산 중 농업 분야에 할애되는 예산이 40% 남짓이지만, 한국의 경우 대략 3%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문재인 정부에서 2%대로 떨어졌다. 한국의 농촌은 자연적으로 소멸되는 게 아니라 체계적으로 소멸당하고 있는 것이다.

대체 공공성이란 무엇일까? 도대체 지역개발이란 무엇일까? 현재 정부가 지역개발을 빙자해 지역에서 추진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농산어촌에 태양광 패널을 도배하는 것, 그리고 곳곳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 에너지 자본과 토건 자본의 배는 두둑해질지언정, 농산어촌에 사는 사람들과는 도무지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뜬금없이 고향 옆 새만금에 착수한다는 신공항은 우리 노모의 봄나물 상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건설되는 것인가.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 노모가 손수레를 끌고 더 이상 언덕을 오르내리지 않는 것이다. 농산어촌 노인들이 손수레를 질질 끌지 않는 것이다. 버스가 다니고, 우체부 직원이 더 늘어나고, 의료-돌봄 서비스가 시골 동네까지 펼쳐지고, 그럼으로써 다양한 사회적 일자리가 형성되고,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정부가 친환경 농법을 지원해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청년층에게 매력적으로 소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착취 관계로 고착된 도시-농촌간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가장 구석진 곳에 빛을 쬐이고 피를 수혈하면 알아서 피돌기가 좋아진다. 그게 공공성의 확장이다. 그게 지역개발의 단초다.

잔뜩 봄을 머금고 있지만 언덕을 오르내리던 노모의 수고가 고스란히 담긴 택배, 상자 하나지만 세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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