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금요일이 사라진다면?

  • 기사입력 2021.09.16 13:44
  • 기자명 이송희일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압도적 성공’. 지난 7월, 아이슬란드에서의 주4일 근무제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전 세계 언론의 요란한 호외를 접한 후, 기민하게 가장 먼저 떠오른 영화가 이오셀리아니의 걸작 <월요일 아침>이다.

이 영화는 러닝타임 10분이 지나도록 거의 대사가 없다. 월요일 아침, 귀청을 때리는 세 개의 괘종시계 알람과 함께 영화가 시작되는데, 주인공인 중년의 용접 노동자가 공장에 출근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건조하게 나열한다. 그런데 다음 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루틴으로 출근을 하던 주인공이 공장 앞에서 냅다 도망을 친다. 잿빛 연기를 뿜어대는 굴뚝들과 공장 전면이 다 보이는 산 위에서 캬악, 하고 침을 뱉으며 에라 모르겠다 베니스로 줄행랑을 치는 장면이 단연 백미.

그 가출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매일매일이 거푸집으로 찍은 듯 똑같은 노동의 일상. 그림 그리는 취미생활은커녕, 삶의 의미 하나 붙잡지 못하는 피폐한 삶으로부터 도망쳐 만끽하는 찰나의 휴가. 물론 주인공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지만, 이 영화는 노동과 삶의 불균형이 어떻게 우리를 지치게 하는지를 예시하는 한 편의 탁월한 우화다.

아이슬란드 주4일제 실험은, 요컨대 `노동`과 `생활`의 균형을 찾자는 이야기다. 세계 최대의 공공부문 실험.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아이슬란드 노동인구의 1%에 해당하는 2천500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임금은 보전되고 노동시간은 평균 5시간 줄었는데, 오히려 생산성은 더 늘거나 그대로 유지됐다. 업무 스트레스가 줄고, 건강과 워라밸이 개선됐다. 심지어 성평등도 향상됐다. 노동시간이 줄자, 남성들이 육아와 가사노동을 더 균등하게 분담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압도적 성공에 힘입어 노조와의 협의 하에, 전체 노동인구의 86%까지 임금 삭감 없는 주4일제가 확산됐고, 나머지도 주 4일 근무를 목전에 두고 있다.

뿐 더러, 이와 비슷한 주4일제 실험들이 다른 국가와 기업들에서도 다양하게 전개된 터였다. 2019년 8월 한 달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재팬에선 2,300여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 삭감 없이 매주 금요일을 쉬는 주4일제를 실험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생산성 40% 증가, 노동자의 92% 행복도 상승, 전력의 23% 감축, 프린트 용지의 59% 감소. 또, 그에 앞서 2018년 뉴질랜드의 한 신용회사도 24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주4일제를 두 달 동안 실험한 결과, 노동과 생활의 밸런스, 그리고 업무 집중력이 좋아졌다. 반면 스트레스 지수는 7% 감소했다.

그 이전부터 여러 국가에서 실험이 펼쳐졌지만, 코로나 판데믹을 거치며 주4일제에 대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관심이 급증한 형국이다.

스페인 정부는 올 9월부터 3년에 걸쳐 국가적 시범 사업으로 주4일제를 시행한다. 6천만 달러를 들여 주4일제를 적용한 기업들을 지원하게 되는데, 현재까지 참여 의사를 밝힌 기업이 200여 개가 넘는다. 한편, 스코틀랜드는 이미 시행 중이다. 주4일제가 집권여당 국민당(SNP)의 공약이었다. 1천3백만 달러의 공공지출로 참여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임금 삭감은 없는데, 노동시간의 20%를 줄였다. 여론조사에서 주4일제에 대한 국민 지지가 80%를 넘는다.

스웨덴, 덴마크, 뉴질랜드, 심지어 Kar?shi(과로사)의 나라 일본에서도 정부 차원에서 주4일제를 추진하고 있고, 지자체나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실험에 돌입하고 있다. 또 미국 의회에도 지난 8월 주4일제 법안이 발의됐다.

주4일제는 이렇게 노동시간을 단축해 삶의 질을 높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탁월한 대응이기도 하다.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에 따르면 주4일 근무제로 전환할 경우 영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21.3%를 줄일 수 있다. 당연하게도 하루만 함께 쉬어도 교통, 에너지 사용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백날 텀블러 타령하는 것보다 노동시간 단축 같은 시스템 변화가 슬기로운 해법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대선을 경유하며 주4일제가 슬슬 전면에 나올 기미를 보인다. 그러자 주4일제를 하면 임금이 삭감된다, 경제가 위기다, 보수언론들이 벌써 군불을 때고 있다. 물론 주5일제가 시행됐을 때도 나라 망한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었지만, 세상은 멀쩡하기만 했다. 되려 1인당 노동생산성은 향상했고, 취업자도 267만 명 늘어났으며, 주당 평균 노동시간도 단축됐다.

52시간 상한제조차 누더기가 됐는데 이게 가능하겠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세상의 화두로 뜨겁게 올려야 하지 않을까. 삶의 질을 올리고, 일자리를 늘리며, 기후위기에 대한 비책의 하나로써 주4일제를 정착시키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나. 상상해보라. 금요일이 사라진다면, 금요일이 휴일이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우리의 월요일 아침이 조금 더 경쾌해지지 않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