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명숙의 인권프리즘] 노동 없는 대선에서 필요한 건 빌런

  • 기사입력 2021.09.27 15:07
  • 최종수정 2021.09.27 16:05
  • 기자명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명숙의 인권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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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엔, 새로운 주인공이 필요한 법!”

영화 <크루엘라>의 주인공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면서 한 말이다. 크루엘라는 재능이 있었지만, 주변 환경으로 인해 권위와 탐욕으로 패션계를 주름잡는 ‘남작 부인’의 밑에 있다가 그에 맞서는 인물이다. 뻔한 인물들이 20세기에나 나올 법한 케케묵은 얘기를 하며 대통령이 되겠다는 보도를 접하고 있자니, 몹시도 ‘크루엘라’가 목마르다.

특히 국민의 힘과 민주당 등 거대 보수양당의 대선주자들은 ‘노동정책’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조혐오와 노동비하를 일삼는다. 국민의 힘의 대선후보 경선자인 윤석렬 전 검찰총장은 노동시간을 “1주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라고 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한다. 윤 전 총장은 ‘유연근무 주장’이라고 해명했지만,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국제암연구소도 2급 발암물질로 야근을 규정할 정도인데, 한국은 야근으로 건강을 해치며 과로사가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심지어 그는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며 생산직이나 서비스직 노동을 비하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전히 사람의 노동이 들어가야 작동되는 삶의 세계가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필수노동에 대한 보호와 존중을 논의하는 상황과도 어긋난다.

통치전략으로서 노조혐오

노조혐오는 더 심하다. 홍준표 국민의 힘 대선후보 경선자는 “대통령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 강성·귀족노조의 패악을 막아 노동 유연성을 높이겠다”라고 하더니, 최재형 경선자도 “귀족노조·특권노조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90% 노동자에게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드리겠다”라고 주창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귀족노조나 강성노조는 어디 있나. 민주노총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한 귀족노조 담론은 민주노총 조합원 내부에서 말하는 정규직 중심의 노조라는 비판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민주노총이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을 비롯한 노동3권을 행사하는 것을 불온하고 강성이라고 표현한다. 노동3권은 국제사회가 이미 100여 년 전에 합의한 노동자의 권리다. 그나마 노동자의 힘은 집결이기에 단체행동권을 보장해야 고용을 쥐고 있는 자본가와 힘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조차 후보시절 “모든 미국인은 노조를 조직하고 단체교섭을 할 권리에서 나오는 존엄과 존경을 받아야 한다”라며 노조 조직화를 장려한 것과 비교해도 반동적이다.

그들이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을 공격하는 이유는 불평등 체제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행동을 막기 위함이다. 노동과 노동자를 정치영역에서 삭제하려는 전략이다. 이는 대선정책에 노동이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재명 후보 캠프에 과거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들이 대거 들어갔다고는 하나 그저 ‘표를 위한 인맥 쌓기’라고 느껴질 만큼 노동정책은 공표되지 않는다. 노동 없는 대선은 낡은 미래만을 그릴 수 있을 뿐이다.

반면, 국제사회가 그리는 노동의 미래는 한국처럼 퇴행적이지 않다. ILO는 노동의 미래를 ‘decent work(괜찮은 일)’로 설정하고 이를 이루는 방법으로 ‘권리제고, 고용, 사회보장, 사회적대화’를 제시했다. 괜찮은 일은 노동기회보장만이 아니라 적정한 노동시간, 고용의 안정성, 공정하고 평등한 대우, 사회보장, 노동에서의 인간존엄성을 포함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선후보들은 노동자의 ‘권리제고가 아니라 권리제로’를 외친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화상으로 참여한 ILO 총회에서 “위기 극복, 일자리의 양과 질 확대를 위해 ILO의 핵심 어젠다인 ‘사람 중심 회복’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연설했다. 집회했다고 민주노총 위원장을 구속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커녕 비정규직 차별과 착취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가 한 말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지금 한국에서 비정규직은 필수노동자임에도 백신접종을 차별받는 현실이라 더 씁쓸하다.

이렇게 대선에서 노동이 사라진 데에는 언론과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진영의 비판이 약했던 탓도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비정규직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박근혜 후보조차 비정규직 정책을 내놓았던 때를 떠올려보라. 당시 박근혜의 노동공약은 문재인의 공약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자들이, 시민들이 노동존중을 요구하며 소리 높여 싸울 때다. “새 시대엔, 새로운 주인공이 필요한 법. 다들 빌런의 존재를 믿고 싶어 하니까 내가 빌런이 되려고 해.” 영화 <크루엘라>의 대사처럼, 재벌을 위한 정치만 하는 이 횡포에 맞서는 노동자 악당이 필요하다. 탐욕적인 자본의 입장에선 빌런일 수 있으니, 노동에서의 인간존엄을 주장하는 빌런이 되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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