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상병 확인 절차와 업무관련성 확인 절차를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 검토해야

  • 기사입력 2021.09.28 20:00
  • 최종수정 2021.11.04 14:04
  • 기자명 김정수 향남공감의원 원장
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몇 달전 어떤 환자가 진료실을 찾았다. 자동차 공장 식당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하신 분이었다. 평소에도 허리가 많이 아팠는데 최근에 증상이 심해지고 다리 저림 증상까지 나타나서 인근 병원에서 MRI 촬영을 했고 요추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환자의 임상 양상이 추간판탈출증에 부합하고, MRI 영상도 추간판탈출증을 진단하는데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허리 부담이 큰 조리 업무에 장기간 종사했고,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료들 중에서 동일 상병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경우도 많아서 업무관련성이 명확하다고 판단되어 산재 신청을 했다. 4개월이 지나고 최근에서야 결과를 통보받았는데 불인정이었다. 업무관련성은 명확한데 상병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이런 경우를 많이 봐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특히 추간판탈출증은 이런 경우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필자도 추간판탈출증으로 산재 신청을 할 경우에는 MRI 영상 등 진료 기록을 다른 질환에 비해 좀 더 자세히 살피고, 애매할 경우 환자에게 상병 불인정 가능성을 미리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케이스는 비교적 명확하다고 판단했던 경우라 필자도 충격이 컸다. 물론 근로복지공단 질병판정심의위원회도 소위원회까지 개최하여 상병 확인을 위한 절차를 모두 거쳤다. 의사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으므로 이 결정이 문제라고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일 때문에 아픈 건 분명한데, 진단명이 정확하지 않으니 불인정한다는 결과를 4개월 만에 통보받은 환자가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너무 당연하다. 언제까지 이런 황당한 상황을 제도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지켜보고 있어야 하나?

산재 인정을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신청 상병이 명확히 확인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청 상병과 신청인이 수행하는 업무와의 관련성이 입증되는 것이다. 두 가지 요건은 서로 독립적이다. 즉, 신청 상병이 명확하다고 해서 업무관련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해서 신청 상병이 더 명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실제로 질판위 심의 과정에서 인정 여부를 판단할 때 업무관련성이 명확한 경우에는 신청 상병을 좀 더 폭 넓게 인정해 주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관례이지 원칙은 아니다.

현재 근로복지공단은 두 가지 요건을 확인하는 절차를 동시에 진행한다. 즉, 상병 확인을 위해 의무기록, 영상자료 등의 근거자료를 수집하는 작업과 업무관련성 확인을 위한 현장 조사, 특진 등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한다. 질판위 심의 과정에서도 두 가지 요건을 동시에 판단한다. 실제 심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병 확인을 위한 근거자료 수집보다 업무관련성 확인을 위한 근거자료를 수집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투여된다. 그런데 심의 과정에서 신청 상병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업무관련성을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지고 업무관련성 확인을 위해 투여한 시간과 에너지는 무용지물이 된다.

왜 꼭 두 가지 요건을 확인하는 절차를 동시에 진행해야 하나? 그럴 필요가 없다. 상병 확인 절차와 업무관련성 확인 절차를 완전히 분리하여 상병 확인 절차를 우선 진행하고 이후에 상병이 확인된 경우에 한해서 업무관련성 확인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이렇게 하면 신청 상병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 업무관련성 확인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도 되므로 행정력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환자의 경우 상병 확인 여부에 대한 결과를 훨씬 빨리 통보받을 수 있고, 상병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에는 확인될 가능성이 보다 높은 적절한 상병으로 변경해서 신청해 볼 수 있으므로 산재 인정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현재 질판위에는 임상전문의와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함께 참여해서 상병과 업무관련성을 동시에 심의한다. 그런데 실제로 상병 심의 과정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소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 반면 업무관련성 심의 과정에서 임상전문의의 의견은 상당히 비중있게 반영되어 전문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상병 확인 절차와 업무관련성 확인 절차를 완전히 분리하여 임상전문의는 상병 확인 과정에만 참여하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업무관련성 확인 과정에만 참여하도록 하면 전문성을 제고할 수 있다. 이러한 제도가 잘 정착된다면 전반적인 인정기간 단축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재 인정 절차는 계속 진화 중이다.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개선된 부분이 있고 산재 승인율도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 더 이상 이런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상병 확인 절차와 업무관련성 확인 절차를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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