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명숙의 인권프리즘] 이것은 학습도 노동도 아니다

무엇이 청소년을 죽음으로 몰아넣는가

  • 기사입력 2021.10.18 09:21
  • 최종수정 2021.10.18 22:47
  • 기자명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명숙의 인권프리즘
명숙의 인권프리즘

우리는 숱한 거짓말을 들으며 삶을 갉아먹는 제도와 관행에 ‘순응’ 당하곤 한다. “군대 가야 사람이 돼”, “다 사랑해서 잘되라고 체벌하는 거야” 같은 말들. 군대에서 폭력에 굴종하는 것을 사람 되는 일이라고 일컬었고,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모순형용이 아니라 궤변이었고 그 궤변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데 동원됐다.

지난 11일 여수시 웅천 마리나요트장에서 특성화고전남지부(준) 주관으로 홍정운 학생 추모문화제가 진행됐다. ⓒ 민주노총
지난 11일 여수시 웅천 마리나요트장에서 특성화고전남지부(준) 주관으로 홍정운 학생 추모문화제가 진행됐다. ⓒ 민주노총

지난 10월 6일 오전 여수의 한 특성화고 3학년인 홍정운 님은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으로 잠수하다 숨졌다. 현장실습은 말 그대로 ‘실습’이어야 한다. 그러나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실습이 아니라 노동이다. 그냥 노동도 아니고 착취적 노동이다. 직업계고에서 충분히 실습할 역량과 시간이 있는 만큼 업체에 노동자로 근로계약을 맺고 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려고 조기취업 형태의 산업체파견형 현장실습이 필요했고, 기업은 값싼 인력이 필요했기에 만들어진 제도다. 특성화고 등 직업계 고등학교는 인력파견업소로 전락했다.

2017년 LG유플러스 고객상담센터 욕받이 부서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목숨을 잃은 고 홍수연 님의 사망 이후 근본적 대책에 공감했고, 그 요구로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제’의 폐지를 요구했다. 계속되는 현장실습생의 죽음에 교육부도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근본적 대책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전면 폐지하고, 기존 6개월이던 현장실습 기간을 3개월로 줄여 ‘학습중심’ 현장실습으로 전환했다.

이 조치가 1년이 지나기 전인 2019년 1월 31일, 안전사고 부담 및 책무성 강화로 인한 현장실습 참여기업이 위축된다며,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다시 발표한다. 기업 선정 절차인 현장실사(기업방문 횟수 줄임)를 완화하고 현장실습(집중, 학기)이란 것을 신설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이 가는 현장실습 업체의 질이 크게 하락했다. 이에 질세라 고용노동부가「산업현장 일학습병행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일학습병행지원법)을 꺼내 들더니 교육부가 동조해 2019년 8월 2일 통과시켰다. 일학습병행지원법은 ‘산업체파견형 현장실습’이 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값싼 인력이 필요한 기업’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이는 법안에 ‘학습권 보장’ 대신 ‘산업수요 적극 반영’이라는 법조문에서도 드러난다. 기업의 수요에 맞게 학생들을 졸업 전에 ‘학습근로자’로 탈바꿈시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생이 원하면 일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이 법에 있어야 하지만 없다. 학습근로계약의 해지주체가 사용자라고 단정하는 23조 조항이 버젓이 있다. 이러한 법 제도 아래에서 고등학생들이 부당한 일에서 벗어나 학교에 가겠다고 말하기 쉽겠는가. 법 제정 당시 교육부 장관은 유은혜 교육부총리였다.

유 부총리가 사고현장에 내려가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고 자격증도 없었던 학생이 잠수작업 업무 지시를 받았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업체는 기본적인 직업교육훈련촉진법과 산업안전보건법도 위반했다. 18세 미만인 자의 ‘잠수작업’을 금지하고 있고, 현장실습 담당자를 배치해야 하는 기업의 의무를 위반했고, 위험한 작업은 2인 1조로 해야 하는데 지키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그의 죽음에 기업의 책임만이 있는 것일까.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을 그곳으로 몰았던 제도와 법, 바로 산업체파견형 현장실습제도를 건드리지 않고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인의 죽음에서 알 수 있듯이 산업체파견형 현장실습은 학습도 아니고 노동도 아니었다. 더 이상 학교가 나서서 학생들을 열악한 작업환경에 내모는 제도는 폐지해야 맞지 않은가.

유족의 말에 따르면 고인의 꿈은 잠수사가 아닌 선장이었다고 한다. 그의 꿈과 숨을 거두어간 것은 바다가 아닌 죽음의 제도다. 남은 이들의 숨을 이어가게 하고, 고인과 유족의 한을 풀 최소한의 방법은 있다. 바로 교육부가 기업이 아닌 학생들의 편에 서서 ‘학습도 아니고 노동도 아닌’ 죽음의 제도를 폐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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