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우리의 친절한 제보자

  • 기사입력 2021.10.15 16:23
  • 기자명 이송희일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제보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2015년 던킨도너츠 인천공장이 위생 문제로 폐업돼 일자리를 잃은 경험이 있다.”

지난 10월 5일, 제보자가 전면에 등장했다. 던킨도너츠 공장의 위생 문제를 세상에 알린 후, 회사 측과 보수언론이 ‘영상이 조작됐다’라는 기사들을 일제히 융단폭격하듯 유포하던 시점이었다. 회사 측은 제보자 신원 공개와 무기한 출근정지 처분으로 보복에 나섰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민노총’ 소속원의 소행이라는 프레임을 양산하고 있던 터였다. 평소 노동운동을 달가워하지 않은 대중들도 그럴 줄 알았다며 신나게 혐오의 맞장구를 쳤다.

당연히 위축될 만했다. 저토록 일방적인 매도의 쓰나미를 뚫고 앞에 나서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헌데도 제보자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추가 영상을 공개하며, 그동안 환기시설과 반죽의 비위생을 계속 지적해왔지만, 회사 측이 모르쇠로 일관해 어쩔 수 없이 제보했노라 심경을 밝혔다.

“다른 계열사로도, 인터넷 판매로도, 아이들이 먹는 학교 급식으로도 나가기에 마냥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실상을 밝힌 한 노동자의 용기. 담담한 어조로 기자회견을 하는 제보자 사진을 물끄러미 보는 순간, 온갖 위협 속에서 청문회에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 청문회에 나서던 <워터프론트>의 부두 노동자 말론 브란도가 겹쳐졌다.

1954년에 개봉된 이 흑백영화는 노동영화의 고전 중 한 편으로 손꼽힌다. 부패한 노조의 비리를 폭로하는 부두 노동자로 분한 청년 말론 브란도의 강렬한 메소드 연기를 영화사에 각인한 작품이다. 협박과 두려움 때문에 `밀고를 할 수 없다`는 부두 노동자들에게 성당 신부는 이렇게 용기를 채근한다.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면 사실을 밝히고 그것에 대해 증언을 하는 거예요. 그건 밀고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거죠.”

살해 협박과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고민을 거듭하던 말론 브란도는 결국 청문회장에 나타나 진실을 증언하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감독 엘리아 카잔이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진보적인 동료 영화인들을 고발한 전력을 사후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제작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오히려 그러하기에 이 영화는 감독의 죄의식과 불안마저 삼투된 ‘권력에 진실을 말하기 Speaking truth to power’의 탁월한 고전 텍스트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권력에 진실을 말하기’는 피억압자들이 권력 앞에서 옳고 진실을 폭로하는 비폭력 저항이다. 간디의 비폭력운동 사티아그라하에서부터 내부 고발자 에드워드 스노든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똑바로 응시한 채 진실의 말을 발화하는 것으로 위선을 드러내고 권력관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들이 이에 해당한다.

가장 멀게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대답한다. ‘파레시아 Parresia’. 그것은 모든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대중 앞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 침묵을 찢는 담대한 용기. 던킨도너츠의 위생 문제를 세상에 제보한 그 젊은 노동자의 용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증언 덕분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문제의 공장에 대해 해썹(HACCP) 부적합 판정을 내렸고, 김해, 대구, 신탄진, 제주 공장 등도 식품위생법 위반 적발이 이뤄졌다. 또한 그동안 비알코리아가 노동자 승진 인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을 지속해서 차별해왔다는 사실도 중앙노동위원회에 의해 낱낱이 밝혀졌다.

그러자 조선일보, 한국경제, 서울경제, 머니투데이, 매일경제 등 재벌의 기관지들과 비알코리아, 그리고 그를 비난하던 대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사과도 없고, 변명도 없다. ‘던킨도너츠 반죽에 오염 물질이 섞이고 있다’라는 메세지를 희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를 매도하던 그 광기 어린 스피커들이 돌연 자취를 감추었다. 그야말로 우리 시대의 몰염치, 진실을 두려워하는 권력의 카르텔이 얼마나 공고한지를 증거가 되는 적나라한 풍경이었다.

응당,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해야 시민들도 안전하다. 노동자가 일하는 위생 환경이 곧 시민들의 위생 환경이다. 각각의 노동현장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조각보들에 다름없다. 반죽에 오염 물질이 섞이고 있다, 그게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걸 볼 수 없어 세상에 알렸다고 조곤조곤 말하는 젊은 노동자의 용기는 당연히 돌팔매질이 아니라 박수갈채를 받을 일이었다. 이 혼탁한 세상에서도 소금처럼 반짝거리는 ‘시민 윤리’였다. 자신의 손해를 각오한 그 친절한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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