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기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 ① 여섯 개의 오렌지 돌리기

유미향 초등돌봄전담사가 전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 기사입력 2021.11.04 14:31
  • 최종수정 2021.11.12 15:06
  • 기자명 유미향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경기지부 조합원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지난 7~8월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란 주제로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을 진행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은 이번 공모전을 통해 학교에서 당하는 차별과 서러움, 고용불안 등 현실은 물론 여성노동자가 가진 일과 가정, 돌봄 등의 어려움까지 생생한 삶의 현장을 전해왔다.
많은 작품 중 네 편을 골라 〈노동과세계〉에 기고, 민주노총 조합원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첫 번째는 초등돌봄전담사로 일하는 유미향 학비노조 경기지부 조합원의 이야기다. [편집자주]

2020년 11월 6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연 돌봄파업대회에 참가한 한 조합원.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2020년 11월 6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연 돌봄파업대회에 참가한 한 조합원.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새벽의 약속>에 나오는 로맹은 여자친구 발링틴에게 뽀뽀를 받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과 3알을 돌리기 시작해 ‘학교에서, 복도에서, 친구들 앞에서’ 열심히 연습한 결과 오렌지 다섯 알에서 여섯 알을 돌릴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오렌지를 돌리는 것은 아니지만 삶을 위해 매일 매일 돌리는 오렌지가 있다. 엄마, 아내, 책, 운동, 돌봄 전담사라는 오렌지를 돌리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그중 돌봄 전담사라는 오렌지가 가장 컸다. 이건 내 직업이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돌보고 있는 돌봄 아이들은 맞벌이 자녀, 다문화, 한 부모 가정, 다자녀로 구성되어 있고, 누가 봐도 사회적 약자다.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해준다는 명목하에 학교 밖으로 나가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있다. 이 아이들이 ‘고위공직자나 재벌, 국회의원 등의 자녀라면?’ 이렇게 쉽게 학교 밖으로 내몰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아이들은 안전한 학교 울타리 안에 있어야 하고, 공적 돌봄 안에서 안전하게 지낼 권리가 있다. 나는 최근에 나와 우리 돌봄 아이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나의 싸움은 코로나19와 함께 시작되었다. 코로나19는 순식간에 우리의 삶을 바꿔놓았다. 2020년 1월 말에 시작된 코로나19는 3월이 되어도 끝날 줄 몰랐고, 현재진행형이다. 2020년 3월에 학교는 개학하지 못했다. 겨울 방학에도 쉬지 않고 운영되던 초등 돌봄교실은 코로나로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정교사들이 재택 근무할 동안 ‘긴급 돌봄’이 시작되었고, 긴급 돌봄의 아이들은 오로지 돌봄 전담사들의 몫이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였던 우리 돌봄 전담사들은 ‘긴급 돌봄’을 충실히 수행했다. 책상과 교실 소독은 물론, 발열 체크도 수시로 했고, 손 소독을 강조하고,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리는 아이들을 지도했다. 교육청에 출석 인원을 보고 하고, 간식과 점심도 챙겼다. 교차 근무로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근무하는 날에는 이 모든 일과 함께 저녁밥까지 먹이고 퇴근해야 했으니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개학은 계속 뒤로 밀렸다. 반복된 날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피로가 쌓였고, 몸은 이상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 깜짝 놀랐다. 왼쪽 목에 불룩한 혹이 생긴 것이다. 너무 놀랐고, 병원에서 갑상선 호르몬 검사를 했지만, 이상 없다고 했다. 약을 먹어도 혹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진찰하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큰 병원으로 옮겼다. 속이 타는듯한 뜨거운 조형제를 넣고 CT를 찍었다. 혹 부위는 크고 하얗게 보였지만 화학적으로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원하신다면 혹 속의 물질을 주사기로 빼고, 알코올을 넣어 말려 줄 수는 있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은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아니에요. 조금 더 지켜볼게요”하며 갑상선 암이 아니라는 말에 안심했다. 긴급 돌봄이 계속되는 동안 몸은 더 피곤해졌고, 정신적 긴장도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누구한테 “내 몸이 이러니 알아주세요” 할 수도 없었다. 약을 먹어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목의 혹은 계속 신경이 쓰였다.

2020년 11월 6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연 돌봄파업대회에 참가한 한 조합원.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2020년 11월 6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이 연 돌봄파업대회에 참가한 한 조합원.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5월에 개학했다. 코로나는 여전히 무서웠지만, 계절은 시간에 맞춰 꽃이 피고 졌다. 아름다운 봄의 계절이 오고, 봄바람이 불 듯 돌봄 전담사의 고생에도 따뜻한 바람이 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긴급 돌봄’으로 고생한 돌봄 전담사들의 수고와 노력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었다.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솥에 삶아 버리듯,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자체 이관이든? 교육부 소속이든? 월급만 받으면 되는 거지. 뭐가 어때?’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고용 승계는 없다’라는 말은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한번 두들겨 맞은 정신은 빨간불을 깜빡이며 가만 놔두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몰랐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큰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노조에 대해 ‘맨날 생떼(?)나 쓰는 사람들’이란 오해와 불신도 있었다. 그래도 믿을 건 학비 노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부 또는 교육청 혹은 학교가 내 목을 붙잡고 흔드는 것을 알아챈 후 목이 몹시 아팠고(이때까지도 목에 생긴 혹도 없어지지 않았다), 단칼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도 않았다. 내 발로 노동조합 연수에 찾아가게 되었고, 이후로 11월 6일 총파업에 참여하기까지 많은 일이 지나갔다. 총파업에 다녀온 후 일기를 썼다.

생수 40병과 귤 5kg 2박스를 준비하는 담당이라 무거웠다. 신갈 굴다리 밑 시외버스정류장까지 남편이 태워줘서 고마웠다. 10시 30분에 노조원들을 만나 관광버스에 올라타면 되는데, 9시 30분에 도착하여 여유가 있었다. 1시간 동안 시외버스 터미널 대기실에서 책을 읽었다. 김민섭의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라는 책이다. 지난번 수지 도서관에서 있었던 zoom 특강을 듣고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지방 대학에 인문학 강사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비정규직의 설움과 불합리에 대한 말들을 써 놓은 책이었는데, 내 이야기 같아서 술술 읽혔다. 이 작가의 zoom 특강은 내게 큰 울림을 줬다. “당신 인생에 부조리가 들어왔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스스로 대답해야 합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작가님은 책을 썼고, 대학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내게도 지금 그런 위기가 닥쳤기에 나 스스로 대답을 찾기 위해 노조 연수를 들으러 갔었다.
10시가 넘어가자 노조원분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처음엔 파업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노조원분들이 막판에 동참해줘서 버스에 28분이 탔다. 처음 보는 얼굴이 많았지만, 목적이 하나였기에 반가움이 컸고 고마웠다. 교육부 앞에서의 파업은 내게 커다란 힘을 줬다. 전국에서 모인 초등돌봄 전담사들을 보며 '나 하나는 미약하지만, 그 작은 힘을 보태면 큰 힘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꼈다. 그러나 간간이 비가 내릴 때는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자괴감도 살짝 들어 슬프기도 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늘 파업 참여에 대한 소감을 한마디씩 했다.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한다.’ ‘자꾸 뒤로 뺐는데 오늘 파업 집회를 보고 느낀 점이 많다.’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공적 돌봄은 꼭 지켜져야 한다.' 등 다들 공감되는 말씀을 나눠주셔서 좋았다. 그렇게 연대의 힘을 느꼈고, 이렇게 하면 뭔가 이루어질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긴급 돌봄’은 끝이 났고 학교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자 내 목에 있던 혹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런데, 11월 총파업 후 나는 생각지 못한 다른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총파업을 마치고 온 우리에게 학교의 높으신 분께서 ‘투명 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볼모로 파업에 참여한 비양심적인 사람’으로 낙인을 찍은 뒤 우리의 인사를 받지 않고, 모르는 척 지나가셨다. 그렇다고 나도 같이 그분을 투명 인간 취급할 수는 없었기에 받지 않는 인사라도 참 열심히 했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 상처받지 말자고 속으로 여러 번 다짐했지만, 마주칠 때마다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학비 노조가 내 뒤에서 버티고 있다는 든든함이었다. 내가 무기 계약직이 아니었을 때는 2월 말에 한 번씩 계약만료 통지서를 받았었다. 일을 계속할 수 없다는 계약만료 통지서 받고 나면 팔다리의 힘이 풀렸었다. 팔다리의 힘을 다시 넣어준 것은 학교 비정규직 노조였다. 내가 노조에 힘을 보태고 있지 않을 때도 노동 조합원들은 힘차게 싸워주셨다.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해 줬고, 파업에도 눈치 보지 않고 참여할 수 있었고, 투명 인간 취급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노조를 믿었기 때문이다. 작은 파도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파도가 덮치듯이 투명 인간 파도를 간신히 넘으니 더 큰 파도가 다가왔다. 버스 안에서 감동과 좋은 말과 연대를 말씀하셨던 노조원들의 협조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11월 총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이 ‘너무 힘들었던 것일까?’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무반응들이 이어졌다. 아직 우리가 승리한 것이 아닌데, 우리는 갈 길이 멀기만 한데, 노조의 그 어떤 부탁이나 협조에도 반응이 없는 침묵 상태가 지속되었다. 땅바닥에 딱 붙어 움직이지 않는 젖은 낙엽 같은 노조원들의 반응은 간부들도 덩달아 지치게 했다. “왜?”라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다. 물러나면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기력에 시달리는 나의 고민을 알게 된 지인은 <송곳>이란 책을 읽어보라고 알려줬다. 나는 최규식의 <송곳>을 읽고 다시 힘을 내보기로 했다.

같이 살자고 총대 멨는데, 지들 생각만 하니까 미치고 환장하겠지? 그거 반장 병이야. 원래 지도 떠들다가 반장만 되면 떠드는 애들이 죄다 바보 같고 한심해 보이는 법이거든. 
- p207 최규식의 <송곳2> 중에서

그래 그랬다. 반장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하고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마음을 다잡는다. “우린 한배를 탄 사람들이다. 노를 거꾸로 젓지만 않는다면 우린 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좀 힘들더라도 미워하지는 말자”라고 다짐했다.

2021년 6월 19일 우린 다시 교육부 앞에 모였다. 2020년 11월 6일 총파업 이후 개선안을 내겠다고 약속했던 교육부는 지지부진했고, ‘개선안’이라고 내놓은 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개선안이라 쓰고 ‘개악 안’이라 읽어도 충분한 내용에 우린 분노했고, 또 한 번 뭉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송곳>에서 힘을 얻었다.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거요. 어떤 놈은 한 대치면 열대로 갚지만 어떤 놈은 놀라서 뒤로 빼. 찔러봐야 상대가 어떤지 알 거 아뇨. 내가 뭘 하면 재들이 쪼는지 내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싸우면서 확인하는 거요. 싸우지 않으면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걸 넘을 수도 없어요. - p92 최규식의 <송곳2> 중에서

뺏어도 화내지 않고 때려도 반격하지 않으니까. 두렵지 않으니까.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웁니다. - p181 최규식의 <송곳2> 중에서

2021년 8월 5일 교육부의 발표가 났다. 돌봄교실을 확충하고 운영 시간을 늘린다는 것이다. 우린 절반의 승리를 거둔 느낌이었다. 지자체로의 이관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일단 물꼬는 막았다. 그러나 최종 목표인 상시 전일제 전환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훅 들어온 내 삶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고자 노동조합 교육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내 삶의 많은 것이 바뀌었다. 엄마로서 딸과 ‘공정, 능력주의, 희생’에 대한 사회적 이야기를 나누고, 아내로서 남편에게 ‘노조 활동’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 소설책을 읽던 내가 ‘노동, 인권, 연대, 비정규직’에 대한 책을 읽고, 돌봄 전담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나의 입은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고, 나의 손가락은 단톡방에 노조 소식을 퍼 나르고 있다. 내 팔은 ‘투쟁’을 외치며 우뚝 솟았고, 내 발은 한 달에 한 번씩 서울 노조 회의나 파업, 궐기 대회에 데려다 놓는다. 빨간불이 들어왔던 내 머리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내게 필요한 것은 로맹이 발랑틴에게 받았던 달콤한 뽀뽀 같은 말랑함은 아니다. 아니, 교육부가 내 볼에 상시 전일제라는 말랑한 뽀뽀를 해 주길 원한다.

상시 전일제를 받는 날까지 나는 오늘도 노동조합 오렌지 한 개를 열심히 돌릴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기에’ 더 열심히 돌릴 것이다. 나 자신, 돌봄 전담사, 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 떨어지지 않도록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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