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기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 ② 급식실 노동자의 삶

권윤숙 조리실무사가 전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 기사입력 2021.11.09 10:21
  • 최종수정 2021.11.12 15:06
  • 기자명 권윤숙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경기지부 조합원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지난 7~8월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란 주제로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을 진행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은 이번 공모전을 통해 학교에서 당하는 차별과 서러움, 고용불안 등 현실은 물론 여성노동자가 가진 일과 가정, 돌봄 등의 어려움까지 생생한 삶의 현장을 전해왔다.
많은 작품 중 네 편을 골라 〈노동과세계〉에 기고, 민주노총 조합원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조리실무사로 일하는 권윤숙 학비노조 경기지부 조합원이 전한다. [편집자주]

학교급식실 현장.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학교급식실 현장.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새벽 5시,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밥상을 차려놓고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어깨며 허리며 근육통이 채 가시지 않은 몸을 이끌고, 6시 전에 버스를 타야 했다. 검수 준비를 위해서 7시에 출근해야 한단다. 이제 막 입사한 나로서는, 이해하기도 항변하기도, 너무 벅찬 출근길이었다.

아이들이 9살, 10살이 되면서 재취업을 해야겠다 마음먹고 공고문을 보고서 장거리 학교 급식실에 원서를 냈다. 한 번 떨어지고 두 번째 합격한 터라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면 아이들 휴대전화, 집 전화를 총동원해서 깨우고 일을 들어갔다. 그러면 집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었단다. 10살 형이 동생을 깨워서 식은밥을 먹이고, 씻기고, 전기, 가스를 확인하고서야 학교를 갔다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인 나는 정신없이 일했다. 늦지 않게 식지 않은 따뜻한 점심을 먹이기 위해 말이다.

그러다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비 맞고 오겠네. 우산 가지고 갔나?’

아이들은 비에 흠뻑 젖어 돌아오고…. 아픈 맘을 내색할 수 없던 나도, 아이들도 그렇게 단단한 돌이 되었다. 여기서 누구라도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정말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아이들은 사물함에 여유분 우산을 놓고, 아침마다 일기예보를 보는 습관을 지녔다.

일을 시작하면 휴대전화를 볼 수 없었기에, 급한 연락을 하기가 어려워, 하루는 큰아이가 아빠한테 연락을 한 일이 있었다. 중요한 회의에서 벨이 울려 난감한 상황에서 사장님이 받아보라 하셨단다.

“아빠, 오늘 비 와요?”

당황스러운 질문에 마지못해 ‘응’이라고 대답했던 남편은, 지금도 그때도 아이들과 내가 얼마나 힘들게 버텨냈는지 다는 알지 못한다.

중간에 아이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갔더니 뇌수막염 의심이 나와, 검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네 식구가 며칠을 병실에서 자고 출근했다. 학교에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해 감원이 있다 해서 차마 말을 못 했다. 장거리에 아이들이 어리니, 아무래도 그 대상이 내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일이 서툴렀던 나는, 민폐 끼치기 싫어서 되지도 않는 속도를 맞추다, 다리가 호스에 걸려 갈비뼈를 수도꼭지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역시 말을 못 했다. 참고 퇴근한 후 다음 날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하루 쉬었다. 퇴근길에 넘어졌다고 하고 말이다. 그때는 감원의 대상이 된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컸다.

급식실 현장 사진. 학교급식실 노동자들이 후드를 타며 불안한 자세로 청소를 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급식실 현장 사진. 학교급식실 노동자들이 후드를 타며 불안한 자세로 청소를 하고 있다.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그렇게 힘들게 힘들게 버티며 받아든 월급 내역서…. 88만 원 세대라는 말을 TV에서나 들어봤지, 그런 월급을 받아보니 ‘이거 계속 다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봉이라 그런지 일에 대한 자긍심도 갖지 못했다. 어디 가서 엄마 급식실 다닌다는 말 하지 말라고, 애들이며 남편한테 신신당부하기 일쑤였고, 누가 알기라도 하면 죄지은 것도 아닌데, 부끄러웠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1년을 보내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이 되었다. 박봉에 힘든 육체노동이라고 자긍심도 갖지 못한 직장이었는데, 막상 무기계약직이 되니, 해고의 불안정 속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심신의 안정이 찾아왔다. 겁많은 사람이라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미뤄뒀던 숙제 같은, 전국학교 비정규직 노동조합에도 가입했다. 급여의 변화도 생겼다. 근속 수당이 생기면서 경력자의 처우가 나아졌다. 단순히 월급의 상승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면 미래에 나도 저 정도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선배님들은 그랬다. 무리한 작업요구를 요청해도 해야 된단다. 왜? 라는 의문에 ‘남의 돈 벌기가 쉽니?’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억울하면 출세해야지’라는 패배주의를 무심코 받아들였다. 이렇게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많이 배우지 못한 패배자들일까? 쉽게 구할 수 있는 직업이니, 마음대로 부리고, 쉽게 해고해도 되는 노동자일까?

어느 해, 한 국회의원이 ‘밥하는 동네 아줌마’라고 비하하는 일이 있었을 때, 한 앵커가 이런 멘트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의 추억에도 교집합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도시락’일 겁니다.

도시락은 추억인가 하면, 또한 노동이었습니다.
매일 새벽이면, 서둘러 일어나 챙겨야 했던, 반복되는 그림자 노동!

그래서 어머니들에게 학교급식 전면 시행은, 해방의 날이었고, 혹자는 도시락에서 해방된 날을 일컬어 ‘여성해방’의 날이라 말하기도 하더군요.

도시락은 또한 계급이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비교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깟 계란 하나에 아이들의 계층이 갈리고, 남모를 열등감과 낭패감을 하루 한 번씩 겪어야 했던…. 그래서 어머니들 마음까지도 상처 입게 했던….

그러니 도시락이 없어지고 학교급식이 시행됐다는 것은, 그 모든 도시락의 추억과 어머니들의 끝없는 노동과 특히나 교실에서 일어났던 계층의 갈등까지도 모두 공교육이 대신 책임져 주었던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밥하는, 동네, 아줌마’
늘 하는 일이고 그것도 누구든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뭉쳐진, 이 세 단어의 조합으로 인해 상대를 업신여긴다는 뜻이, 필연적으로 강해지는 그 발언….

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도시락의 추억과 어머니의 노동과 교실에서의 차별을, 대신 짊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달랑 세 단어로 비하되기엔, 그들이 대신해 준 밥 짓기의 사회학적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한 급식실 노동자의 손가락 관절.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한 급식실 노동자의 손가락 관절.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나는 이 브리핑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 번도 이런 정중한 표현으로, 이런 극진한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같이 사는 남편도, 자식들도, 심지어 같은 공간에 있는 학교 사람들도 모른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면서, 동료들 간 화합하며, 시간 내에 위생적으로 음식을 해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브리핑을 들으며 나도, 수많은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도 자긍심을 가지길 바란다. 우리는 그저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환경미화원들이 쓰레기를 치워주지 않는다면, 재벌들도 깔끔한 사람들도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히고 만다.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하찮은 일 같은 것은 없다.

우리의 일도 그렇지 아니한가? 평소엔 아무도 느끼지 못 하다가, 파업할 때에는 온갖 저주의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이들을 볼모 삼아 뭐 하는 짓이냐며, 아주 나쁜 사람들 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댄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이렇게 밥 한 끼가, 급식실 노동자들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나? 그런데 정작 평소엔 왜 그리 하찮게 대하는 걸까?

파업하면 불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가 날 것이다. 그러나 그 분노를 노동자에게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다른 편에서는 사용자에게 항의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환경미화원들이 파업할 때는, 시장 집 앞에 쓰레기를 갖다 놓고 성실히 교섭해서 해결하라고 한다는 것이다.

파업은 노동자들의 최후의 보루다. 사용자가 성실히 교섭하지 않을 때만 갖는 법적인 권리이며, 학교 비정규직 파업이 있을 때, 우리 사회도, 애들 밥 굶긴다고 노동자들을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교육청에 성실히 교섭해, 파업을 끝내라는 항의 전화를 할 수 있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한 귀족노조라며 파업을 부정하는 인식도 점차 바뀌길 원한다. 노동자들도 특히 육체노동자들도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고 지식층만큼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고 우리도 생각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렇게 몇 번의 파업이라는 소용돌이를 겪으며, 5년이 지나 전보라는 제도가 시행되면서, 근무지를 집 근처로 옮길 수 있게 됐다. 새벽 5시에 기상하지 않아도, 어둠을 뚫고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도 고등학생이 되었다. 잘 자라준 아이들도 기특하고, 고비도 많았지만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온 자신도 대견하다.

8년 차 급식 노동자로 살면서, 온갖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지만, 천직처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희망이 있다면, 학교 급식실 일자리가 힘들기만 하고 박봉인 나쁜 일자리가 아닌, 자식들 키우며 먹고 살 만하다 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중년여성들의 일자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남자 조리사들도, 젊은 청년들도 하고 싶어 하는 질 높은 일자리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방학 중에 비근무자들의 생계 대책도 마련되어서 생계 불안에서 벗어나기를 희망해 본다.
나는 ‘자랑스러운 학교 급식실 노동자’라는 말을 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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