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기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 ③ 그날 아침

안성미 조리실무사가 전하는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

  • 기사입력 2021.11.11 15:07
  • 최종수정 2021.11.11 16:16
  • 기자명 안성미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인천지부 조합원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지난 7~8월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내다!’란 주제로 학교비정규직 작품공모전을 진행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들은 이번 공모전을 통해 학교에서 당하는 차별과 서러움, 고용불안 등 현실은 물론 여성노동자가 가진 일과 가정, 돌봄 등의 어려움까지 생생한 삶의 현장을 전해왔다.
많은 작품 중 네 편을 골라 〈노동과세계〉에 기고, 민주노총 조합원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조리실무사로 일하는 안성미 학비노조 인천지부 조합원이 전한다. [편집자주]

광주 모 고등학교 급식실 현장.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광주 모 고등학교 급식실 현장.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그날 아침은 유난히 분주했다.

메뉴도 복잡했고 게다가 학부모들의 요구에 맞춰 초등저학년과 초등고학년의 맵기 정도를 달리하라는 작업 지시에 우리 학교 조리실에 있는 모든 솥단지가 풀로 가동되었다.

우리 학교는 초중통합학교로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식사가 한 곳에서 조리된다. 어쩔 수 없이 어거지로 끼워 맞춘 조리실은 동선도 너무 멀고 작업공간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못한 상태였다. 알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솥의 내용물을 옮길 때 솥의 걸쇠를 걸어 반드시 고정시켜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 동료의 마음을. 작업공간이 협소해 아직 조리 중인 메뉴를 위해서 빨리 비워주고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했다는 걸 말이다.

사고가 난 후 그 동료는 자신의 상처는 차마 보지도 못한 채 우리를 보고 미안하다고만 했다. 연신 미안하다고만 했다. 선생님께도 계속 죄송하다고만 했다.

장화에 들어간 국으로 피부는 이미 종아리부터 벗겨져 흘러내려 있었다. 동료는 신다 만 등산양말처럼 접혀서 포개있는 피부들을 차마 보지도 못하고 계속 미안하고 죄송하다고만 했다. 자신의 아픔과 고통보다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연신 말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동료의 상처를 미처 다 살펴보지도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남은 국을 담고 조리하다 만 메뉴를 완성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듯이, 마치 아이들이 이 사실을 알면 안 된다는 듯이 배식대에 서서 습관처럼 아이들에게 밝은 목소리로 ‘맛있게 먹어’를 하고 있었다.

가슴은 벌렁거리고 손끝은 떨리고 있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사이 동료는 119를 타고 오롯이 고통을 감내하며 쓸쓸히 병원으로 실려 갔다. 불안한 마음에 머리는 이미 하얘진 상태로 서로 조심하자고 독려하면서 그날 일을 겨우 마쳤다. 사실 남은 일들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날의 떨리던 내 몸만 기억이 날 뿐이다.

그날 일이 끝난 후 나는 허탈감에 빠졌다. 나뿐이 아니라 그 상황을 목격한 모든 동료들은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다가온 상황에서 일어난 사고라 식사 때를 기다리던 그 많은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작업 중지나 지연에 대한 지시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정상적인 급식이 진행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 온 나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어깨에 메어있는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온몸의 힘이 빠져버렸다.

한참을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으니 가슴 저 밑에서부터 통증이 밀려왔다. 눈가에 눈물이 고이더니 어느 순간 난 누가 죽은 것 마냥 아무도 없는 집에서 펑펑 통곡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정상적인 식사를 위해서 내 동료의 고통과 두려움을 외면해 버렸구나. 입으로는 미안하다고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상처도 보지 못하고 두려워하던 다친 동료의 그 눈이 자꾸 떠올랐다. 이런 날은 정상적인 식사가 될 수 없는 날이었는데... 그날 배식대에 서서 습관처럼 ‘맛있게 먹어’라고 말한 내 입을 떼어버리고 싶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서로 더욱더 조심했지만 아직도 국 솥 앞에만 가면 지금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한동안 그 동료의 상처가 뇌리에서 벗어나지를 않았다. 그 동료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더 짙어졌고 선명해졌다. 그럴수록 어마어마한 고통에 함께 해주지 못한 죄책감과 미안함에 내 마음의 상처도 같이 짙어갔다. 더 짙어지는 상처가 우리의 외면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더욱 아파왔다. 그 동료는 이식수술을 하고 나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치료에 진척이 없었다. 결국 아물지도 못한 상처를 안고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나마 집에 온 후 마음의 상처도 다리의 상처도 지금은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 그 동료는 자기 상처의 치료보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일자리를 잃을까 봐 그 걱정을 지금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화성의 모 고등학교에서 벽에 걸린 사물함이 떨어져 휴식 중인 조리실무사 4명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접했다. 9명의 조리실무사 중 4명이 다쳐 119에 실려 갔는데 그날 5명의 조리실무사와 대체인력으로 급식을 강행했다는 얘기였다. 그날 다른 사고 없이 정상적인 급식이 진행되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9명의 일을 5명이 나눠서 했다면 분명 일의 강도며 일의 집중도가 엄청났을 텐데, 게다가 아침에 큰 사고를 목격했다면 그때의 나와 같이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이었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 중 한 분은 중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라는 중증이라는데... 아무리 대체인력을 투입한다고 해도 그 대체인력이 기존 인력을 대신할 수 없음이 당연한 것인데 인원수만 채웠다고 조리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 학교는 과연 할 말이 있을까?

내가 우리의 사고로 접했던 그 마음을 이분들도 경험했으리라 짐작하니 너무 화가 났다. 뉴스 기사로 사고가 난 휴게실을 볼 수 있었다. 9명이 다함께 앉아 있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아터졌고 열악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 장소가 휴게할 수 있는 공간이 과연 될 수 있을까? 그저 옷을 갈아입기 위한 탈의실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협소한 휴게실에 둘 공간이 없어서 벽 중간에 허술하게 옷장을 매달은 업체도 화가 나고, 옷장을 설치한 업체에 책임을 묻겠다는 진심 없는 도교육청도 짜증났다. 그런 상황에서 급식을 강행한 학교는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책임을 묻고 징계하면 하반신 마비를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분은 누구를 징계할 수 있을까? 과연 징계할 곳이 있기나 한 건가?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만일 사고 상황을 아이들이 알게 되고 급식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학교를 탓했을까?
그런 결정을 한 학교는 과연 그게 최선이었을까?
우리는 그냥 급식을 위한 도구였던 것일까? 학교에서 나는 그저 도구였나?
아물고 있던 그 동료에 대한 죄책감이 다시 몰려왔다.

한 번도 난 내가 급식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난 그저 아이들에게 위생적이고 건강하고 이왕이면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 주고 싶었을 뿐이다. 이 일을 하는 분들은 모두 다 같은 마음일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건 음식 만드는 걸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미래의 우리나라 주인들인 아이들에게 위생적이고 맛있는 음식을 내 손으로 먹이고 싶어서였다. 이왕이면 내가 잘하는 일로 보람도 느끼고, 수입도 생기면 좋으니까 다들 힘들다 만류했어도 도전해 본 것이었다.

이 일을 시작할 때 나의 자녀들도 학교의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였기 때문에 정말 내 아이를 먹인다는 생각으로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내가 마음먹었던 것보다 일은 훨씬 험난했고 내 몸은 점점 더 망가져 갔다. 학교는 안전하고 깨끗하고 반듯하지만, 우리가 일하는 급식실은 사실 너무나도 치열했다.

퇴근이 빠르지만 일찍 출근하기 위해 남편 출근이며 아이들 등교준비를 새벽부터 미리 해야만 했고, 빠른 퇴근 후에는 정형외과며 한의원이며 근골격계 질환으로 병원들을 전전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오죽하면 매달 나오는 근속수당이 한 달 치 병원비라는 우스갯소리도 이제 농담이 아니었다.

학교급식실 현장.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광주 모 고등학교 급식실 현장. ⓒ 서비스연맹 학비노조 제공

쾌적하고 위생적인 작업장은 매일 작업 후에 독한 세제로 광내고 힘주어 수세미질 하고 뜨거운 물을 뿌려 유지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들도 매일매일 락스를 부어가며 물때가 생기지 않게, 음식물이 남지 않게 청결하게 유지해야 했다. 작업 중에는 팔팔 끓는 뜨거운 것들을 많이, 빠르게,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고, 작업장을 이동할 때는 기름이 튄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게 발바닥에 힘을 주며 장화를 신고 뛰어 다녀야 했다.

또, 주어진 재료로 최대한의 맛을 끌어내려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여러 의견도 들어보고 하며 여러 번 손이 가게 정성으로 만들지만 식판에 담아 놓으면 볼품없어 보이기를 반복했다.

항상 조리 완료 후 2시간 안에 배식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배식시간 전에 쫓기듯 조리를 완료해야만 했다. 배식 전 배식대에 서 있으면 옷은 땀과 냄새로 절어있고, 얼굴은 땀과 음식물 범벅에 미처 닦지도 못하고, 심장은 마치 100미터 달리기하고 난 듯 쿵쾅거리고 있다. 아이들이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맛있게 먹어’라고 내뱉는 말은 어쩌면 내 심장이 진정되기 위한 주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 배식이 끝나면 본격적인 우리의 2차전 100미터 달리기가 남아 있다. 엉망진창인 식판을 정리해서 세척실로 끌고 와 85도가 넘는 뜨거운 물과 세제로 불리고 1차 2차 3차까지 세척을 한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세척실에서 땀으로 따가워진 눈을 고무장갑으로 쓸어가며 다른 집기류와 도구들을 세척하여 마무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원래 위치로 이동하면 2차 달리기가 끝이 난다.

식당과 작업장 불이 꺼져도 우리는 다시 마지막 3차전에 들어간다. 삶아서 세탁한 수십 장의 행주들을 널어 말리고 아침에 널어 두었던 빨래들을 뜨거운 소독고를 열어 정리한다. 그 와중에 한 번에 최대 3명씩만 샤워가 가능한 샤워실과 화장실에서 순번을 정해가며 샤워한다. 샤워하고 나와도 많은 사람으로 북적이는 휴게실 온도와 습도는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다. 모두의 샤워가 끝나 가면 휴게실 온도가 떨어지고 퇴근시간이 다가온다. 그리고 우리는 병원으로 퇴근한다.

이런 하루하루 보내며 모두들 방학만 기다리고 있다. 방학이 되면 그동안 미처 치료하지 못한 근골격계 질병을 치료하고, 체력도 회복하고 다시 개학을 맞는다. 방학이면 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이제는 근속 연수가 늘어갈수록 방학에 치료해도 질환들이 낫지 않게 되고 이제는 개학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6년째지만 방학이면 통화하는 나의 부모형제들은 방학이라 일도 안하는데 월급 나와서 좋겠다는 말을 아직도 하고 있다. 매번 아니라고 12번쯤 말했지만 급식실 밖의 사람들에게는 나는 그저 부러운 학교근무자이다.

난 그래도 감사했다. 내가 일할 수 있고, 내 수입으로 가정이 좀 더 여유로워지고, 내가 잘하는 일도 할 수 있고, 이 나라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내 정성을 전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내 몸이 망가져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지만 아이들의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스테로이드계 약보다 더 센 처방이 있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들이 반복되고 그에 따른 대처를 보고 나니 난 나의 생각처럼 정성을 다하지도, 마음을 다해서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는 그저 급식을 위한 도구인데. 도구가 무슨 정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나? 내가 생각했던 사명감 따위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기에 깨끗하고 안전하고 위생적이지만 그걸 만들기 위해서 땀범벅이 되는 우리들은 산업 현장보다 더 치열하게 작업하고 있는데, 교육기관들은 그저 사고가 안 나면 전혀 살펴보려 하지 않는다.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우리들이 하는 그 많은 치열한 행동들이 결국 다 질병으로 오고 있는데 말이다. 부디 안타까운 일련의 사고들로 휴게실 환경이 개선되고 작업 환경들이 개선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가 급식을 위한 도구들이 아니라, 안전하고 즐겁게 엄마의 정성으로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더라도 그 앞에 기쁘게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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