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명숙의 인권프리즘] 탄소제로를 위해 숲을 없앤다고?

- 기후위기와 기후계급 그리고 기후정의

  • 기사입력 2021.11.19 10:36
  • 최종수정 2021.11.19 10:37
  • 기자명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명숙의 인권프리즘
명숙의 인권프리즘

오랜만에 지리산 근처의 구례로 워크숍을 가서 눈 앞에 펼쳐진 겹겹이 펼쳐진 산맥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산 정상 몇 군데에 한쪽이 마치 짧게 머리를 밀어버린 듯했다. 개발하려고 산을 밀어버린 민둥산도 아닌 낮은 나무들이 즐비한 것이 아닌가. 산 정상이라 건물을 세우기도 적당한 위치도 아니어서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저건 뭐지? 왜 한쪽은 나무가 작지? 불이 났었나?” 어찌 된 일인지 함께 간 동료에게 물었다. 불이 났다고 하기에는 반쪽만 반듯하게 작은 나무들로 있어서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색해 보였다.

“제가 사는 동네에도 저렇게 되어있어요. 정부가 탄소중립 한다고 오래된 나무를 베어서 어린나무를 심고 있어요.”

범인은 산림청이었다. 산림청은 국립산림과학원의 ‘주요 산림 수종의 표준 탄소흡수량’ 자료를 근거로 온실가스 흡수량이 높은 어린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을 냈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의 최대흡수원은 바다와 숲이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탄소 흡수원을 늘려서 대기 중 탄소순배출량을 0에 도달하게 하는 것인데, 숲을 없앤다는 건 비상식적이다. 산림청의 자료에 따르면, 1970~80년대 많이 심어진 잣나무의 1㏊ 당 연간 온실가스 흡수량은 20살이 됐을 때 1 최고치이고 그 후엔 줄어 70살이 되면 최고치의 절반에 그친다.

그러나 이는 개별 나무에 대한 조사일 뿐이지 오래된 나무들이 모여 이룬 숲의 기능, 탄소흡수기능에 대한 것은 제외했으니 과학적 근거라고 보기 어렵다. 2008년 유명 과학저널 <네이처>에는 숲은 800살이 될 때까지도 이산화탄소 순흡수원으로 기능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진짜 탄소흡수가 목적이라면 스스로 자연림으로 대체돼 가고 있는 숲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미국도 비슷한 사업을 하려다 환경단체의 비판으로 기만적인 탄소중립정책을 멈춘 상태다. 오래된 나무를 없애고 어린나무 심는다는 것은 그린피스의 지적처럼 기후위기를 틈타 “벌목 산업을 보호하려는 그린워싱(greenwashing)에 불과”할 뿐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벌목업자들의 배를 채우는 계획일 뿐이다.

기후위기는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이 떠안고

기만적인 탄소중립정책은 산림청만의 문제도 아니고 한국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1.5도 온도상승이 임박했음에도 어제로 끝난 ‘26차 유엔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 (COP26)’의 결과는 매우 절망적이다. 각국이 얼마큼 탄소를 줄일지를 정하는 첫 회의였으나 원래 계획하던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퇴출은 단계적 감축으로 바뀌었다. 또한 개발도상국들의 기후위기 피해를 돕기 위해 부자 나라들이 1,000억 달러(약 118조 원) 기금을 마련도 미뤄졌다. 파리기후협정 이행 규칙을 6년 만에 합의했을 뿐이다.

사실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의 책임 상당 부분은 부자 나라에 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숲을 훼손한 것은 도시개발과 상품생산의 산업화 과정을 주도한 경제 대국들에 있다. 탄소배출은 미국, 중국, 러시아가 가장 크며 한국도 기후 악당이라고 불릴 만큼 탄소배출량 7위다. 한국은 현재까지 북유럽 5개국과 포르투갈의 누적배출량을 합친 것과 비슷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탄소중립정책은 소극적이다. 한국정부의 목적은 온실가스감축이라기보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경제의 지속성장과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가의 명운을 걸고 탄소중립에 나서겠다며, 기업 혼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힌 것에서도 드러난다.

문제는 기후위기의 피해가 가난한 나라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이다. 투발루나 몰디브 등 남반구의 섬나라는 삶터가 사라지고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는 10년 안에 해수면이 상승해 가라앉을 것으로 예측되는 등 직접적인 위험은 남반구의 국가에 집중돼 있다. 상습 침수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나 도시가 아닌 농촌이나 산림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산불로 삶터와 건강을 잃고 있다. 온도상승으로 인한 산불 등의 위험도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커피나 감자, 사과 등이 사라질 위기에 처함으로써 농민들의 삶도 위험에 처해 있다.

그뿐만 아니다. 쪽방 등에 사는 홈리스나 가난한 주민, 비닐하우스에 사는 이주노동자,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농어촌, 건설노동자 등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온도변화에 대처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후위기는 기후계급의 문제라고 일컬어진다. 무한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체제는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체제전환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는 인권의 문제

유엔빈곤과 인권특별보고관이 말했듯이, 기후위기는 아파르헤이트정책처럼 부자는 돈으로 위기를 탈출하고 빈자는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아 인권침해를 겪는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기후위기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생명권의 문제이다. 2018년 자유권위원회는 일반논평 36호에 생명권에 대한 해석에 기후변화가 포함된 이유다. “62. 환경악화, 기후변화, 지속불가능한 개발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생명권 향유 능력을 위협하는 가장 시급하고 심각한 위협에 속한다…. 생명권 존중 및 보장, 특히 존엄성 있는 삶에 대한 의무의 이행은 공공 및 민간 주체가 초래한 피해, 오염, 기후변화로부터 환경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 당사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느냐에 달려있다”라고 명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일자리 축소만이 아니라 기업이 친환경에너지로 전환을 핑계로 노동자들을 구조조정을 하기에 위험은 노동자들에게만 전가되는 꼴이다. 한국은 석탄산업을 줄이기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은 없이 탄소중립정책을 빌미로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에만 목매고 있다.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 되려면 당사자인 노동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며, 고용형태와 산업 분야, 임금체계 등 노동자들이 이해를 반영한 정책이 반영되어야 한다. 한국의 발전노동자들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공공재생에너지발전’을 요구하고 즉각적인 ‘선고용 후교육’ 실시를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그렇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또 기후정의가 아닌 지배계급의 위기 탈출이 되는 기후 불평등과 기후재앙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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