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오진호의 88.2%]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황당한 근로복지공단, 방치된 프리랜서

  • 기사입력 2021.12.13 15:18
  • 기자명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
오진호의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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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정말 책임감이 없나 봐요. 2*살이면 적은 나이도 아닌데 결국 이 모든 것을 부모님 탓만 하게 됩니다… 엄마! 내 첫사랑 다음이라고 서운해 하지는 말아. 내가 다시 엄마 딸로 태어나서 어느 것 하나 안 부러운 딸이 될게 맹세!!” (경기보조원(캐디) 배씨가 남긴 유서 중 일부)

2013년부터 캐디 업무를 해온 배씨는 2019년 7월, 경기도 파주의 골프장에 입사했다. 100여 명의 캐디를 지휘하는 캡틴이 배씨를 괴롭혔다. 무전으로 배씨에게 “느리다, 뛰어라”,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니가 코스 다 말아 먹었다” 등 공개적으로 모욕과 망신을 주었고, 업무를 마치고 따로 불러 질책을 했다. 배씨가 해명하면 “어디서 말대답이냐”고 호통을 쳤으며 “부모가 그 모양이니 너도 그 모양이지.”, “야 너 살 뺀다면서 그렇게 밥 먹냐, 그렇게 먹으니깐 살찌는 거야”라는 등 가족을 비하하고, 외모를 비하했다.

“자존감이라는 게 왜 존재하는 걸까. 캡틴은 내가 상처받는 거에 대해 생각 안 하고, 나만 보면 물어뜯으려고 안달인 거 같아.” (2020년 8월 16일, 배씨 일기에 적힌 글)

8월 23일, 8월 27일, 두 차례에 걸쳐 자살 시도를 한 배씨는 8월 28일 경기 일정을 통보받는 다음 카페에 “출근해서 제발 사람들 괴롭히지 마세요. 그리고 같은 상황에서 무전도 차별화해서 하지마요. … 그리고 이렇게 저를 밑바닥까지 망가뜨려주신 건 끝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올렸다. 글은 20분 만에 삭제되고, 배씨는 강퇴 당했다. 경기 일정을 통보받을 수 없으니 사실상 해고였다. 골프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된 배씨는 기숙사에서 짐을 싸서 친구에게 가기로 했다. 혼자 짐을 싸고 있던 배씨에게 캡틴이 찾아왔다. 두 사람의 대화 이후 배씨는 친구에게 혼자 가겠다고 통보했다. 9월 14일 20시 25분. 마지막 연락이었다. 배씨는 모텔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경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심의위원 7인의 만장일치로 “고인은 입사 이후 행해진 직장 내 괴롭힘과 원치 않았던 사직으로 인한 정신적 압박감, 부당 등의 업무적 요인이 고인의 사망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어 고인의 사망원인(자살)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고 결정했다. 이렇게 고인의 억울함과 유족의 서러움이 조금은 풀릴 줄 알았건만. 근로복지공단이 제동을 걸었다. 

2021년 12월 8일 근로복지공단 고양지사는 공문을 보내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거부했다. 공단이 보낸 공문에는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제출된 다음날부터 고인을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보기 어려움.”이라 적혀 있다. 고인을 비롯한 캐디들이 회사의 강요로 쓴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 때문에 ‘근로자’가 아니고, ‘근로자’가 아니니까 산재를 당해도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단은 고인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초적인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산재는 맞지만 산재보상은 안 된다”는 황당한 논리, 근로계약의 실질을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근로자성 판단’을 위한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않는 소극행정. 이런 정부의 방관속에 ’불법 프리랜서‘가 판을 친다. 캐디, 학원강사, 미용사, 네일아티스트, 헬스강사, 생산직… 불법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횡행한다. 

[사례] 네일샵에서 직원으로 일하다 사장이 손님 컴플레인을 핑계로 부당해고를 했습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했고, 월급은 7~80만원을 받았고, 인센티브가 생기면 100만원 조금 넘었습니다. 식대는 없었습니다.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신고할 수 있나요? 해고예고 수당도 받을 수 없나요? 사업주에게 요구했지만 네일업계 관행이라고 했습니다. (2021년 9월) 

[사례]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데 아웃소싱 회사 소속입니다.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4대 보험도 안 떼고 3.3% 사업소득세를 떼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월급이 100만원 정도 줄어들어서 아웃소싱 회사에 물어봤더니 52시간제 때문에 급여계산 방식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뭔가 이상한데,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건가요? (2021년 9월) 

최저임금법, 근로기준법, 4대보험이라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도 보장받지 못하는 프리랜서는 코로나19 고용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기도 하다. 2021년 9월 직장갑질119가 전문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코로나19와 직장생활의 변화』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득이 줄었다‘고 응답한 ’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64.2%)는 직장인 평균(32.2%)의 2배에 달했다. 실직경험 역시 ’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26.4%)가 직장인 평균(16.9%)에 비해 10% 높았다. 

배씨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 고양지사의 직무유기 결정에 불복해 공단 본부를 상대로 심사청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함께 사용자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노동부와 공단이 적극적으로 근로자성을 판단했다면  돌아가지 않았을 길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또 다른 배씨가 고통받고 있을지 모른다. 정부와 정치가 외면하는 만큼, 성문 밖 노동자들은 더 멀리 떠밀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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