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홍석만의 Not Today]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후퇴했는가?

  • 기사입력 2021.12.14 12:13
  • 기자명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원
홍석만의 Not Today.
홍석만의 Not Today.

공급망 조정과 국가개입 확대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인 Ford와 GM이 반도체 칩을 직접 생산한다는 소식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에 지배적이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역전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후 위기가 과도하게 확장된 글로벌 공급망을 강타하고 반도체 칩과 같은 중요 원자재의 재고가 부족해짐에 따라 글로벌 가치사슬(GVC)이 아니라 기업 내에서 생산을 통합해야 할 이유가 더 명확해졌다.

외부 충격과 업계 내 치열한 경쟁이 결합하여 이들 거대 기업은 지원을 위해 국가 정부와 더 가까워지고 있다. 화웨이와 중국의 하이테크 기업에 대한 미국의 공격적인 움직임은 국가 안보 문제로 제기했지만, 미국 기업의 시장 지위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인식된다. 미국은 반도체 부족을 막기 위해서라며 미국 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삼성과 같은 해외기업 포함)에 재고와 주문, 판매 등에 관한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사실상 반도체 생산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겠다는 방침인데,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동원해 기업의 정보 제출을 강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처럼 자유 무역과 글로벌 가치사슬 등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지난 2년 동안 보아온 종류의 충격에 노출된 글로벌 환경에 적합하지 않다. 주요 제조업체는 공급 확보에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점점 더 의존하고 있고, 미국이나 중국 등 경쟁국에서도 반도체 패권을 두고 경쟁하면서 자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직접 지원을 늘리고 있다. 미국 정부는 520억 달러(60조 원) 반도체 산업 지원계획을 제출했고, 중국도 2025년까지 1조 위안(170조 원)의 반도체 투자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2030년까지 글로벌 생산에서 EU점유율 20% 달성을 목표로 EU의 경제회복기금(Recovery and Resilience Facility) 중 2~3년간 1450억 유로(195조 원)의 반도체 투자계획을 내놨다. 한국도 지난 5월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이 ‘K-반도체 전략 보고대회’를 열고 2030년까지 510조 원 이상을 투자하고, 정부는 파격적인 지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지난 2년 동안의 충격(코로나19, 비축 및 전략적 구매, 기후 위기)은 앞으로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커 정부의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

신자유주의 후퇴, 국가의 귀환?

반도체뿐 아니라 코로나19와 기후 위기 대응에서 국가의 전반적인 산업개입, 시장개입이 확대하면서 소위 ‘국가의 귀환’ 또는 ‘케인스주의의 복귀’를 얘기하기도 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국가개입은 특히 미국 오바마 민주당 정부로의 교체와 맞물려 언론에서도, 학계에서도 케인스주의의 복귀로 이해되거나 그럴 것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어져 온 조치이지만) 바이든 민주당 정부로의 정권교체와 함께 국가의 시장개입이 확대하자 케인스주의의 복귀, 국가의 귀환이 다시 얘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내외 수준에서 노동 착취도 강화와 금융 수탈은 물론이고 민영화와 같은 국민적 자원에 대한 수탈을 통해서 독점자본과 금융자본의 이윤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에 그만큼 반동적인 성격이 컸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1990년대 후반 이래로 지속적인 저항에 부닥쳐 왔고, 노동 유연화의 확대로 각국 노동자들의 저항도 거세게 일어났다. 금융위기 이후로는 월스트리트 점령운동과 같이 세계적인 수준에서 신자유주의 금융화, 금융자본에 대한 반대도 물결을 이룬 가운데, 국민들의 생존을 위협한 민영화 반대투쟁도 지구 곳곳에서 조직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저항과 여러 경제적 사회적 위기 속에서도 세계 경제질서의 주류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자본의 새로운 축적조건을 마련하기보다는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산업 순환의 고리와 파고가 상대적으로 약했고, 중국 등 신흥국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생산성도 지속해서 감소했다. 그 결과 전반적인 생산성 하락을 반전시키지 못했고, 금융팽창을 통해 부채 주도 성장만을 구가한 채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사실상 파산을 선고했다. 또한 현재의 공급망 조정, 자유무역의 퇴조와 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후퇴하면서 신자유주의의 사망 선고가 내려진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고 부활했는데, 그것도 다름 아닌 국가에 의해서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서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의 대응은 거의 동일했다. 중앙정부의 재정투입과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및 유동성 공급으로 거시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촉진하면서 유가증권 매입 및 보증 등으로 기업의 자금조달을 돕고 금융시장의 붕괴를 예방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 주식을 인수해 국유화하거나(2008년 금융위기), 국유화는 아니지만, 그에 버금가는 구제 금융을 지원했다(코로나19 위기).

이는 한편에서 주기적 과잉공황에 대처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금융위기에 직면한 금융자본을 회생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국가개입 프로그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케인스주의와는 별로 관계가 없고, 사실상 신자유주의 재건 프로그램이었다. 케인스주의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재정 확대와 경기 부양 정도인데, 이것은 소득재분배와 사회보장이 없거나 일시적인 형태의 경기 부양, 신자유주의 정부의 위기관리 성격이 다분히 강한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퇴조와 국가의 귀환’과 같은 오해는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의 역할을 오해하거나 보지 못한 문제가 크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국가와 대척점에 있는 시장 자유주의로 오해했거나 그렇게 평가되길 의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산업경제에 국가가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것은 시장 자유주의 즉, 신자유주의에서 국가주의 또는 케인스주의로의 회귀가 되는 것이고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위기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전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시장 자유주의가 아니다. 특히 국가의 역할에 있어 정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재정지출을 줄여 시장과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작은 정부론’은 일종의 허구일 뿐이다.

초국적 자본과 글로벌 정치의 결합

1990년대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국가 차원의 규제 완화가 확대됐고 그 속에서 기업의 역할과 비중이 증대되었다. 2000년부터는 유엔의 글로벌 콤팩트(UN Global Compact)가 시행됐다. 글로벌 콤팩트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관장하는 국제사무소이지만 국제적, 국가적 사업에 각국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을 참여 주체로 격상시킨 역할을 했다. 부분적으로는 세계기구에서 각국 정부의 이탈이 발생하면서 재정이 악화한 측면이 있고, 세계 시장이 금융화된 상황에서 국가별 재정지원이나 차관보다도 민간 금융을 끌어와야 했기 때문에 글로벌 콤팩트는 더 절실했다.

방대한 자본과 네트워킹 능력을 갖추고, 자선자본가들은 종종 그들이 선택한 문제들에 대해 정책 결정에서 특출한 역할을 맡는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정부들과 국제기관들은 이들의 ‘정책 참여’를 수용했다. 이에 따른 ‘거버넌스(민관협력)’는 자금 투입뿐만 아니라 국가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아웃소싱 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을 제공해 주었다. 이를 통해 초국적 자본의 후원을 받는 세계적인 규모의 민간기관, 세계 독점자본가들의 연례 협의체인 다보스 포럼, 게이츠 재단과 같이 재벌들이 만든 재단과 거대 투자은행 등 민간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기관들이 각국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참여 주체로서 올라설 수 있었다.

무역협정에서 악명 높은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ISDS)가 가능하게 된 이유도 기업이 국가와 동렬의 주체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도는 해외 투자자에 대해 국가가 투자협정상 의무를 위반하여 투자자가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해당 국가의 국내법원이 아닌 국가를 상대로 직접 국제기관에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해당 국가의 영토와 주권행사 지역 내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국가 주권의 우위성이 부정당하고 해외 투자자인 초국적 자본 또는 기업이 해당 국가의 주권기관과 같다고 보기 때문에 가능해진 제도다.

이처럼 초국적 기업과 이 기업들의 후원을 받는 재단 등 민간기관들, 또 이 재단의 후원을 받는 시민단체와 연구소들도 각국의 주권기관과 같은 위치로 글로벌 거버넌스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들은 사회적 문제 해결의 실질적 주체로 부상해 국가를 대신해 국제기구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에 통합되기 시작했다. 이는 초국적 기업 또는 초 부자인 재벌이 각국의 주권 영역을 침범하고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글로벌 수준에서 벌어지는 ‘쿠데타’ 또는 ‘국정농단’이지만 국제적으로는 ‘거버넌스’의 확대로 받아들여졌다.

초국적 자본인 자선자본가들은 일반 국민이나 심지어 자산들의 기부자들에게조차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국가나 공공기관과는 달리 어떤 사회적 견제, 감시, 통제, 조정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고 사후적인 책임도 지지 않았다. 국가 간 연합체인 세계보건기구(WHO)와 동렬 또는 우위에 서서 민간 자선단체인 게이츠 재단이 주도하는 민관협력기구들은 초국적 제약 자본을 대신해 전염병 예방, 치료, 백신 개발에 더 큰 목소리를 내고 결정력을 행사해 왔다.

백신 공급과 관련하여 초국적 제약자본인 화이자가 개별 국가의 권한을 초월한 각종 갑질 계약을 맺어 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 중에는 특히 선진국인 영국 정부가 화이자와 백신 계약을 체결하며 비밀 유지 조항에 합의했으며, 이 탓에 앞으로 발생할 모든 중재 절차는 비밀에 부쳐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영국 정부가 국내법 절차를 우회할 수 있는 비밀 중재 절차에 동의함으로써 화이자는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사실상 면책 특권을 얻은 셈이다. 이처럼 초국적 자본인 화이자는 개도국이나 신흥국 정부만이 아니라 선진국 정부까지도 쥐락펴락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한편, 최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참석한 대표단 가운데 화석연료 산업 이해관계자가 503명으로 어떤 정부의 대표단보다도 규모가 컸다. 국가 대표단 중 가장 규모가 큰 브라질(479명)보다도 많고 개최국인 영국 대표단(230명)의 두 배가 넘는 규모였다. 화석연료 업계 관계자 503명은 지난 20년 동안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8개 국가(푸에르토리코·미얀마·아이티·필리핀·모잠비크·바하마·방글라데시·파키스탄) 대표단의 총합보다 많은 숫자다. 이는 국제 기후정치의 세력관계가 어떻게 편성되고 누구에 의해 주도되는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신자유주의 생산의 세계화는 글로벌 공급망 체인을 넘어서 글로벌 정치에 직접 개입하고 결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속에서 글로벌 공급망은 지역적, 환경적, 정치적 요인으로 조정되는 것일 뿐이며, 생산의 세계화가 지향하는 본래 의미가 후퇴한 것이 아니다. 공급망 조정이 국가의 귀환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재건의 일환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공급망 조정이 현재 국가 주도 아래에 국가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지만 명백히 독점자본의 생산을 보호하고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정치와 관련하여 초국적 독점자본의 이해가 보다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공급망 조정의 국제적 성격 또한 이것과 결합하여 나타나고 있다. 즉, 국가 주도로 공급망이 조정되는 이면에는 이런 초국적 독점자본의 글로벌 정치로의 결합이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국면 변화가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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