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나, 성소수자 노동자] ① 저는 공공기관에서 노동하는 레즈비언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연속기고 ①

  • 기사입력 2021.12.20 13:36
  • 최종수정 2022.02.15 13:18
  • 기자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어디에나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당연히 다양한 일터에도 성소수자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성소수자 동료가 있는지 묻는다면 대부분 없다고 답할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가 혐오와 차별을 피해 일터에선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은 막연한 상상 속에 가려진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생생한 언어로 기록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 기고는 현재를 살아가는 성소수자 노동자의 삶을 드러내기 위해 기획됐고, <노동과세계>에 게재됩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현장을 바꾸고서야 비로서 나의 삶이 바뀌었듯, 모두를 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동자가 함께 나서야 일터도, 우리의 삶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번 기고를 통해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 곁에 함께하는 동료가 많아지길 희망합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나, 성소수자 노동자
나, 성소수자 노동자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팀

 

순간 1: 일터에 입장하기

“원래 치마를 잘 안 입어요. 치마를 입자니 어색해서 떨어질 것같고,

바지를 입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든 게 이상했죠”

Yz는 40대 레즈비언이자 노동자다. 다양한 회사에 근무하다 몇차례 이직 후 현재 이른바 ‘와꾸’가 짜여진 공공기관의 정규직 신분으로 노동하고 있다.

인터넷에 여성 면접 복장이라고 검색하면 대부분 치마 정장이 나온다. 여성이 바지를 입으면 드세보여 면접관이 선호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바지 정장에 손이 가지 않는다. 짧은 머리로 갔더니 면접관이 자신을 보는 눈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글을 보면 괜스레 나의 짧은 머리가 자꾸 신경쓰인다. 거기다 기초 화장은 예의라는 말도 있다.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고민을 말하면 ‘그래서 처음부터 작은 기업에 취직하기로 마음 먹었다’ 는 사람과 ‘큰 회사에 취업하려면 그 정도는 맞춰줘야 한다’ 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결국 치마 정장을 택하고 머리를 조금이라도 기르고 간단한 화장을 하고 면접장에 들어간다.

“제가 지금의 회사에 서른살 즈음에 면접을 봤어요. 그때 예상 질문에 결혼에 대한 내용이 있었어요. 왜 결혼 안했냐고 물어보는데 할 예정이라고 대답하면 결혼, 임신, 육아로 호감도가 떨어질 것 같고. 그렇다고 안한다고 말하기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어보는데 있다고 하면 곧 결혼할 것 같고. 없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시작부터 이상했어요”

면접은 쉽지 않다. 면접장에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남자친구 유무 - 결혼 계획 - 임신 - 육아’에 관한 질문 굴레에 빠진다. 2019년 7월부터 채용절차법 시행으로 면접 시 직무수행과 무관한 개인정보 요구가 금지됐고 이를 위반하면 최대 500만원 과태료까지 나오지만 법은 멀고 빻은 사람은 가깝다. 내가 성소수자라 ‘남자친구 유무 - 결혼 계획 - 임신 - 육아’ 와 상관없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기업 5곳 중 1곳은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이유가 조직 적응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들에게 ‘남자친구 유무 - 결혼 계획 - 임신 - 육아’ 와 상관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성의 조직 적응력은 어떻게 판단되어질까?


순간 2: 일터에 융화되기

“한동안 드라마 <부부의 세계> 이야기만 했어요”

매일 얼굴을 본다고 친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대화를 할 시간이 생기면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대화 주제가 필요하다. 이번엔 ‘청약 - 육아 - 부동산 - 주식 ’ 이라는 굴레가 나를 맞이한다. 최근엔 ‘가상 화폐’ 도 추가되었다. 1인 가구인 나에게 청약 당첨은 머나먼 이야기지만 동료들은 아니다. 신혼부부 청약이 있다. 이번에 발표된 3기 신도시만 보더라도 신혼부부 공급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성소수자에게 육아는 먼 이야기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대화에 참여하지만 대화에서 겉도는 순간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야 여자친구를 남자친구로 가짜로 만들어도 보고, 가짜 남자친구를 군대도 보내고 유학도 보냈어요. 근데 이젠 그렇게 말하기도 뭣하잖아요. 차라리 이혼했다 그럴까 싶어요.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결혼 안하냐는 라는 말도 나와요”

Yz는 40대가 된 지금도 언제 국수 먹여줄거냐는 농담 섞인 질문을 듣는다.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한국에서 성소수자 여성은 비혼 여성으로 비춰진다. 일부 동료는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태도로 대한다. ‘너무 늦게 결혼해서 아기를 낳으면 힘들다’, ‘여성으로서의 가장 큰 행복은 출산인데 아기를 낳지 않으면 아쉽지 않을까?’, ‘요즘 젊은 여자들이 결혼을 하지 않아서 출생률이 낮다’, ‘나중에 나이 먹어서 어떻게 살려고 결혼을 안하냐’는 말까지 여러 갈래의 말을 들어야 한다. 자리를 피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업무라는 게 참 그렇다. 일터에서 노동하다 보면 사적인 이야기와 공적인 이야기가 섞여 있다. 실컷 결혼이나 청약 이야기를 하다가 불쑥 업무가 논의된다. 이번에 진행되는 프로젝트를 A 스타일로 진행하자고 본인들끼리 정하면 끝이다. 몇 명의 직원이 A 스타일로 진행하면 나도 눈치껏 A 스타일로 진행해야 한다. 혼자만 모르고 엉뚱한 스타일로 진행하면 좋지 못한 평가를 받거나 나중에 다시 처리해야 한다. 일을 두 배로 하게 되는 셈이다. 즉, 사람들과 일상적인 소통을 하지 않으면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

2021.05.13.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 토론회에서 ‘평등한 일터를 만드는 노동 운동의 아이디어: 노동조합의 경험과 과제’ 를 주제로 발제한 민주노총 활동가들의 모습. ⓒ 조연주 기자
2021.05.13.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 연속 토론회에서 ‘평등한 일터를 만드는 노동 운동의 아이디어: 노동조합의 경험과 과제’ 를 주제로 발제한 민주노총 활동가들의 모습. ⓒ 조연주 기자

 

순간 3: 일터에 소수자로 존재하기

“조금이라도 소수성이 발휘되면 내가 불편하죠”

가족 수당, 직원 가족 건강검진 지원, 신혼여행 휴가, 자녀 학자금 지원, 가족 돌봄 휴가 등 일터에서 지원하는 대부분의 복지는 이성애 가족을 기반으로 설계된다. 입사 초기엔 한달에 몇만원이니 신경쓰지말자고 생각하지만 오래 근무할수록 점점 격차가 커진다. 저번에도 해당없고 이번에도 해당없는 복지를 보며 살짝 화가 난다. 한국에서 성소수자 노동자에게 대다수의 복지는 남의 이야기다.

파트너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피부로 와닿는다. 서로의 가족에게 관계를 인정받는 사이여도 서류엔 아무 흔적이 없다. 내 옆자리에 앉은 동료는 남편의 가족이 상을 당하면 경조 휴가를 받겠지만 성소수자 노동자는 최악의 경우엔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해서 장례식장에 가고 다음날 출근해야 한다. 파트너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도 당일에 연차내기 어려운 분위기의 회사에서 근무하면 연차 신청 사유를 뭐라고 말할지 수십번 고민하다 결국 말조차 꺼내기 어렵다. 위태로운 상황에서 나와 파트너는 회사나 관리자의 선의에 기대야만 서로를 챙겨줄 수 있는 관계가 된다.

 


 

그나마 나의 언덕, 노동조합

Yz가 근무하는 회사엔 노동조합이 있다. 소수자를 위한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Yz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대변할 유일한 창구라는 표현을 썼다. 실제로 회사에서 어려움을 겪었을때, 회사 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이 성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묻는 질문에  Yz는 이렇게 답한다. 

“노조가 익명성에 기대 신고를 받는 정도만 가지고는 절대 안될 것 같아요. 익명 게시판은 모두에게 열려있기 때문에 혐오와 차별을 고발하기도 하지만, 혐오를 조장하기도 하니까요. 노동조합이 소수자 편에 있다는 적극적 행동을 계속 보여줘야 할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소수자 관련된 강의를 연다든지, 소수자 당사자를 불러서 강의하게 하든지, 그런 것부터 우린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계속 보여줘야 될 것 같고. (중략) 특히 소수자. 내가 커밍아웃이 불가능한 사람. 어떤 장애든 소수성이든. 어떻게 들어야 될지 되게 진짜 면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야기할 수가 없어. 이 안에 소수자가 있다라는 걸 분명히 하는 정책과 제도를 수립하지 않으면 노조의 문은 두드리기가 어렵잖아요”

2020년 7월,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의 도움으로 수많은 지하철 역사 내에 차별금지법 국민청원 참여 촉구를 지지하는 현수막을 붙였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다. 혐오세력이 현수막 설치를 반대한다며 훼손하거나 항의 전화를 쏟아냈다. 직접적으로 폭언을 들은 노동자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에 감사한 것은 혐오세력에 맞서 끝까지 버텨주었다. 덕분에 마지막 날까지 현수막을 지킬 수 있었다. 아마도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은 구성원들을 다독이고, 왜 이런 활동을 해야하는지 설명하느라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이렇게 소수자와 연대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용자의 항의로 조합원이 곤란해지거나 혹은 내부에서 설전이 오가기도 한다. 혹은 잘 모르기 때문에 액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시시때때로 살펴보고 일상적으로 액션을 해야 한다. Yz 의 제안처럼 성평등 워크샵이나 소수자 관련된 강의를 여는 등 노동조합과 소수자의 접점을 넓히는 활동을 통해 노동 운동이 지향해야 되는 가치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노동운동은 동료의 손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결국은 우리가 바꾼다. 우리 함께 불평등 세상을 바꾸기 위해 끝까지 손을 잡자!

모두의 민주노총
모두의 민주노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