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쌈닭으로 살고 싶은 여자가 과연 있을까?

  • 기사입력 2022.01.11 15:49
  • 최종수정 2022.02.07 13:25
  • 기자명 명인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필자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강의가 끝나고 보니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모르는 번호라서 무심히 지나쳤는데, 다음 날 전화기에 같은 번호가 떴다. 택배기사였다. 우리 집을 못 찾고 계시단다. 내가 찾기 쉽도록 설명하는데, 그 택배기사는 10초도 듣지 않고 “씨×”을 연발하더니 전화를 툭 끊었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걸었다. 내가 다시 들은 건 육두문자뿐. 설명을 들으면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듣지 않고 연신 쌍욕만 해대면서 우리 마을을 뱅뱅 돌고 있다는 그는 전화를 또 끊어버린다. 나는 마을길에 나가서 기다리면서 다시 전화했는데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고 택배 차는 끝내 나를 보지 못하고 지나쳐갔다. 계속 전화했더니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그는 대뜸 “씨×년, 바쁘니까 나와서 받으라니까~” 해놓고 정작 나를 보지 못했다. 다시 나를 지나치려는 차를 나는 간신히 붙잡았다. 차창을 열더니 어제는 왜 전화를 안 받았냐고 소리를 지르며 택배 박스를 차창 밖으로 내던지는 택배기사. 커다란 박스가 트럭에서 땅바닥으로 메다꽂혔다. 그쯤 되자 나도 언성이 높아졌다. 더 심한 욕이 날아왔다. 나는 내려서 얘기하시라며 차문을 붙잡았다. 그는 나를 거칠게 떨쳐내고 엑셀을 밟았다.

그런데 내 앞에 흙먼지만 남기고 떠난 차가 얼마 못 가서 갑자기 멈춰 섰다. 밭에서 일하다 소란을 듣고 나온 옆지기가 차를 막아 선 것이다. 결국 택배기사는 차에서 내렸다. 옆지기는 언성조차 높이지 않았다. 단지 단호한 목소리로 “사과하세요.”라고 말했을 뿐이다. 내게는 입만 열면 '씨×년'이라던 사람이 남자가 나타나자 태도가 달라졌다. 옆지기의 눈치를 보며 그가 말했다. “내가 요즘 옆에서 누가 차를 치어 긁고 지나가도 시비할 시간이 없단 말이오. 억울해도 그냥 내 차 망가뜨리고 말 처지란 말이오. 그러니 이해해주쇼. 미안합니다.” 그는 나에게가 아니라 옆지기에게 사과를 했고, 옆지기는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하고는 그를 보냈다. 그는 서둘러 차에 올랐고, 도망치듯 차를 몰아 떠나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여자에겐 남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남편 있는 여자라고 옆지기가 짠하고 나타나서 택배 기사의 사과를 받아냈으니 내가 당한 폭력은 폭력이 아니게 될까? 내가 받은 모욕은 조금이라도 줄어든 걸까? 피해자는 난데 그는 왜 내가 아니라 옆지기에게 사과를 했을까? 그런데도 그 상황에 대한 종료 선언은 왜 옆지기가 한 걸까? 어쩌면 내가 당할 수도 있었을 더 심한 폭력을 겪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옆지기가 나타난 덕이겠지만, 그러므로 나는 옆지기에게 고마워 해야할까? 그리고 나는 365일 언제나 옆지기를 대동하고 다녀야할까?

모든 택배기사가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런 일을 수시로 겪으며 산다. 때로는 길을 걷다가 느닷없는 폭력을 당하고, 때로는 택시를 탔다가 어이없는 모욕을 당한다. 직장에서 일하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당한다. 도로에서 접촉사고라도 났을 땐 운전자가 여자면 상대 차 운전자의 태도가 돌변한다. 여성운전자는 도로교통법에 무지할 거라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많고, 자기 과실인데 적반하장인 사람도 많다. 그래서 남자의 등 뒤에 숨어 살고 싶지 않은 여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쌈닭이 되곤 한다. 매사에 겪을지도 모를 부당한 상황에 대비하여 전투태세를 갖추고 산다는 것은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가장 고단하면서도 슬픈 일이다. 그런 여성들 앞에, 어떤 날은 연인에게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혹은 남편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살해된 여성들이, 아니 때로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살해된 여성이 ‘묻지마 살인’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뉴스로 날아와 박힌다.

그런 뉴스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겐 어떤 느낌일까? 혹시 당신도 이런 폭력을 자주 겪으며 살까? 그런데도 당신은 늘 대체로 온화한 표정과 말투로 살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너무 강퍅해진 것은 아닌가 문득 반성이 될 때, 나는 함께 좋은 세상을 만들자면서 페미니스트들을 불편해 하는 ‘남성 동지’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과연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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