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기고]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사는 얼마나 변했나?

  • 기사입력 2022.01.27 12:08
  • 최종수정 2022.01.27 13:10
  • 기자명 선지현 비정규직없는충북만들기운동본부 공동대표
이재학피디 유족과 대책위가 17일 CJB청주방송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반복되는 합의 파기와 반성없는 청주방송의 결단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고 이재학피디의 투쟁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전방위적인 청주방송 압박투쟁을 결의했다. ⓒ 신희영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이재학피디 유족과 대책위가 17일 CJB청주방송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반복되는 합의 파기와 반성없는 청주방송의 결단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고 이재학피디의 투쟁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것”이라며 전방위적인 청주방송 압박투쟁을 결의했다. ⓒ 신희영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오는 2월 4일은 CJB청주방송 이재학피디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되는 날이다.

14년 동안 일했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부당하게 해고된 그는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했지만 사측의 방해와 재판부의 잘못된 판결로 패소했다. ‘너무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이재학 피디의 분노와 좌절은 남겨진 자들에게 오롯이 전해졌고, 다시는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간절함이 모여 싸움이 시작됐다.

싸움은 CJB청주방송국 앞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었다. 대전, 전주, 서울, 광주, 대구 등 지역 곳곳에서 방송사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년이 지난 지금, 방송사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비정규직 백화점에 균열을 가하는 변화들

이재학피디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방송사 비정규직의 노동환경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고 해법을 찾 아야 한다는 여론이 만들어졌고, 고용실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드러난 방송사 노동실태는 충격적이었다. 비정규직 사용은 작가, PD, 아나운서, 시설관리 등 모든 직종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프리랜서, 파견과 용역, 기간제 등 고용 형태도 다양했다. 채용과 해고 가 각 부서별로 이뤄지고 있어 그 규모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았다. 관행으로 치부되는 차별과 직장 내 갑질도 만연했다. ‘비정규직 백화점’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용기를 내 방송사의 부당행위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고, 노동부와 법원의 문을 두드렸 다. 그 결과 2021년에는 의미 있는 결정과 판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MBC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근로자성 인정이 중앙노동위에서 이뤄졌다. 5월에는 이재 학피디도 항소재판에서 근로자성 인정과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이어 CJB청주방송에 대한 고용 노동부의 근로감독 결과로 비정규직 12명에 대한 근로자성 인정과 시정명령이 내려졌다. KBS에서 도, YTN에서도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근로자성 인정을 받았다. 2021년을 하루 남긴 12월 30일에는 지상파 3사에서 일하는 보도·시사교양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42%)이 ‘노동자’라는 노동부 의 특별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됐다. 노동부가 지난 해 5월 시작한 <방송사 비정규직 활용 실태조사 연구 용역> 결과도 올해 초에는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좀 나아질까? 앞으로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변화할 수 있을까?

사회의 경고에도 버티는 방송사들, 근본해법 찾아야

잇따른 노동부와 사법부의 판결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시작일 뿐이었다. 여전히 방송사들은 제대로 된 해법을 찾기보다 현재의 고용관행을 유지할 편법을 찾으려는 것 같다.

KBS 전주방송국은 방송작가의 부당해고에 대한 지방노동위의 ‘복직’ 판정을 거부하고 있다. 광주MBC도 작가에게 프로그램 폐지를 이유로 해고했다. MBC에는 뉴스투데이 방송작가 해고에 이어 연말에 <뉴스외전> 작가 3명에 계약종료를 이유로 또 해고 통보를 했다.

노동부는 ‘방송사 노동자다’라는 직접 고용하라는 판정을 내렸는데, 기막히게도 해당 노동자들은 쫓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CJB청주방송은 노동부의 판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업무를 바꿔버리기도 하고, 약자인 노동자의 상황을 악용해 프리랜서로 다시 계약을 맺기도 했다. 사실상 노동부의 시정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의 답변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판정은 했지만 고용관계 체결은 별도 문제라는 거다. 이에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 다시 거리에 나와 절규하고 있다. 개별적 사안에 대한 판결을 넘어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케 한다.

살아 있는 이재학들이 웃는 날을 위해!

방송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노동자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외주제작사가 넘쳐나고, 경쟁이 격화하면서 성과에 따라 프로그램 폐지가 밥 먹듯이 이뤄지는 환경 속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착취와 일회용 취급은 더 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지난날의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용인하며, 침묵하며 살아가지 않겠다는 방송사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사회는 방송사 비정규직들의 친구가 되어 방송의 공공성과 비정규직 해결을 위해 나서고 있다. 비정규노동자들은 동료의 해고에 맞서 싸우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정규직 착취하는’ 방송 제작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이재학피디는 우리와 이별했지만 이재학피디가 남긴 ‘억울하다’는 그 외침은 살아남은 이재학들의 분노와 행동으로 다시 살아나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싸움 속에서 나는 이재학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재학피디 2주기를 준비하는 지금, 비정규직 없는 세상, 차별 없는 안전한 일터를 향한 방송사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한다!

비정규노동자의 착취와 갑질이 사라진 환경에서 제작된 드라마와 시사프로를 보는 날이 꼭 올거다. 함께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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