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미싱타는 여자들>,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

  • 기사입력 2022.02.07 18:27
  • 기자명 이송희일 영화감독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이송희일의 영화직설

1998년 초, 평화시장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 마치 동굴 속을 더듬듯, 비좁은 계단을 한참 올라가 마주한 허름한 노조 사무실. 촬영 허가를 구하기 위해 간 거였다. 당시 단편영화 연출팀 막내였었는데, 노동운동을 했던 감독이 그 낡은 평화시장 건물에서 촬영하고 싶어했다. 노동자의 비애를 다룬 <동시에>라는 35mm 단편영화. 장소 협조를 구하는 우리의 말을 경청하던 중년의 상근자가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문 닫는 건 아시죠?”

촬영이 끝난 후,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정말로 청계피복노조는 서울의료노조로 통합되며 그 이름이 사라졌다. 설립된 지 28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 것이다. 당시 촬영을 끝내고 나오다가 그 낡은 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활자로만 읽고 상상해온 장소였는데 막상 초라해 보였다. 전태일, 이소선, 청계피복노조의 역사를 품고 있는 시대의 둥지. 그러나 한국 노동운동사의 중요한 변곡점이더라도 희치희치 페인트가 벗겨지고 있던 그 낡은 흑백의 건물처럼 어느 순간에는 소멸되는 운명인가 싶어 허전하고 씁쓸했다. 뒤이어 바삐 걸음을 재촉하며 평화시장을 빠져나갔고, 그때의 기억도 그렇게 망각 속으로 점점이 사라졌었다. 

그런데 영화의 힘은 ‘상기’라고 했던가. 잠자고 있던 동굴 속 기억들을 깨워 느닷없이 지금의 눈 앞에 현전시키는 힘. 바로 <미싱타는 여자들>이 그랬다. 까무룩히 잊고 있었던 24년 전 기억을 떠올리게 했을 뿐 아니라, 당시 내가 얼마나 무감한 존재였는지, 내 판단이 얼마나 그릇됐는지 벼락치듯 깨닫게 했다. 

<미싱타는 여자들>이 상기시키는 그 기억들은 흑백이 아니라 총천연 칼라였다. 요동치듯 생생했다. 잿빛의 죽은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싯퍼런 불덩이였다. 단지 몰랐고, 그저 외면했을 뿐이다. 역사의 어떤 단면은, 어떻게 기억하고 상기하냐에 따라 발터 베냐민이 말한 '호랑이의 도약'처럼 그렇게 현재라는 무대 위에 껑충 뛰어오르곤 한다. 

1970년 11월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 계기로 만들어진 청계피복노조. 이소선 여사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빚어낸 성취였다. 최근 개봉된 다큐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노조 결성 후에 설립된 ‘노동교실’과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관계의 온도를 응시하는 작품이다. 7평 교실을 열자마자 200여명이 몰릴 정도로 '노동교실'은 당시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희망의 거처였다. 1977년 이 노동교실이 폐쇄되자, 10대 여성 노동자들을 비롯해 노조원 50여명이 이소선 여사의 석방과 노동교실 복구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벌이게 된다. 이른바, 노동교실 사수투쟁 사건. 

영화는 여성 노동자들의 기억을 퀼트처럼 교차시키며 노동교실의 시작과 점거 투쟁, 그리고 투옥 과정을 촘촘히 서술한다. 그러나 사건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트라우마에 잠식되었던 그 아픈 기억들과 당사자들을 대면시켜 스스로 ‘치유’하도록 기꺼이 영화 공간을 내어준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사건 당사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상처에 공명하는 관객들 마음까지도 함께 고양시킨다. 요컨대,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치유와 성장의 영화다. 

영화에서 가장 울림이 큰 대목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동교실’이 갖는 그 의미들이 환하게 웃는 흑백사진들과 함께 술회될 때다. 1번 시다, 2번 미싱사처럼 숫자로 호명되는 게 전부였는데, 노동교실은 그 이름들을 온전히 불러준다. 그렇게 사람의 존엄을 가르쳐주던 곳, 글쓰기, 은행 이용법, 근로기준법을 알려준 곳, 함께하는 노래와 춤과 여행의 의미를 나누던 곳. 노동교실은 노동자들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삶의 감각들을 흔들어 깨워주는 존재의 학교였다. 

그 소중한 교실이 폐쇄됐는데, 여성 노동자들이 얼마나 절망했겠는가. 소방호스에서 물이 터져 나오고 경찰들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에도 창문에 매달린 채 제2의 전태일이 되겠다 외치던 그 절박한 마음 말이다. 얼마나 소중했으면, 얼마나 절박했으면 교실과 함께 죽을 각오였을까. 

퉁퉁 부은 눈두덩을 닦으며 극장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문뜩, 그런 의문이 스쳤다. 노동운동이든 진보정당이든, 지금의 우리는 이름이 지워진 자들을 위한 학교가 되고 있는가. 이름 없는 자들의 이름을 제대로 호명하고 있는가. 저 낮은 곳에서 이름 없는 사람들을 조직하고 있는가. 과연 쉼터이며, 안식처이며, 배움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곳인가. 어느 순간 우리는 정세와 외부 조건에 책임을 떠민 채 행여 그 간절한 마음들을 외면해온 건 아닐까. 

노동조합이 더 많은 노동대중의 책상이 될 때, 진보운동이 더 많은 시민대중의 학교가 될 때 <미싱타는 여자들>의 엔딩처럼 비로소 우리는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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