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차별받지 않고 노동할 권리를 보편적 권리로 세운다는 것

  • 기사입력 2022.02.16 17:03
  • 최종수정 2022.02.16 17:08
  • 기자명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차별은 개인의 양심과 도덕에 맡길 일이지 법으로 강제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할 때 종종 돌아오는 반응이다. 이런 반응은 흔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포함하고 있다. ‘차별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도덕적 직관에 따라 쉽게 알 수 있다’, ‘차별이란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탈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차별은 그 사회의 고정관념과 상식에 뿌리를 두고 있어 직관만으로 알기 어렵고, 많은 경우 개개인의 행위를 넘어 구조화된 관행이나 정책의 형태로 작동하기에 개인의 힘으로 맞서기 어렵다. 일의 세계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특히 그렇다.

차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사회의 기존 관념에 도전하는 과정이며 그래서 차별의 법리는 사람들의 직관과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이 고객의 선호에 맞추어 채용기준이나 노동조건을 정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 전략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어학원에서 학부모의 선호에 따라 백인일 것을 강사 채용조건으로 내세우는 일, 어떤 사람이 대머리라는 이유로 고객을 대하는 호텔 업무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채용을 거부하는 일, 여성승무원에게 치마 복장을 하도록 강제하면서 복장이 고객서비스의 일부라고 이야기하는 일은 이러한 세간의 인식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때로 고정관념은 그럴듯한 통계를 자기 근거로 삼기도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니 채용할 때 임의로 나이 상한선을 정하는 일은 문제 될 게 없으며, 통계적으로 여성의 근속연수가 떨어지는 사회에서 기업에서 여성노동자보다 남성노동자를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은 ‘직무수행의 특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만 엄격하게 차별의 예외를 인정한다. 앞서 본 고객의 선호나 단순한 통계적 경향성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막연한 기업의 자유 담론이나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대어 차별을 정당화 시키려 할 때 법은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이를 제어해야 한다.

또한 고용 차별은 많은 경우 이미 차별적으로 구성되어 오랜 기간 반복되어온 기업의 정책이나 관행의 형태로 존재한다. 차별이 구조적인 성격을 지닐 때 차별을 드러내고 설명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구조적 차별까지도 잘 설명하고 드러낼 수 있게 돕는 법적 개념과 제도가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직접차별, 간접차별, 괴롭힘, 성희롱 등을 포함하는 통합적인 개념으로 차별을 정의한다. 이들은 모두 차별적으로 구조화된 노동 현장 안에서 성별, 인종, 장애, 학력 등의 다양한 차별사유를 이유로 노동자가 겪게 되는 부당한 장벽들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발전해온 개념들이다. 현행 법제에는 이러한 차별 개념 중 일부만이 도입되어 있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한 통합적인 정의를 제시함으로써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세울 수 있다. 차별을 어떻게 입증하고 시정하도록 만들 것인가도 차별금지법이 규정하는 중요한 내용들이다. 고용 차별 사건에서 문제 되는 행위가 무엇을 근거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 기업 측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차별의 핵심적 내용에 대한 입증책임을 기업에 지우는 조항, 고용차별 관련한 기업의 정보공개 의무를 강화하는 조항 등은 공정한 토대에서 차별을 논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된다. 법원이 구체적인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게 하는 조항, 기업의 악의적 차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들 또한 차별적인 관행이 반복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시정되도록 만드는 데 필요한 내용이다.

금융기관과 공공기관들의 성별·학력 채용차별, 대전MBC 아나운서 성별분리채용 등의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차별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작동하고 있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구조적 성차별은 없고 차별은 개인의 문제’라는 발언이 대선후보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차별의 작동방식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여전히 낮다.

차별이 개인의 윤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이해시키고, 통합적인 차별을 점검하고 해명하고 시정할 책임이 노동자가 아닌 기업에 있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일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러한 개념과 원칙을 보편적인 형태로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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