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인터뷰] 2022년 청년여성노동자들에게 듣다!

천안에 위치한 사과나무 디자인에서 디자이너 노동자로 일을 하는 청년노동자 이야기

  • 기사입력 2022.03.14 13:14
  • 최종수정 2022.03.14 15:10
  • 기자명 백승호 기자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는 2022년 제114주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충남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여성노동자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번째로 만난 청년여성노동자는 사과나무 디자인에서 디자이너 노동자로 일을 하는 시내, 소산 청년여성노동자입니다.  

이들은 "놀랍게도 사무실 안에서 느끼는 세대차는 없는 것 같다. 가끔 인터넷에서도 뽑을 수 있는 서류를 행정복지센터 같은데 가서 뽑아야 한다고 말할 때 정도?"라고 설명하며 사과나무 일터는 평등하고 안전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로서 활동도 사과나무라는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페미니즘은 "공부하며 실천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시내, 소산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다.

Q1.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 개인, 단체

최 : 최시내 입니다. 사과나무에서 일한지는 5년차가 되었습니다. 

박 : 사과나무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박소산입니다. 사과나무는 그래픽디자인 회사입니다. 포스터, 명함, 리플렛 같은 홍보물을 만들고 주로 천안에 있는 시민단체나 기관, 기업들과 함께 일 해왔습니다. 요즘에는 조금씩 다른 지역에서도 디자인으로 연대하는(?) 기회가 넓어지고 있어요. 

Q2. 단체(회사)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

최 : 그 당시에 서울로 취업하고 싶어서 준비를 하던 시기였는데, 지역에 계시는 아는 분이 사과나무를 소개 시켜주셨어요. 저는 취업준비를 하면서 알바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사과나무 사무실에 왔었고, 포트폴리오를 보여드렸는데 그러면서 명재쌤이 몇가지 제안을 해주셨었습니다. 창업하는 것, 다른 곳을 소개시켜 주는 것, 사과나무에서 일하는 것 이었고. 그 중 사과나무가 가장 드문 기회일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선택했습니다.  (지역 청년이 서울로 가버리는 상황을 막고 싶었던 어른들의 마음도 있었던 것 같고 ㅎㅎ)

박 : 2013년에 5월에 처음 사과나무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만두고 다른 일들을 하다가 2020년에 다시 일하게 되었어요. 지역에서 하는 청년모임을 통해서 사과나무 사장님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갑자기(?)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저는 그 때 편집디자인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취미로 포토샵을 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제가 한 몇가지 작업물을 보고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역에서 모두가 노리고 있는 자리라는 얘기를 듣고 덜컥 시작하게 되었어요. 디자인 툴을 배워가면서 일을 했습니다.

Q3. 단체(회사)에서 세대 간 격차 등으로 인해 불편했던 경험은 없는지?

최 : 놀랍게도 사무실 안에서 느끼는 세대차는 없는 것 같다. 가끔 인터넷에서도 뽑을 수 있는 서류를 행정복지센터 같은데 가서 뽑아야 한다고 말할 때 정도?

박 : 사장님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세대 차이를 느꼈던 적은 없었어요. 사과나무는 지역에서 약간 베짱이(?)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따지고 보면 정말 일을 많이 하는 곳인데... 여하튼 사장님이 특별하게 나잇값을 하지 않았고, 권위와 불평등에 민감한 사람이라서 세대 간 격차, 성별 간 격차를 가지게 되는 것을 유달리 조심스러워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불편한 건 없었고, 예민함 속에서 많이 배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Q4. 청년여성으로 사회단체일을 할 때 겪는 성차별이나 여성혐오는 없었는지?

최 : 오히려 좋은 뜻으로 말 하려다가 적절하지 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외모나 복장에 관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일하면서 내가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생각들을 많이 못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종종 사장님을 찾는 경우.

박 : 여성혐오까진 아니어도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당연해서 인사를 대체할 지경이었어요.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왜 이렇게 살쪘어?” 어느 순간에는 그게 너무 익숙해서 저도 막 외모 지적하고 놀리곤 했는데 점점 페미니즘을 알게 될수록 입 다물게 되거나 저지하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페미니즘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분위기여서 다들 조금씩은 조심하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책 같은 거 읽자고 하면 다들 회피했고, 책 읽고 토론하는 자리에 나와서 “더 이상 불편해서 편하게 말을 못하겠다” 라는 얘기를 버젓이 하던 분위기였어요. 
그리고 정확히 어떤 자리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한참 20대에 활동할 때는 젊은 여자애들을 앞세우자(?)라는 얘기, 간판처럼 쓰자는 얘기도 들은 적 있어요. 

Q5. 노동조합(민주노총)이 지역의 노동인권단체 또는 여성활동가들과 어떻게 연결되었으면 싶은지?

최 : 내 경우엔 사실 일을하면서 내가 곧 노동자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던 것 같다. 노동자긴 한데 그게 뭐지? 무슨 의미가 있지? 싶었다. 더군다나 동료가 별로 없는 환경이라면 더더욱 고립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것 같다. 어떻게 일하는게 마땅한 노동을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럴 때 기준이 될 수 있는 생각들을 접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정확히 어떤 방법이면 좋을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박 : 민주노총이 성평등과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잘 몰라서....그래도 민주노총이 노동영역의 최전선에서 진보를 제안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내 성평등 교육이 의무이긴 하지만, 진짜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예민하게 교육해야 되지 않을까? 민주노총 간부 성비나 성비? 같은 게 궁금해지긴 합니다. 보통 민주노총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조끼 입은 남성들이네요.  

Q6. 이대남, 이대녀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최 : 내가 운이 좋은편인건가. 내가 만나는 영역 안에서 기사에서 말하는 것 같은 이대남들을 접한적이 없다. 하지만 20대 동생들에게서 종종 듣는 얘기는, 정말로 괴리감을 느낄때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대남 이대녀가 20대를 정확히 대변하는 단어일 것 같지는 않다. 저 단어들이 정말 주변에 청년들과 접점이 없는 사람들에게 편견을 심어주는 것 같다. 

박 : 이대를 못 가봐서 잘 모르겠다... (웃음) 솔직히 현실세계에서 그걸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걸 보면 언론에서 더 많이 말하고 싶어 하는 주제인 것 같다. 현상이라고 하기엔 추상적인 것 같긴 한데 투표결과를 보면 정말 실존하는 것인가? 의문이 들긴 하다. 근데 이게 실체가 있다기보다는 혐오를 부추긴 결과 같다. 내가 실감하는 건, 정말로 페미니즘에 대한 혐오와 오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 정도다. 왜 이렇게 페미니스트인 남성을 떠올리기 어렵나? 왜 멋진, 좋은 글을 써내는 사람들도 여성이슈 앞에서는 쪼그라들지? 왜 대화하려고 하면 도망가지? 다른 것보단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하려는 의지자체가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잘 몰라, 나는 원래 가부장적이야’ 라는 말로 숨기 너무 쉽다는 거다.  

Q7. 동지에게 안전한 일터, 평등한 일터란 무엇인지?
최 : 사과나무에서 일을 시작할 때 명재쌤이랑 어떻게 일할건지 얘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명재쌤은 오후에 출근하고 싶고 쉬고싶은 날에는 쉴거라고 했다. 처음에는 사장님의 일정을 그렇다고 말해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다음엔 시내씨는 어떻게 할래요? 하고 물어봤다. 내가 어떻게 일할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지 못했던 때여서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너도 할 수 있고, 그 시간을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것. 단순히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처리하는 시간이 그 사람의 일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박 : 안전을 공부하는 일터, 평등을 공부하는 일터다. 안전과 평등을 위해서 공부해야하는 건 뭘까? 민주주의일수도 있고, 페미니즘, 생태학, 정치 등등 배워야하는 것이 많다. 여기에 게으르지 않은 일터인 것 같다.  

Q8.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또는 민주노총에 하고 싶은 말은?

최 : 감사합니다.

박 : 늘 빚지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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