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안전은 교섭의 대상이 아닙니다. 관철의 대상입니다.”

호퍼작업 근절! 고층 CPB 설치 의무화!
안전한 작업을 위해 투쟁에 나선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

  • 기사입력 2022.04.06 13:39
  • 최종수정 2022.04.06 15:37
  • 기자명 이준혁 기자
김용기 부산울산경남건설지부 타설분회장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 사고 이후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 ‘타설’이다. 벽체를 만들 때, 만들어진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붓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이번 사고의 붕괴 원인으로 이 콘크리트 타설 부실이 지적되기도 했다.
이 타설공의 노동조합으로서는 전국 최초로 조직을 결성했던 곳이 바로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건설지부 타설분회다. 이 타설분회가 2022년, 안전한 현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다. 바로 ‘호퍼작업 근절, 고층 CPB설치 의무화’ 투쟁이다.
호퍼는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옮기기 위한 장비인데, 운반에만 쓰여야 할 호퍼를 실제 타설하는 도구로 많이 쓰여온 것이 사실이다. 타워크레인으로 들어올린 호퍼를 밑에서 타설노동자가 붙잡고 직접 타설을 하는 것이다. 워낙 거대한 물건이다보니 낙하, 협착 등의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는 이 호퍼 작업을 금지해야 한다고 투쟁에 나선 것이다. 김용기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장을 만나 이번 투쟁의 의미와 경과를 들어보았다.
(본 기사는 건설노조 기관지 <건설노동자> 48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Q.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는 타워크레인을 이용한 호퍼 작업 근절 투쟁을 진행했습니다. 호퍼를 이용한 타설 작업이 어떤 점에서 위험한가요?
호퍼로 타설을 하는 것 자체가 편법적인 겁니다. 아래에서 호퍼에 콘크리트를 실어서 이동하는 양중 작업은 문제가 안 됩니다. 근데 이렇게 하면 호퍼에 담겨 있는 콘크리트를 바닥에 부어놓고 타설공들이 삽으로 다 퍼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거죠. 그러다 보니 호퍼를 허공에 띄워 놓고 저희가 호퍼를 잡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건데, 이게 편법적이란 겁니다.

콘크리트 호퍼를 이용해 타설 작업을 하는 모습. (본 사진은 기사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콘크리트 호퍼를 이용해 타설 작업을 하는 모습. (본 사진은 기사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서 호퍼가 사람을 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난간에 사람이 올라가서 작업을 하다가 호퍼하고 벽체 사이에 사람이 끼이는 협착 사고도 많이 일어나고요. 협착 사고를 피하려다 밑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실제 그렇게 돌아가신 분도 있고요. 호퍼 자체가 중량이 무겁다 보니 타워크레인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호퍼가 추락해서 타설공이나 심지어 레미콘 기사나 신호수가 깔려서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타워크레인 기사 분들도 호퍼를 직접 움직여야 하니까 정말 신경을 곤두세워서 작업을 하는데요, 바람이 분다든가 빗방울이 떨어진다든가 이러면 시야 확보도 어려워지고, 작업도 어려워집니다. 호퍼 작업을 하면 기사님들의 손가락 끝에 저희들 생명을 맡겨놓는 건데, 저희 입장에서나 타워크레인 기사분들 입장에서나 사람 할 짓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호퍼 자체가 살인무기가 돼버린 겁니다.

Q. 28년 동안 타설 일을 하면서 보거나 들으신 사고 사례가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타설을 할 때는 철근이 배근되어 있는 상태에서 많이 합니다. 마지막 층이 아닌 이상 항상 다음 층과 연결하기 위해 철근이 50cm 이상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에 콘크리트를 타설을 해서 덮어나가는 과정인데요, 뒤에서 타설된 콘크리트를 다지고 마무리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철근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콘크리트에 덮여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튀어나온 철근에 걸려서 넘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노출된 철근에 몸통이 꿰뚫리는 사고가 정말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어떨 때는 뒷걸음질하다 후장으로 뚫고 들어가서 장 파열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현장에서 산재 처리를 거의 안 하다보니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제일 많은 사고입니다.
추락 사고도 많습니다. 불과 2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고층 작업을 하다 동료 한 분이 엘리베이터 사이로 추락해서 사망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2019년에는 안동의 지에스 현장에서 3명의 동료가 데크 슬라브(층과 층 사이를 나누는 바닥, 거푸집 용으로 제작된 철판)가 내려앉아서 추락했던 사고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현장에서는 원래 있던 안전망도 해체를 했었어요. 후속 공정을 빨리해야 한다면서요. 아무 안전 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타설공만 올라와서 작업하다가 추락해서 사망했죠. 저와 같은 팀에서 일한 적도 있는 식구들이었는데, 안전망 하나만 설치했어도 살 수 있었습니다.
저도 죽을 뻔한 사고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분배기로 작업을 하다가 분배기를 받치는 기둥 중 하나가 내려앉으면서 완전 90도로 들려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건물 밖으로 튕겨나가게 됐습니다. 25층이었는데, 분배기를 놓쳤으면 저는 추락해서 그대로 죽었겠죠. 사람이 목숨이 질긴건지, 매달려서 대롱대롱한 상태에서 다행히 동료들이 빨리 타워크레인을 불러서 큰 사고없이 넘어갔었습니다.
누구든 그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건설 현장에서 우리 타설공들이 처한 위치가 아닐까 합니다. 오늘 당장 어떤 사고가 난다고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안전 문제가 전국 현장에서 심각하다는 거죠.

Q. 이번 투쟁은 어떻게 준비하게 되었나요
매달 한 번씩 간부회의를 합니다. 작년에 했던 회의에서 조금 더 안전하게 일하려면 뭘 해야 하냐 논의했습니다. 모든 작업이 다 위험하지만 점수를 매겨봤을 때 제일 위험한 것이 호퍼 작업이라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럼 대안이 뭐가 있냐, 고민하다 CPB(콘크리트 플래싱 붐. 펌프카가 닿지 않는 초고층 건물을 타설하기 위한 장비)를 설치하면 다 해결된다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바람 불어서 작업을 못하는 것도, 비가 와서 타워크레인 기사님이 못 올라가는 것도, 위험한 호퍼 작업도 CPB 설치하면 다 해결된다, 이런 취지로 뜻을 모은 것이 작년 3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장 시행하면 현장에서 원청사, 전문건설업체 모두 혼선이 생기니, 충분히 현장에 알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2022년 1월 1일 전문건설업체와 하도급 계약을 맺은 이후부터 CPB 설치를 의무화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작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정도 현장에 홍보도 하고 합의하는 기간을 가진 거죠.
사측 현장 관계자와 얘기하면 10명이면 10명 모두 취지는 정말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호퍼 작업은 자기들이 봐도 불안한데 요구대로 되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단 경제성이 떨어진다, 돈이 안 된다는 얘기는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본사에 우리가 투쟁하는 이유를 계속 얘기했었죠. 너무 돈만 내세우지 말고, 안전을 위한 투쟁이니까 고민을 좀 해달라고요.

CPB를 이용한 초고층 타설 작업 모습. (본 사진은 기사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CPB를 이용한 초고층 타설 작업 모습. (본 사진은 기사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습니다)

Q. 투쟁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CPB를 설치하려면 처음부터 슬라브에 구멍을 뚫으면서 층을 올려야 합니다. 시작부터 CPB를 고려해서 공정을 넣어야 하니 기존의 현장에 당장 만들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올해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25층 이상 고층 건물을 짓는 현장에 요구를 한 거죠. 부산에서 그러한 현장이 포스코건설, SK건설 두 곳이었습니다. 두 곳 현장에 방문을 해서 우리 투쟁의 취지를 설명했고요, 2월 8일부터 현장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합의가 잘 되었습니다. 3월부터는 경남, 김해, 울산 권역까지 투쟁을 했고, 이곳에서도 고층 CPB 설치 의무화에 원만하게 합의했습니다.
저희가 집회하는 현장 앞에 주택이나 상가가 많은데, 시민분들도 안전에 관한 문제라고 하니 많이들 지지해주십니다. 현장 집회하는 데 지나가는 시민 한 분이 우리가 왜 투쟁하는지 물어보시더니 추운데 따뜻한 거 먹고 몸이라도 녹이라고 후원금을 주시고 간 적도 있었죠.

Q. 타설이 멈추면 레미콘이나 펌프카 같은 연관 기종의 동지들이 손해를 보실 수도 있는데요, 어떻게 이야기를 잘 나누셨는지요.
저희들이 투쟁을 하겠다고 부산과 울산, 경남의 펌프카, 레미콘 동지들을 다 만났었습니다. 3월부터 본격적인 투쟁을 하면 현장이 멈출 수도 있는데, 피해가 갈 수도 있다고요.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이 딱 한 가지였습니다. ‘안전 때문에 하시는 거 아닙니까. 연대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라고. 다른 어떤 말보다 진짜 힘이 나는 이야기였습니다.
건설노조 부울경본부는 지부들간 공동교섭-공동투쟁 기치로 많은 걸 바꾸고 이뤄냈습니다. 타설분회도 2019년 부울경의 레미콘 동지들이 건설노조 가입하고 투쟁할 때 한 달 넘게 같이 현장을 세워가면서 공동투쟁을 했었습니다. 레미콘 기사님들도 같은 노동자고, 같은 콘크리트로 먹고사는 동지들이니깐요. 그런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이번에 저희 투쟁할 때도 타 지부 동지들께서 한 목소리로 안전을 위한 투쟁 같이 하자고, 힘이 되는 말씀 많이 해주셨습니다.

지난 1월 12일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 투쟁 선포대회
지난 1월 12일 부산시청 앞에서 열린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 투쟁 선포대회

Q. 마지막으로 전국의 동지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건설노동자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안전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거라 생각합니다. 안전에 관해서만큼은 부울경건설지부 타설분회만이 아닌 민주노총 건설노조 동지들도 절대 타협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임금교섭은 조금 적게 받을 수도 많이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 안전인데 이건 교섭과 타협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교섭의 대상이 아닌 관철의 대상이라 봅니다.
우리 건설노조의 트레이드마크를 말씀드리면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투쟁 없는 쟁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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