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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영주와 현의 블루스

  • 기사입력 2022.09.30 09:17
  • 최종수정 2022.10.17 16:55
  • 기자명 명인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영주와 현은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다. 제주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과 2등인 둘은 말 그대로 전도유망한 고3들이다. 두 청춘은 서로 사랑했다. 그런데, 분명히 콘돔을 사용했음에도 영주가 임신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의 아버지들은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영주의 아버지도 현의 아버지도 어떻게든 임신을 중단시키려 한다. 임신 따위로 자식들의 ‘인생을 조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역 공동체에서 두 사람의 임신은 걱정 아니면 조롱거리다. 따라서 서울 의대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아버지의 유일한 희망이며 인생 자체였던 영주의 임신중단은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진다. 시청자들에게도 대개는 그 나이에 처자를 부양하겠다며 학교를 때려치우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과, 임신했어도 얼마든지 의대에 갈 수 있다며 아이를 낳겠다고 우기는 영주는 철이 없어도 한참 없어 보인다. 심지어 처음엔 임신을 중단하겠다고 현에게 선언했던 영주가 현의 설득으로 아이를 낳기로 마음을 바꾸자 어이없어하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많다.

세상엔 수많은 영주들이 있다. 공부를 못하지만 임신한 청소년 영주들도 있고, 20대나 30대, 혹은 40대인데 임신하고 갈등하는 영주들도 있다. 이들 각각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버젓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기혼인데도 임신했을 때 누구나 축하를 받는 건 아니다. “지금이 애 낳을 형편이냐, 어쩌다 그런 실수를 했냐?” 걱정부터 듣는 여자도 있고, 심지어 아이를 같이 만든 남편에게 “넌 왜 피임도 제대로 못하냐?”는 핀잔을 듣는 여자도 있다. 단지 임신을 이유로 다른 핑계거리를 만들어 해고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법으로 보장된 출산 휴가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직장도 사실상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라도 임신한 여성은 노골적으로 민폐 취급을 받기 일쑤다.

어떤 임신은 축하를 받고, 어떤 임신은 손가락질을 받는다. 어떤 임신부는 태교를 위해 온갖 것들을 누리고, 어떤 임신부는 죄인 취급을 받는다. 임신중단도 마찬가지다. 어떤 임신중단은 영주의 경우처럼 공감과 이해를 받고 심지어 임신을 지속하는 게 문제시되며, 어떤 임신중단은 천하의 못된 짓으로 매도된다.

생명의 존엄성을 운운하며 임신중단 합법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10대인 자기 자식이 임신을 했어도 과연 같은 생각일까? 정말로 모든 생명이 존엄하다면, 임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잣대가 누가 임신을 했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다를 순 없다.

드라마에서 영주의 임신을 제일 먼저 받아들이는 건 지역 공동체의 할망 둘이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기특한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주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모르는 여성에게 유일하게 축하를 받는다. 영주의 임신을 제일 먼저 눈치챈 친구는 영주가 임신하고도 학교에 계속 다니는 것에 찬성한다는 급우들의 의견을 모아준다. 학교는 임신한 영주를 인정하기로 하고, 심지어 영주를 내친 아버지를 설득한다. 결국 아버지들도 두 사람의 임신 사실을 받아들인다. 사회와 공동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한 사람의 임신은 완전히 다른 사건이 된다.

하지만 영주와 현의 블루스가 해피엔딩이 될 거라고 장담하긴 어려워 보인다. 아이는 낳기만 한다고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일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아이의 양육에 부모와 가족만이 아니라 학교, 이웃, 지역 공동체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든 축복 속에서 태어나고, 아이가 자라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이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따라서 아이를 함께 키울 ‘온 마을’을 만들지 않고서 단지 임신중단에 대해 찬성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논쟁하는 프레임은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모든 논의를 공허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출산을 결심한 영주와 현을 응원한다. 필자는 또한 어렵게 임신중단을 결정한 세상의 모든 영주들을 응원한다. 세상의 모든 영주와 현의 블루스가 해피엔딩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책임을 나눠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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