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골병 든 한전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12명, "산업재해 인정하라!" 집단산재 신청

건설노조 서울전기지부 조합원 12명 집단 산재 신청 내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 앞 기자회견 열어 배전 현장 실태 밝혀

  • 기사입력 2022.07.12 19:30
  • 최종수정 2022.07.12 19:32
  • 기자명 이준혁 기자

“대한민국은 전기 노동자들의 목숨과 팔, 다리를 내어주고 빛을 밝혔다”

아프고 골병이 들어도, 시민 생활을 지탱하는 전기의 소중함을 알기에, 참고 일해오던 서울지역 전기 노동자들이 집단 산재를 신청했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위원장 장옥기)은 7월 12일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단 산재를 신청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이 날 산재를 신청한 이들은 총 12명. 모두 한국전력공사 비정규직 하청 전기 노동자들이다. 평균 나이 56.6세, 평균 경력 27년. 배전 노동자가 전봇대에 오르려면 안전보호구나 로프 등 최대 30kg에 달하는 장비와 자재를 매고 올라야 한다. 이 과정에서 허리, 어깨, 팔, 다리, 무릎 등 모든 몸에 과도한 힘을 사용해야 한다. 전선에 흐르는 2만2천9백 볼트의 고압을 오가며 느끼는 ‘자칫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도 더해진다. 그러다보니 많은 배전노동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보험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한전의 일을 하지만 2년 주기로 입낙찰 받은 업체에 소속되어 일하는 하청 노동자 신세였기 때문이다. “시공 과정에서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한국전력이 알게 되어 있다. 여기서 벌점이 쌓이면 다음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보니, 배전 하청 업체는 산재 처리를 안 해주려 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연출 건설노조 서울전기지부장의 말이다. 정연출 지부장은 이어 “이번 산재 신청을 준비하면서도 배전 업체들은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등 당연히 발급해줘야 하는 서류조차 발급해주지 않았다”라며 배전 현장에 만연한 하도급 구조 때문에 배전 노동자들이 골병들어간다고 지적했다.

정연출 건설노조 서울전기지부 지부장
정연출 건설노조 서울전기지부 지부장

“관절마다 연골이 파손되고 인대가 파손되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몸뚱아리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어서 발언에 나선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부위원장 겸임)은 “우리들의 썩어가는 몸뚱이 상태를 알아내려면 으레 받는 건강검진이 아니라 특수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라며 전기노동자를 직업병 고위험군으로 인정하고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날 직접 산재 신청을 한 배전 노동자의 현장 발언도 이어졌다. 배전 노동자 정관모 씨는 “30년 동안 일해왔는데 2년 전부터 어깨에 심한 통증을 느껴 검사를 해보니 회전근개 파열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도 회사 측에서는 산재를 올릴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다”라며 그 동안 산재 신청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사연에 대해 이야기했다.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부위원장 겸임)
석원희 건설노조 전기분과위원장(부위원장 겸임)
이 날 산재 신청에 참가한 정관모 배전 노동자
이 날 산재 신청에 참가한 정관모 배전 노동자
정관모 조합원은 발언 이후 오른쪽 어깨의 수술자국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정관모 조합원은 발언 이후 오른쪽 어깨의 수술자국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후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에 집단 산재 신청을 내고 면담을 진행했다. 연일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의 소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각 가정과 회사에서 냉방기구가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전기 노동자들의 노동 덕분이다. 정작 그들이 골병으로 시들어가고 있다. 한전은,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대해 제대로 된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산재 신청과 보상이 배전 현장에서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에 집단 산재 신청을 하며 면담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후 참가자들은 근로복지공단 서울본부에 집단 산재 신청을 하며 면담을 진행했다.
전봇대에 오르기 위해 발판볼트를 설치하는 작업 사진. 20~30kg의 장비를 허리에 메고 전봇대를 오르며 하는 작업으로, 불안정한 지지 상태에서 온 몸에 과도한 힘을 주게 된다.
전봇대에 오르기 위해 발판볼트를 설치하는 작업 사진. 20~30kg의 장비를 허리에 메고 전봇대를 오르며 하는 작업으로, 불안정한 지지 상태에서 온 몸에 과도한 힘을 주게 된다.
전봇대에 매달린 채 철로 된 중량물을 끌어올리는 배전 노동자
전봇대에 매달린 채 철로 된 중량물을 끌어올리는 배전 노동자
누가 봐도 불안정한 자세에서 전선을 들어올리고 설치하는 배전 노동자. 전선 무게만 해도 50m 기준 40kg에 달한다.
누가 봐도 불안정한 자세에서 전선을 들어올리고 설치하는 배전 노동자. 전선 무게만 해도 50m 기준 40kg에 달한다.
감전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전에서 개발한 스마트스틱(절연봉)으로 무거운 중량물인 특고압 케이블을 설치하는 배전 노동자. 어깨와 팔에 과도한 힘이 들어간 채 반복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감전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전에서 개발한 스마트스틱(절연봉)으로 무거운 중량물인 특고압 케이블을 설치하는 배전 노동자. 어깨와 팔에 과도한 힘이 들어간 채 반복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 기자회견문 -

아프면 주사한대 맞고 일을 나간 게 10년째...
골병든 한전 비정규직 하청 전기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은 산업재해다!

“아프면 주사 한 대 맞고 일을 나갑니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1년이 되고, 10년이 됐네요.”
“산재보험이요, 그게 뭡니까?”

어깨 근육이 찢어지고, 손가락이 골절되고, 허리가 어긋나도 일을 했다. 
한전일을 하지만, 실은 한전에서 2년주기로 입낙찰 받은 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라서 산재보험은 꿈도 못꿨다. 아니, 업체에 산재보험 이야기만 꺼내도 당장에 고용불안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전봇대를 오르내리며 일해온 배전 전기 노동자는 어떻게 일해 왔던가.

전기 노동자들은 14~16M 높이의 전봇대에서 2만2천9백볼트 고압을 다루는 노동자들이다. 허리에 매는 펜치 등 연장과 벨트만 해도 10Kg이 넘는다. 여기에 로프를 둘러메고 각종 자재를 짊어지고 전봇대를 오르내렸다. 전기 자재는 10Kg이 넘어가는 게 보통인데, 이 자재를 전봇대 위에서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 들어, 전선을 교체하거나 신설하기 위해 스마트스틱을 사용하는데, 스틱이 무겁기도 하거니와 이걸 계속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일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작업을 할 때 전기는 살아 있다. 자칫 감전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나마 팔, 다리 잘라내지 않은 것만해도 천운이라 여겼다. 

그러나 고압에 감전될 수도 있다는 극한의 공포감으로 전봇대를 오르내리는 전기 노동자들의 손가락은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손목이 완전히 젖혀지지 않고, 아래 팔이 안쪽으로 돌아가 있으며, 팔꿈치가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폭염이라고 일을 멈출 수도 없었다. 한여름 태양을 바라보며 일하는 동안 속옷은 다 젖어버린다. 정해진 공시기간에 맞춰 일을 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은 전기 노동자의 노동에 빚을 지고 있다. 
한여름에도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하루 하루 노동을 쌓아 올려 빛을 밝혔다.
중량물에 장시간 노동으로 숟가락 들 힘도 없어 벌벌 손을 떨 정도로 일해 정전을 막았다. 
배전 전기 노동자 근골격계 질환은 산업재해다. 

2022년 7월 12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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