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동지가 평생 꿈꾸셨던 세상... 주거, 장애, 돌봄,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를 염원합니다

국가가 놓친 안타까운 생명...폭우 피해로 운명한 일가족 추모제 열려
동지들의 든든한 울타리였던 고인, 모두의 행복 꿈꾸던 가장 따뜻한 사람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 추모제 참여...이런 참극 다시 없도록

  • 기사입력 2022.08.12 15:00
  • 최종수정 2022.08.12 15:12
  • 기자명 서비스연맹
11일 (목) 저녁 7시 30분, 서비스연맹은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 조연주 기자
11일 (목) 저녁 7시 30분, 서비스연맹은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 조연주 기자

8일 중부지방을 뒤덮은 기록적 폭우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했다. 수많은 인명피해 중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서 목숨을 잃은 일가족 세 명의 사건은 특히 전 국민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장애인 언니, 초등학생 딸과 함께 희생된 홍00 씨의 이타적이고도 헌신적인 삶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홍00 씨는 20여 년 면세점 노동자로서 근무하며 일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었다. 또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총무부장으로서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애쓴 활동가였다. 가족의 버팀목으로서, 면세점 노동자의 든든한 울타리로서 언제나 남을 먼저 위했던 고인의 삶은 노조 동지들의 가슴에 생생히 남아있다.

11일 (목) 저녁 7시 30분, 서비스연맹은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이번 폭우가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진 까닭은 한국 사회가 주거,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때문이다. 현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재발 방지도, 진정한 추모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11일 (목) 저녁 7시 30분, 서비스연맹은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 조연주 기자
11일 (목) 저녁 7시 30분, 서비스연맹은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 조연주 기자

추모제에는 노동계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장애인후보연대, 피플퍼스트, 빈곤사회연대, 전국민중행동 등 시민단체, 대학생 단체 뿐 아니라 추모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줄을 이어 참여했다. 추모제 참가자들은 밝은 미소로 동지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고인을 영원히 잊지 말자 다짐하며 고인과 가족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평안하기를 빌었다. 아울러 이러한 참극을 만든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짚고 주거, 장애, 돌봄,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로 거듭날 것을 촉구했다.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촛불을 밝히고 있다.

첫 추모사는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맡았다 강규혁 위원장은 "밝은 미소 뒤에 이런 아픔이 있는 줄 알았다면 (고인을) 볼 때마다 한 마디 위로라도 더 건넸을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 아울러 "고층 빌딩, 고급 아파트가 가득한 서울에서 네 가족에게 주어진 공간은 겨우 반지하 살림방"이었다며 주거, 돌봄의 짐을 개인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규탄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강규혁 위원장은 "기사를 뒤덮은 ‘반지하’, ‘아픈 노모’, ‘장애인 언니’, ‘여성 노동자’라는 단어들은 한 가족의 주거도, 장애도, 돌봄도, 안전도 책임지지 못한 국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면서, "이 현실은 고인이 노동운동을 하며 그토록 바꾸고 싶어 했던 그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인생의 무게에 좌절하지 않고 노동 현장과 세상을 바꾸겠다고 꿈꾸던 고인의 뜻을 이으며 남아계신 어머님을 힘닿는 데까지 모시겠다"고 굳게 약속하며 추모사를 마쳤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떠나간 동지를 추모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떠나간 동지를 추모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추모사를 이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대표로서 죄송함을 표했다. "(추모를 위한 자리에서)거대 양당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민주노총의 책임을 반성하고자 한다"며 "우리가 더 크게, 더 세게 노력했다면 잃지 않았을 동지를 잃었다"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또 "고인이 하늘에서 지켜보며 안도하실 수 있도록, 이런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의 노력을 다하자"고 참석자들을 다독였다. 

유족이 도착하기까지 상주를 맡았던 김성원 백화점면세점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장은 고인의 삶을 '반지하' '궁핍'이라는 말로 단순히 재단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김성원 지부장은 "언제나 밝고, 씩씩했고, 타인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동지였다, 가족과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까 궁리하고 아이와 장난을 치며 행복하고 풍족하게 산 동지였다"고 생전 고인의 모습을 생생히 전했다. 

김성원 백화점면세점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지부장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김성원 백화점면세점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지부장이 애도를 표하고 있다. 

김성원 지부장은 추모제에서 유족의 메시지를 대신 발표하기도 했다. 유족은 이번 참극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임을 분명히 하며, 사건 발생 3일째까지 책임자들의 사과와 사후 예방 약속이 없음에 유감을 표했다. 아울러 "재발 방지만이 고인에 대한 진정한 사과가 될 것"이라며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고인과 가까웠던 동료들이 추모 발언을 이었다. 김수현 백화점면세점노조 부루벨코리아지부 사무국장은 평소 고인과 가장 가까이에서 뜻을 같이했던 동지였다. 김수현 사무국장은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나오는 답은 따뜻한 사람"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휴무 때마저도 남은 동료들을 걱정하던 이, 남을 위한 희생을 조금도 꺼리지 않던 이, 남의 고통에 자신이 더 힘들어하던 이, 밝은 웃음으로 남의 고민을 나눠 들어주던 이"라고 고인의 생애를 짚고, 이러한 고인을 절대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최자현 백화점면세점노조 삼경무역지부장은 노조 조합원이 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낭독했다. 편지에는 코로나19 고용 불안으로 자포자기하고 있던 이에게 노동조합 함께 해보자며 손을 내밀었던 고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편지를 쓴 조합원은 고인이 해주었던 격려를 떠올리며 "제가 부장님께 받은 용기는 그 어떤 용기보다 큰 것이었습니다. 부장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남아 있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 이서경 피플퍼스트 활동가. ⓒ 조연주 기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 이서경 피플퍼스트 활동가. ⓒ 조연주 기자

추모제에 참여한 장애인단체 대표들도 발언에 나섰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삶은 재난이 일상"이라며,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보호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음을 규탄했다. 아울러 책임자들이 재난을 핑계 대지 말고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이 바라는 국가의 사과는 재발 방지이며, 이를 받아내기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대표는 이번 폭우로 반지하에서 사망한 이들을 함께 추모했다. 아울러 발달장애인의 죽음을 '가족의 부담, 돌봄 대상'으로만 묘사하는 언론을 비판했다. "장애 돌봄을 가족만 책임지게 하는 나쁜 나라에서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다"며 책무를 다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같이 투쟁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이기도 한 이서경 피플퍼스트 활동가는 "가난한 사람, 약자에게만 더 크게 다가오는 재난이 무섭고 안타깝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왜 항상 가난한 사람, 노인, 장애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움츠러들고 다쳐야 하는 걸까"라고 안타까워하며 "이런 상황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물었다. 평등하고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사회적 약자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조연주 기자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조연주 기자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서울에 반지하 주거가 밀집된 역사적 배경을 훑는 한편,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재개발 정책만 내놓는 정부와 서울시'를 성토하며 재개발 열풍으로 주택이 부족해지면서 반지하가 주거 용도로 허락된 것인데, 또다시 재개발로 반지하를 막겠다는 건 문제를 만든 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윤경 활동가는 20만 가구가 넘는 서울 내 반지하 거주민에 대한 주택 제공이 선행 정책이어야 한다며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또 고인이 생전 했던 인터뷰를 인용하며 "뭉쳐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 이겨 봅시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조직강화특별위원장은 수재를 맞아 부유층은 외제차의 안위를 걱정하고 물난리를 구경할 때 빈자는 목숨을 잃는 현실에 슬픔과 분노를 표했다. "주거는 물, 공기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라며 주거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 양극화, 부의 편중을 막고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고인의 뜻이기도 했음을 상기하며 다시 한 번 위로를 전했다.

11일 (목) 저녁 7시 30분, 서비스연맹은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 조연주 기자
11일 (목) 저녁 7시 30분, 서비스연맹은 고인을 추모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추모제를 진행했다. ⓒ 조연주 기자

추모제에는 지민주 민중가수와 박준 민중가수도 참가해 고인을 추모하고 남은 이들을 위로했다. 지민주 가수는 여성 노동자로서의 애환을 위로하고 고인의 뜻을 담은 노래로 추모의 마음을 표했다. 박준 가수는 유족을 위로하는 노래와 메시지로 참가자들을 다독였다.

서비스연맹은 이후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지속하며 주거, 장애, 돌봄, 안전의 국가 책임을 묻기 위한 공동행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아울러 모든 면세점 노동자의 맏언니 역을 하며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준 고인을 기려 계속 투쟁해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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