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수원 세 가족’ 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이율배반

  • 기사입력 2022.08.26 11:34
  • 최종수정 2022.08.28 18:28
  • 기자명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수원 세 가족’의 죽음에 대해 언론은 연일 ‘촘촘한 복지’를 이야기하면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 죽음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일보는 복지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는 이유를 ①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과 지원 인력 부족 ②다양하고 복잡해지는 복지제도 ③당사자들이 적극 나서지 않으면 혜택을 못 받는 ‘신청주의’ ④코로나 사태 이후 지역사회 관계망 단절을 꼽았다. 중앙일보는 ‘신청주의’ 복지가 부른 비극이라면서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신청주의의 극복’, ‘찾아가는 복지’가 복지의 화두로 떠올랐지만 사건은 반복됐다고 지적하며 “촘촘한 복지 행정으로 재발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일보도 2014년 12월 “이른바 ‘송파 세 모녀법’이 통과됐지만 성북4모녀, 대전3부자, 전남 일가족 3명 등 지역명만 바뀔 뿐 취약계층의 생활고 자살 사건을 계속 목격하고 있다”면서 “1차적 문제는 인력이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전국적으로 ‘찾아가는 복지팀’ 인력은 6월 말 기준 1만2736명이지만 상당수 인원이 코로나19 재택치료 안내나 긴급생활비 지원 등 다른 업무를 해야 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2020년 기준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은 2만8658명으로 전체 공무원의 9.9%에 그친다고 보도했다. 한겨레와 인터뷰한 복지전문가는 “문재인 정부 때 사회복지 공무원을 1만 명 이상 늘렸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파견 등을 감안하면 실제 증가한 인원은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복지에 관해 그동안 ‘정치복지’보다는 ‘약자복지’를 추구했다”며 “어려움을 한목소리로 낼 수 없는 약자들을 잘 찾아서 챙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처럼 언론과 정치권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더 이상 ‘가족 죽음’은 사라질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 7일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재정 확장 정책으로 인해 국가 재정건전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내년부터 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의 3% 이내로 통제하겠다”고 선언하고 “국가채무비율도 향후 5년간 GDP대비 50%대 중반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재량 지출 최소 10% 삭감’을 주문하고 공무원 정원과 임금을 엄격하게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반면에 국가 재정 수입은 대폭 축소가 불가피하다. 내년부터 법인세 최고 세율 인하와 종부세, 상속·증여세 등 대규모 조세 감면이 예고되고 경기침체에 따라 세수는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규제와 재정이다. 생명과 안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규제를 만들고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한다. OECD 국가들을 보면 재정의 역할과 규모는 지속적으로 팽창하고 있다. 그럼 국가는 그 많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까? 조세수입만으로 부족하고 상당 부분이 부채로 채워지고 있으며, 그 비중도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감세 정책과 경기 침체로 세수는 줄어들고, 국가 채무를 줄이려면 지출 구조조정밖에 대안이 없는데 재정지출에 기득권 구조가 이미 강하게 형성되어 있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유일하게 기대는 것은 ‘민간주도성장’이다. 대규모 감세로 혜택을 보게 될 대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와 고용 창출로 경제성장을 이루고 이를 통해 세수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국면에서는 기대난망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지출과 공공부문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그런데도 “복지예산과 인력을 늘린다”는 말을 믿어야 할까?

사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재벌신문들이 만든 미신에 기초해 있다. ‘국가부채 1000조 위기론’과 ‘공무원의 나라’, ‘세금폭탄’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이 미신을 쫓아낼 인지능력이 부족할 뿐이다.

언론이 만든 ‘미신’의 뿌리는 전경련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한국경제연구원이다. 재벌(대기업)과 신문이 만든 ‘미신’은 철저하게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대적 빈곤율은 2016년 17.6%에서 2019년 16.3%로 매년 개선되고 있지만 2021년 기준으로 OECD 4위 수준이며, 공공사회복지지출 규모는 2019년 GDP 대비 12.2%로 OECD 평균인 20.0%의 61.0%수준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아주 조금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OECD 국가 중 네 번째로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이들은 마치 문재인 정부가 엄청난 재정을 투입해 나라 곳간이 곧 거덜 날 것처럼 주장하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은 2020, 2021년을 제외하면 긴축재정이었다. IMF에 따르면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GDP의 15~20% 규모로 재정 지출을 늘렸다. 하지만 한국은 추경을 통해 기껏해야 3.4%를 사용했을 뿐이다.

재벌신문은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부문 인력을 마구 뽑아 ‘공무원의 나라’가 됐다면서 “공무원 증원의 망령이 한국에 어른거린다”고 협박하지만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 일자리는 10.2%로 여전히 OECD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는 30% 정도인데, 복지가 잘되어 있는 이들 국가는 전체 피고용인의 1/3 정도가 국가로부터 임금을 받는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재벌신문은 “유리지갑 탈탈 털었다”면서 직장인은 ‘봉’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5.3%로 OECD 평균인 8.1%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며 미국의 절반이다. 국민부담율은 27.4%로 OECD 평균 33.9%에 비해 6.5% 더 인상할 여력이 있다. GDP 기준으로 130조원 정도의 세수 수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양극화와 고물가로 서민들의 고통이 크고 코로나 19와 세계공급망 붕괴로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저출생·고령화시대에 접어든 국가라면 더욱 충분한 재정 운용으로 사회복지안전망을 강화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 재정적자와 국가 채무 해소를 위한 근본 해결책은 증세다. 재벌 대기업의 법인세와 부동산 부자들의 종부세를 깎아 주면서 재정 긴축 운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언론에 묻는다.

‘수원 세 가족의 죽음’에 당신들의 책임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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