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단체협약으로 쟁취한 타워크레인 일요휴무, 그 엄청난 기억

“지금 단체협약이 없다면, 당장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을 것”
대구경북타워크레인지부 정봉근 조합원 인터뷰

  • 기사입력 2022.08.26 17:49
  • 최종수정 2022.08.26 17:51
  • 기자명 이준혁 기자

정봉근 조합원(대구경북타워크레인지부)은 타워크레인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이 생기고, 단체협약이 생기게 된 일을 ‘엄청난 기억’이라고 단 한마디로 표현했다. 그에게 있어서 건설노동자의 단체협약이 생기면서 투쟁으로 쟁취해낸 ‘일요휴무’는 노동조합이 있기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것이었다.
(본 기사는 건설노조 기관지 <건설노동자> 49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한 겨울 성탄절, 타워크레인에 전구 장식을 달아야했던 타워크레인 조종사

정봉근 조합원은 1994년부터 타워크레인 조종사로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해 올해로 28년차의 베테랑 조종사다. 당시 대구의 5대 건설사 중 하나였던 ‘청구’ 중기부 소속으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당시 노동조건에 대해 하나의 일화를 들려줬다.

“타워크레인 조종 일을 하기 시작했던 1994년 12월에 성탄절을 앞두고 회사에서 타워크레인에 성탄절 장식을 설치하라고 했었죠. 겨울철이면 더욱 미끄럽고 위험한 타워크레인 위에서 혼자 전구와 전선을 짊어지고, 크레인 지브 끝에서 끝까지 장식을 달았습니다. 작업을 거부한다는 것 있을 수 없던 시절이었죠”

그가 타워크레인 조종 외에 이런 작업을 하면서 한 달에 손에 쥐는 임금은 60만 원이었다. 휴무조차 없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로 소속돼 있지만, 현장 잡부일을 기본적으로 해야하고, 회사에서 ‘이 현장 저 현장’ 옮기도록 지시하면 매일같이 출근 현장이 바뀌는 환경 속에서 정봉근 조합원은 “휴무 자체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IMF가 찾아왔다. 임금도 동결되고 노동환경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와중에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서서히 같은 회사 소속이 아니더라도 서로 정보를 나누기 시작했고, 노동조합을 조직하러 돌아다녔다고 했다. 정봉근 조합원은 “그렇게 한사람 두사람이 모여서 첫 집회도 시작했고, 다른 현장에 동료들을 설득하러 삼삼오오 돌아다니며 조직화해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스스로 노동조합(전국타워크레인기사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동조합으로 뭉쳐 임단협으로 만든 최고의 성과는 일요휴뮤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이 만든 노동조합은 건설현장에서 최초로 단체협약을 쟁취해낸다. 그리고 그동안 건설현장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요일 휴무를 만들어냈다. ‘엄청난 기억’이라고 표현한 단체협약 중 그가 가장 첫째로 여기는 것도 ‘일요휴무’였다. 노동조합이 수많은 요구안을 쟁취해냈지만 ‘일요일만큼은 쉬고 싶다’는 것이 가장 컸다고 했다. 정봉근 조합원은 “일요일에 수많은 현장에서 타워크레인이 멈춰서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감개무량하고 기뻤다”고 말했다.

2001년, 전국타워크레인노동조합은 28일 동안 펼쳐진 총파업을 통해 대한민국 건설현장에서 최초로 '일요휴무'를 쟁취해냈다. 물론 그 뒤에도 일요휴무를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다.
2001년, 전국타워크레인노동조합은 28일 동안 펼쳐진 총파업을 통해 대한민국 건설현장에서 최초로 '일요휴무'를 쟁취해냈다. 물론 그 뒤에도 일요휴무를 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한 투쟁이 계속되었다.

물론 일요휴무 쟁취 투쟁은 순탄치 않았다. 정 조합원은 “4,5년은 계속 일요휴무를 위한 투쟁에 나선 것 같다”며 “초코파이 몇 개와 물 몇 개만 싸들고 5명이 타워크레인을 점거한 적도 있었다. 한 평도 안되는 조종실에서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다”고 했다. 많은 집회와 투쟁이 있었지만 점거 투쟁이 너무 힘들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투쟁 기간 중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 노조를 만들고 활동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어떤 사람은 회유도 들어왔지만 나 같은 경우는 일방적으로 짤렸다. 어느 날 갑자기 대체 기사가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있고 내가 갈 곳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 후 해고된 사람들을 채용하던 타워크레인 임대사에 들어가 대구를 떠나 창원으로 일터를 옮겼다.

하지만 노동조합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대구에서, 부산에서 동료들이 창원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기도 했고, 함께 활동하며 노동조합으로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노동조합의 일요휴무 투쟁으로 이룬 성과에 대해 “다른 요구안들은 타직종 건설노동자들이 보기에 추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일요휴무만큼은 바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엄청난 부러움을 말했다. 심지어 원청 건설사 관리자들도 그랬다”고 말했다.

정봉근 조합원은 “지금 시점에 단체협약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당장 이 일을 때려치우고 싶을 것 같다”고 했다. 다시 온갖 위험천만한 일을 해야하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라면 절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일요휴무로 여가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하는 정봉근 조합원.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고 한다.
일요휴무로 여가시간이 늘어났다고 말하는 정봉근 조합원.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고 한다.

단체협약으로 쟁취한 일요휴무로 인해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은 많은 여가의 시간이 생겼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경우는 일요일이면 가족과 같이 ‘절투어’를 다닌다면서 사진을 여러장 보여줬다. 정 조합원은 “다른 조합원들은 레저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다양한 여가활동을 즐기고 있다”고 말하며 “정말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알았겠나”하며 웃었다.

정봉근 조합원의 경험처럼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으로 수많은 변화를 몸으로 경험했다. 단체협약을 건설현장 최초로 만들어내며 일요휴무를 비롯한 노동시간 단축에 앞장사고 있으며, 현재도 임금과 노동조건을 단체협약을 통해 개선시켜나가고 있다. 또한, 타워크레인 노동자 뿐만아니라 이제는 건설현장의 다양한 직종의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협약을 통해 변화된 노동의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건설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던 건설현장,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을 통해 지금도 스스로 바꿔나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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