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싸울 때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열려

김용균재단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이 우선되는 사회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이들과 함께 <김용균, 김용균들>을 나눕니다"

  • 기사입력 2022.08.31 10:56
  • 최종수정 2022.08.31 11:04
  • 기자명 백승호 기자 (세종충남본부)

30일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에서는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가 있었다.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은 2018년 12월 10일 김용균노동자의 죽음 이후, 62일간 연대투쟁을 함께 했던 노동자, 시민, 노동조합, 시민사회종교단체들의 힘을 모아 2019년 10월 26일 출범했다. 출범 후 김용균투쟁의 약속을 이행시키기 위한 노력과 일하는 모든 이가 안전한 세상, 비정규직없는 세상을 향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김용균재단이 기획하여 제작한 책 ⟪김용균,김용균들⟫이 출간되었다. 김용균노동자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산재사건들을 알리고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위해 대중서 출간을 하게 되었다. 

김용균재단은 "우리 모두의 투쟁이었던 ‘김용균투쟁’과 ‘남은 이들의 투쟁’을 통해 산재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자리가 많이 마련되었으면 한다"며 이번 북콘서트를 오월의봄 출판사와 함께 준비했다.

이날 북콘서트 이야기손님으로는 저자 권미정, 림보, 희음과 인터뷰이인 김미숙, 이인구, 이태성님이 자리했다.

이야기 손님들은 비정규직의 또 다른 이름, 김용균. 그 이름을 걸고 우리가 함께 했던 투쟁과 고통. 그 투쟁과 고통으로 삶이 바뀔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김용균,김용균들>에 담았다며, 이야기 나눔 자리를 통해 산업재해가 왜 사회적 문제인지, 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 피해자들을 또 어떻게 바꿔내고 있는지, 변화된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우리 사회는 어디로 향해가야 하는지 서로 확인하고 손을 잡았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김용균재단은 <김용균,김용균들>과 함께 비정규직 이야기와 투쟁을 담은 다른 책이나 현장 이야기를 나누길 희망한다며, 다른 지역 또는 노동자들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이야기손님 이인구, 이태성, 김미숙, 권미정, 림보, 희음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이야기손님 이인구, 이태성, 김미숙, 권미정, 림보, 희음

[나눈이야기]

김용균재단이 기획해 내보이는 첫 번째 책 '산재, 그리고 산재 이후의 남겨진 이야기'

김용균을 다시 부르는 방법 

한국 사회의 일터에서는 한 해에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다. 2018년 12월 10일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24살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도 그 비현실적 숫자의 하나가 되었다. 그가 화력발전소에서 일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비용과 안전을 저울질하는 이 사회의 단면이 드러났고, 산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했다.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높인다며, 위험을 외주화해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그것을 전가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은 고유명사이나,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위험의 외주화, 산재 사고 피해자를 지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김용균재단이 기획해 선보이는 첫 단행본인 《김용균, 김용균들》은 다시 이 김용균이라는 이름에서 시작한다. ‘기업의 살인’과도 같은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3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김용균이라는 한 사람의 죽음과 죽음 이후를 기억하고 살아내고 있는 김용균 사건의 또 다른 당사자인 세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김용균을 호명했다. 김용균 씨의 주검을 발견한 후 산재 트라우마와 함께 삶을 살아내는 또 다른 생존자이자 피해자인 하청업체 동료 이인구 씨,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산재 피해자 가족이자 유족으로, 또 노동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는 김미숙 씨, 발전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로 김용균투쟁이 자신의 싸움이 된 이태성 씨가 그들이다. 김용균 씨가 목숨을 잃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죽음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함께 싸웠는지, 그 싸움의 구체적 면면들은 어땠는지가 그들 각각의 기억과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다시 기록되었다.

특히 이 책은 김용균 씨의 산재 사고의 진상과 함께, 김용균 씨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주목해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함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산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더 다각화하고 산재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이 겪은 삶의 크나큰 변화와 살아내기 위해 이어가고 있는 그들 각자의 싸움에 무게를 둔 것은 산재의 당사자는 산재를 직접 겪은 피해자만이 아니며, 산재 사건은 공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단절된 한 건의 사고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 당사자와 유족만을 중심에 두고 산재 사건에 접근하는 기존의 관점을 넓히려는 시도임과 동시에 산재가 사회에서 고립된 별도의 사건, 즉 나와는 무관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려는 시도다. 또한 산재 사고가 어떤 시점에 깔끔하게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긴 그림자와 상흔을 남기며 장기간의 싸움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점 역시 함께 드러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이야기손님 이인구, 이태성, 김미숙님
'김용균, 김용균들' 북콘서트 이야기손님 이인구, 이태성, 김미숙님

산재 이후에 남겨진 이야기: 살아서 그 죽음을 겪어내는 사람들 

이인구 씨는 김용균 씨와 같은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었지만, 발전소 정규직으로 30년을 일하다 발전소 하청업체에 계약직으로 다시 입사한 경력직 ‘오비(OB)’ 직원이다. 노조에는 호의적이었지만 적극적으로 활동하지는 않았고, 분위기 좋은 곳이 있으면 아내와 함께 데이트도 곧잘하던,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보다 안정적이라는 발전소 정규직으로 살아온 '평범한' 삶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이후 삶이 크게 변했다. 이렇게 큰 참극을 겪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정규직 시절에 정규직들의 처지에만 관심을 쏟았던 과거를 반성하고, 발전소 민영화를 막아내지 못해 김용균 씨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데 책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중대재해를 목격한 사람으로서, 산재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가는 산재 피해자이자 생존자다. 산재 사건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되었던 대표적인 피해가 바로 이 산재 사고의 목격자들이 겪게 되는 심각한 정신적 외상 문제다. 이인구 씨는 동료의 주검을 발견하며 큰 충격적 경험을 했지만 그에 대해 보호를 받기는커녕, 마지막에 김용균 씨와 통화를 했다는 이유로 마치 피의자처럼 취급되어 경찰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잘못은 기업과 구조에 있는데 동료 노동자들은 죄책감까지 느껴야 한다. 심한 경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조사를 받기도 한다(2020년 현대중공업 끼임 사고). 이인구 씨 역시 심한 이명과 불면에 시달렸다. 다만 이인구 씨를 비롯해 당시 김용균 씨와 함께 일했던 화력발전소 노동자들 여럿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산재 처리가 되어 해당되는 치료를 일부 받을 수 있었다. 김용균 씨 사건에 앞서 있었던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 이후 사고를 겪은 이들에 대한 정신적 어려움을 지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면서 직업 트라우마에 대한 공적 지원 체계가 조금은 자리를 잡은 덕이다.  

김미숙 씨는 김용균 씨의 어머니다. 산재 피해 유가족이다. 자식이 스스로 잘못해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몰아가려는 회사의 모습을 보고 시작된 싸움이 또 다른 김용균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자식의 죽음으로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었고, 자신과 가족에게 집중했던 삶에서 타인의 삶에 연대하는 삶으로 옮아갔다. 부당한 노동현실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됐다. 다만 저자들이 기록한 김미숙 씨는 정형화된 유족 혹은 '노동자의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다. 당연히 유가족이라고 해서 언제나 슬플 수는 없고, 온종일 길 위에서 싸우고 있을 수만도 없다. 그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족은 이래야 한다라는 편견에 맞서야 한다고 분명히 생각한다. 김미숙 씨는 흔들리기도 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웃고, 이따금은 다시 공허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평범'했던 과거의 삶과 싸우며 살아가는 지금의 삶을 저울질하지 않고 모두를 긍정한다. 자식 잃은 어머니가 되기도, 길 위에서 싸우는 몸이 되기도, 누군가의 손을 맞잡는 연대자이자 활동가가 되기도 하며 자신의 싸움을 해나간다. 

이태성 씨는 발전 비정규직 노조 동료다. 또다른 발전소 하청업체의 비정규직이고 노조 활동가였고, 김용균 씨와 서로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기 위한 기자회견에 발전 비정규직 대표로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날 새벽에 김용균 씨의 죽음을 알게 됐고, 그 기자회견에서 그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김용균의 죽음을 세상에 처음 알리게 됐다. 그 역시 가까운 후배를 산재로 잃었고, 산재 신청조차 하지 못했던 수많은 동료들의 얼굴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터진 울음이었다. 김용균의 죽음을 그대로 흘릴 수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그리고 김용균을 그대로 보낼 수 없었던 건 다른 발전 비정규직들도 마찬가지였다. 

큰 싸움의 경험도 없었고, 팔뚝질조차 어색했던 발전 비정규직 노조원들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미친 듯이 싸웠다”. 노조를 포함한 수많은 주체들이 두 달여를 싸웠다. 당정 협의도 이루어졌고, 장례도 치렀다. 국무총리 산하의 석탄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가 꾸려져 조사도 마무리됐다. 그런데도 발전소는 변한 듯 변하지 않았다. 특조위 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했다. 정규직 전환은 합의 이후 3년이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았고 발전소 내 작업환경 및 처우 개선도 미진한 상황이다. 김용균 산재 사망에 대한 책임자 처벌을 위한 형사재판에서 사측은 또다시 말을 바꿨다. 원청은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했고, 왜 그렇게 노동자들이 위험하게 일을 하는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산재로 인한 후배의 죽음이 후배의 과실로 기록된 것을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팠던 이태성 씨는, 이제 투쟁을 그만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함께 싸울 때 길도 생기고 힘도 생긴다는 걸 김용균투쟁으로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다시, 김용균

이 책은 이 세 사람의 이야기뿐 아니라 석탄화력발전소를 둘러싼 문제의 시작과 범국민 추모제 등에서의 김미숙 씨의 발언, 그리고 여러 주체들이 함께했던 김용균투쟁에서 특히 집회를 기획하고 진행하거나 시각 작업을 맡았던 문화활동가들의 목소리도 같이 엮어 김용균 사건 자체도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려 노력했다. 김용균이라는 이름이 하나의 대명사가 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또 다른 김용균들이 함께 싸웠다는 것을 기록하고 산재가 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그리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비극이라는 점을 전하고자 했다.

산재로 사망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회적 사건이 되는 산재가 많지 않은 비극적 현실에서도 김용균 씨의 죽음은 이 사회를 울렸다. 국무총리 산하의 특조위도 구성되어, 김용균 씨의 산재 사망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인재였고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원하청이 분리되어 연속된 공정의 업무를 보게 만든 노동구조와 위험한 노동환경 등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계가 명백할지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김용균 씨 사건과 똑같은 구조적 이유로 벌어지는 산재 사망사고는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도, 동국제강에서도, 건설 현장에서도, 대우조선에서도 불안정 노동자인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보도되지 않은 죽음은 더 많을 것이다. 심지어 김용균 씨 사망에 대한 책임자 처벌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2022년 2월에서야 선고된 1심 결과에서 원청인 한국서부발전 전 대표는 무죄 판정을 받았고, 원·하청사에게 선고된 벌금과 기타 피고인들에 대한 처분 역시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그뿐만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반 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처벌을 완화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됐고 정부는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지금 김용균을 다시 호명하고 그 죽음과 이후의 투쟁을 기록하는 것은 김용균이라는 한 사람뿐 아니라 같은 구조 속에서 목숨을 잃고 다친 수많은 이들을 기억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그 길에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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