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홍석만의 NOT TODAY] 미국의 세계시장 분할재편과 한국의 미래

생산주의가 아니라 세계시장 분할

  • 기사입력 2022.09.06 12:55
  • 최종수정 2022.09.06 14:16
  • 기자명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원
홍석만의 NOT TODAY
홍석만의 NOT TODAY

최근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높은 물가상승 제어를 목표로 국가지원 계획을 밝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게 됐다. 미국은 인플레 감축법을 통해 전기차 보조금, 클린에너지 생산 및 소비, 전기화, 주택 및 건물 개량 지원 등에 총 3,690억 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또한 건강보험개혁법(ACA) 확대지원 연장, 저소득층 보조금, 백신지원 등 헬스 케어 부문에 980억 달러를 지원하며 인플레 감축법으로 10년간 모두 4,850억 달러를 지출할 계획이다.

인플레 감축법에 대해 특히 국내에서는 미국 생산 지원으로 되어 있는 전기차 보조금, 배터리에 대한 세액 공제가 논란이다. 전기차의 경우 미국·캐나다·멕시코(북미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차에 한해 보조금(세액공제)이 최대 7,500달러 지급된다. 내년 1월부터는 조건이 더 까다로워지는데,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 배터리 원료 광물과 부품까지 조건이 맞아야 보조금을 지급한다. 배터리 광물은 미국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에서 40%를, 부품은 북미 지역에서 50%를 조달할 경우에만 1대당 각각 3,750달러씩 혜택을 준다. 그리고 이 비율은 매년 올라 광물은 2027년 80%까지, 부품 비율은 2029년 100%까지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그러나 인플레 감축법에서 지원금을 받냐 못 받냐 또는 보조금 차별이냐의 문제를 넘어 더 큰 문제는 미국이 미국과 동맹국 중심으로 생산과 공급망을 재편하려고 한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대니 로드릭 허버드대 교수는 ‘생산주의(productivism)’로 개념 짓는다. 대니 로드릭은 신자유주의 핵심인 세계화와 자유방임 자본주의 대신 지역주의와 국가의 규제를 강조하는 정책적 아이디어가 좌파와 우파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본다. 바이든의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트럼프의 “아메리카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사실상 같은 구호로, 제조업의 귀환을 사고하는 리쇼어링(reshoring)뿐만 아니라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공급 측면의 조치를 강조한다. 녹색 경제 정책, 국내 공급망 재건, 질 좋은 일자리 강조, 대기업 비판,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단행한 대중 보복 관세 유지 등 바이든 정부가 취하고 있는 정책의 상당 부분이 이런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대니 로드릭의 생산주의는 국가 주도의 생산력주의인 케인스주의를 반복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 주도의 재편은 단순한 미국 생산주의, 일국적 케인스주의와는 확연히 다르다. 현재 상황은 생산지를 자국 중심으로 옮기는 리쇼어링(reshoring)이나 동맹국 중심으로 공급망을 옮기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인플레 감축법에서도 나타나지만 ‘미국 생산’이라는 ‘한정’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안 된다는 ‘배제’가 들어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미국의 가치동맹국이 아닌 소위 독재국가에서 생산된 부품 또는 광물을 사용한 자동차는 아예 배제 대상이 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IPEF)에서 중국 배제라는 공급망 재편의 목적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 미국, 한국, 일본, 대만 등 반중국 반도체 동맹인 ‘칩4(Chip 4) 동맹’도 중국의 반도체 의존을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대체할 수준의 계획을 하고 있다.

이런 배제는 생산지만이 아니라 소비지의 변경, 봉쇄를 낳게 돼, 궁극적으로 시장의 분할로 나타나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 등은 미국의 이러한 배제 전략에 반발할 수밖에 없으며, 자국 내 미국 생산품의 소비를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대체 생산으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시장재편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으면, 생산과 소비가(시장이) 완전히 분리되거나 봉쇄된, 냉전 시기와 같은 이중경제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미국의 공급망과 시장재편 계획은 이런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고 원료 생산지까지 재편하려고 한다. 공급망의 최상단에 위치한 원재료 생산은 광산을 개발해 새로운 원료공급지를 개척하지 못하면 공급망을 변경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토지)에 절대적으로 긴박 되어 있다. 시장을 분할 또는 재편하려면 반드시 핵심 원료생산지를 확보해야 한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 수탈을 통해서 확보했고, 석유가 최고의 원재료가 되자 1970년대 이후 미국은 사우디와의 동맹을 통해 석유 생산과 공급을 지배·확보해 왔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이제 희토류 등 주요 광물 자원이 최고의 자원이 됐고, 시장 지배와 재편을 위해 희토류 등 주요 광물자원의 확보, 주산지 변경 및 대체가 공급망 재편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 재편을 더욱 재촉하고 주요 광물과 자원을 안보 자산화했다. 리튬·니켈·흑연·코발트·망간 등 배터리 핵심 원료에 대해서는 국방물자법DPA을 발동했고, 반도체 생산은 국방수권법에 포함했다. 이로써 배터리 핵심 원료와 반도체는 국방물자, 군수물자가 됐다. 그만큼 공급망 재편, 시장 재편 등 경제질서의 재편이 군사화·안보화 되어 군사적 긴장과 대결로까지 상승할 것임을 예고한다.

세계시장 분할재편과 생산성 회복
제국주의로 분할된 세계시장은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시장의 통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 속에서 소련으로 한정됐던 사회주의 국가가 대거 출현하자 세계시장은 다시 분열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절반인 동유럽이 사회주의 국가로 손바뀜했고,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해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됐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식민지 국가들도 속속 독립하면서 상당수가 사회주의 국가로 재탄생했다. 그 결과 전 세계의 절반이 사회주의 국가로 편입되었다.

그러자, 미국은 세계적인 사회주의화를 막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전과 베트남전에 개입하는 한편 냉전(체제)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와 정치군사 및 경제적으로도 분리했다.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경제 봉쇄를 지속시켜 세계시장을 두 경제체제로 완전히 분할했다. 미국은 세계시장의 분리와 단절, 냉전체제 속에서 케인스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국가투자의 증대, 국가의 시장개입 확대 및 노동과의 생산성 동맹(케인스적 축적체제)을 통해 독점자본 중심의 고성장, 저물가, 저실업이라는 미국 경제의 골디락스를 이루었다.

그러나 부채가 폭증하고 생산성 위기가 확대하자 1970년대 자본주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스태그플레이션(인플레이션+경기침체)이 찾아왔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은 미국은 1970년대 말부터 고강도의 금리인상을 통해 과잉자본과 부실자본을 청산하는 한편, 1980년대 들어 군비지출을 전에 없이 확대하고 아프간 전쟁 지원, 스타워즈 등 신냉전 고조로 사회주의 경제권을 압박해 왔다. 군비지출도 정부지출이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에 포함되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군비지출은 생산적인 요소가 된다. 반면, 사회주의 경제에서 군비지출은 국방관련 과학기술의 발전과 안보 이외에 경제적으로는 생산적이기 보다 ‘낭비’에 가깝기 때문에 군비지출의 증가는 경제와 국민 생활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1990년 소비에트가 해체되고 러시아를 필두로 과거 소비에트 연방 산하의 공화국들, 유고 연방과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의 공화국들이 독립하며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다시 편입되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으로 자본주의 세계시장은 ‘세계화’라는 이름의 단일시장으로 재통합되었다. 금융세계화, 민영화, 노동유연화와 함께 세계화는 세계시장의 재통합으로 나타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구체화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 선진자본주의 경제는 199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적 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시작으로 부채가 급증하고 신자유주의 위기가 본격화했다. 연속해서 유럽의 경제위기,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며 선진국 경제의 성장률은 곤두박질쳤고 잠재성장률마저 0%대에 들어서 성장이 멈췄다. 기후위기의 영향까지 더 해져 2030년경부터 성장률 축소가 아니라 경제규모 자체가 축소되는 역성장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다른 한편, 중국, 러시아 등 자원과 인구 대국인 신흥공업국이 성장하며 미국과 유럽시장은 물론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 등 신흥시장까지 잠식해 들어갔다.

요컨대 미국의 세계시장 분할은 중국 등 신흥공업국의 세계시장의 잠식을 봉쇄해 잃어버린(잠식당한) 세계시장을 다시 찾기 위한 전략이다. 이를 통해 멈춰버린 성장엔진인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축적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시장조건을 만들고 있다.

신냉전 구도와 세계시장 분할
이처럼 현재 미국은 생산주의로 미화된 (국내적 수준의) 케인스주의적 전략이 아니라 생산지와 소비지를 통합한 세계시장의 분할과 재편을 포함한 제국주의적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미국 달러화 중심의 국제결제망이나 무역질서에서 러시아 배제를 분명히 했고, 각종 공급망 재편에서 특히 핵심 원료와 광물자원에 대해서는 이를 안보화, 군사화해 나가며 중국 중심의 공급망 원료 생산지 변경 또는 중국의 굴복을 이끌어 가고 있다. 특히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아 막대한 군비지출을 수반하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경제질서의 재편을 시도한다.

스태그플레이션 속에서 통화당국의 과잉자본 청산을 위한 금리인상과 함께 정부당국의 소비 진작, 수요확대를 위한 국가지출 확대가 고려된다. 특히 스태그플레이션 아래에서 민간소비, 민간투자 확대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가지출을 늘릴 수밖에는 없는데, 정부지출은 (뉴딜 같은) 공공투자 지출은 물론 군비 지출도 포함된다. 그런데, 공공투자지출은 지출규모나 회전속도가 군비나 전비 지출에 비해 느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이 몇 년 동안 쌓인 재고 무기를 한두 달의 전쟁으로 모두 소비할 수 있다. 게다가 새로운 무기나 군수물자를 요구에 맞게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수요를 동반한다. 벌써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 때문에 다른 나라와 정상적인 전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 재고가 떨어져 위험하다는 아우성이 솟구치고 있다. 이처럼 스태그플레이션(또는 공황) 아래에서 정부지출 특히 군비지출 요구 강력해지므로 군사 대립과 긴장 확대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역사적 경험도 일치하는데, 1929년 대공황은 뉴딜보다는 2차 세계대전이 일으킨 (과잉)자본 파괴와 막대한 전쟁비용 지출로 극복했다는 설명이 이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역시 앞선 설명과 같이 중앙은행인 연준의 급진적 고금리를 통한 과잉자본 청산과 신냉전 체제를 통한 군비지출 증대로 극복해 나갔다.

지난 3월 공개한 2023년도 미국 행정부의 예산안에 따르면, 2023년도 전체 예산은 5조 8,000억  달러(약 7,086조 원)로 지난해보다 3.5% 줄었으나 국방예산은 4% 늘어난 8,133억 달러로 역대 최대 규모였다. 그런데, 이 예산안이 상원과 하원 논의를 거치면서 국방예산이 작다며 의회에서 국방예산을 더 늘려 결국 8,400억 달러(1,121조 원) 규모로 통과됐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와 일본 그리고 한국은 전반적인 긴축예산 속에서도 국방예산은 거꾸로 증가해 역대급 규모를 보인다. 군사적 긴장이 확대하면 이 국방예산이 더 늘어나게 된다.

미국 주도의 세계시장, 세계경제질서 재편은 보조금 한두 푼 더 받아 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서쪽 하늘에 핏빛 구름을 몰고 와 노동자와 서민의 삶과 미래를 잿빛으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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