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트러스와 윤석열의 ‘부자감세’, 그 끝에 남는 것은?

  • 기사입력 2022.09.07 15:44
  • 최종수정 2022.09.13 10:38
  • 기자명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
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영국 새 총리로 트러스 전 외무장관이 당선됐다. 그는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세금을 감면하고 영국경제를 성장시키겠다고 약속했다. 트러스는 보수당 당 대표 후보 시절인 지난 4월 BBC에 출연해 “재분배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면 성장을 촉진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러스는 내년 법인세 최고세율을 19%에서 25%로 상향하는 안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는데, 300억 파운드(약47조3000억원) 규모의 감세 약속이 보수당원들의 호감을 산 것으로 분석된다.

덩달아 신이 난 곳은 한국 재벌신문들이다. 한국경제는 7일 사설에서 “트러스 신임 총리가 분배보다 성장, 증세 아닌 감세를 기치로 내건 것은 당연하다”며 “더욱 대견하고 믿음이 간다”고 밝혔다. 왕성한 기업 활동 여부가 국가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서울경제도 같은 날 사설에서 “글로벌 경제 패권 전쟁의 와중에 주요국들은 감세 정책 경쟁을 벌여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법인세 인하 법안의 국회통과를 주문했다.

하지만 트러스 신임 총리의 ‘부자 감세’와 윤석열·재벌신문의 ‘부자 감세’는 가는 길이 다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후임을 결정하는 보수당 대표 결선투표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마거릿 대처 시절을 함께한 보수당 원로들이 트러스 후보의 감세에 반대하고 나섰다. 마거릿 대처 집권기(1979~1990)에 활동했던 리프긴트 전 외교장관은 <가디언> 주말판인 <업저버>와의 인터뷰에서 “대처는 물가가 크게 오르는 시기가 아니어도 정부 차입을 통해 감세를 하자는 안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7월 25일, 한겨레). 트러스와 함께 결선투표에 진출한 수낵 전 재무장관은 트러스의 감세 정책에 대해 “물가오름세를 악화시키고 정부 부채를 다음 세대에 이전하는 부도덕한 공약이다”고 비판했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둘의 차이는 ‘감세냐’, ‘증세냐’가 아니다. ‘복지’를 위해 ‘정부의 차입을 늘릴 것인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둘 것인가’의 문제이다. 윤석열 정부는 “복지도 높이고 부자감세를 하면서 재정적자도 줄이겠다”고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부자감세를 하면서 재정 적자도 줄이려면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으며, 약자에 대한 복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

매일경제는 “트러스 총리 앞에 놓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며 “에너지 비용이 급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세정책을 펴면서 재정건전성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고 보도했다. 감세정책과 함께 부양책을 펼치면 재정건전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대대적인 감세 정책이 정부 차입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비판도 불식시키지 못했다”고 보도했으며, 중앙일보는 “파이낸셜타임즈가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증가하는 정부 부채, 감세와 국방비 지출에 대한 트러스의 약속은 2025년까지 약 600억 파운드(약94조원)의 재정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추산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이미 수십조원을 들여 현금 지원과 일시적 세금 인하 등의 대책을 최소 두 차례 이상 내놨다고 보도하면서 총리 취임 후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물가 급등으로 인한 생계비 지원 대책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정책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고 예상했다.

영국과 한국의 부자 감세 정책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정파적 이익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트러스 새 대표의 앞에 펼쳐진 것은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이다”고 보도했다. 영국 표준가구 에너지 요금의 상한이 연간 1,971파운드(314만원)에서 10월에는 연 3,549파운드(564만원)로 80% 급등한다. 영국중앙은행은 10월 물가상승률이 42년 만에 초고치인 13.3%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골드만삭스는 에너지 비용이 현재 속도로 계속 상승할 경우 내년 영국의 물가상승률이 22%에 달할 수 있다고 내다 봤다. 영국의 철도・지하철・버스・환경 등 공공부문에서 인플레이션에 따른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확산 중에 있다. 영국 시민사회가 급격한 에너지 가격 인상으로 직격탄을 맞는 서민들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을 요구하고 있고, <파이낸셜타임즈>도 지난달 12일 ‘감세’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감세는 궁핍한 사람들을 돕기에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사진1)

블룸버그는 “트러스 총리가 가계·기업을 위한 에너지 지원 패키지를 통해 에너지 요금 동결 방안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트러스 내각이 영국 가계의 에너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취임 후 18개월 동안 1300억파운드(206조 5800억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는 지원책 초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그럼 이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로이터 통신은 정부관계자를 인용해 정부 차입금으로 재원을 충당하고 10~15년에 걸쳐 에너지 세금으로 환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에너지 기업에 부유세(횡재세, 초과이윤세)를 부과해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제원 마련 방법은 여야의 입장이 다르지만, ‘국가 역할’은 차이가 없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와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매일경제는 트러스 내각의 유력한 재무부장관 후보인 쿼지 콰탱 산업부 장관이 파이낸셜타임즈에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독일을 제외하면 주요 7개국(G7) 중 가장 낮다며 재정 긴축을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기고했다고 보도했다. IMF 기준으로 2020년 영국의 부채 비율은 104.5%이며 한국은 47.9%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가 채무 급증으로 곧 망할 것처럼 보도한다. 독일의 국가 부채는 69.1%, 프랑스 115.1%, 미국 133.9%, 일본 254.1%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6일 서울신문 광화문라운지 강연에서 “재정에 의존하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빚이 많으면 우리 경제에 미래는 없다”며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하는 당위성을 피력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은 세계적 흐름을 역행하는 것으로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국가의 빚’ 때문에 경제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근거없는 미신’이 국가 경제를 다시 부도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지난 IMF 국가 부도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론이 재벌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잘못된 정보로 여론을 왜곡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언론의 책임을 다시 묻는다.

불평등의 시대, 저널리즘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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