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추석에 전을 부친 아들에게

  • 기사입력 2022.09.15 10:51
  • 최종수정 2022.09.16 09:37
  • 기자명 명인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추석에 전을 부친 아들에게

올해 성균관에서는 ‘차례상 간소화 및 표준화 방안’을 발표했다지? 심지어 전같이 기름진 음식을 제례 상에 올리는 것은 예법에 어긋난다고 했대. 명절마다 이른바 ‘진보 단체’에서는 ‘평등 명절’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더구나. 엄마는 궁금하다. 성균관과 그런 진보 단체들은 대체 ‘평등한 명절’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명절 음식을 간소화하고 음식 장만을 남성도 하면 평등한 명절? 

너는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할 때마다 여성들은 몽땅 부엌에 서 있고 남자들만 절을 하는 모양새가 너무너무 싫다고 했었지.

차례를 다 지내고 나면 너는 아침상을 물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표나게 설거지를 시작하곤 했다. 너는 그런 날 으레 노동하지 않는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고 싶어서 그런 건데, 당숙들이 ‘남자도 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고 엄마를 잘 ‘돕는다’며 용돈을 주면 더 화가 난다면서.

어느 해인가 엄마가 명절 파업을 선언했을 때, 노동은 몽땅 여성들 차지이고 의례나 잔치는 몽땅 남성들 차지인 그 명절을, 심지어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페미니스트인 엄마가 주도하는 기괴한 풍경을 보지 않게 된 것이 너무 반갑다고 했었어. 내가 명절에 가지 않는다고 그 공고한 가부장체제가 바뀔 것도 아닌데, 내가 안 가면 네 할머니나 당숙모들이 내 몫의 노동까지 떠안을 게 걸려서 파업을 주저하는 나에게 너는 이렇게 응원을 했지. 외할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는 외숙모가 외할아버지가 받으실 차례상을 차리고 엄마는 본 적도 없는 내 친가 조상들에게 올릴 음식을 장만하는 게 명절인데, 애초에 거기 어디 엄마 몫의 노동이 있느냐고. 할머니와 당숙모들이 느낄 상대적인 박탈감은 이해되지만, 그분들의 역사를 엄마가 다 떠안는 건 과하다면서 누구든 먼저 용기를 내야 혁명이 시작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랬던 명절 풍경이 이제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변화는 그동안 어렵게 고민하면서 조금씩 용기를 내왔던 우리의 노력보다 코로나 때문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구나. 팬데믹으로 몇 해째 친족들이 대거 모이는 일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이후 첫 추석을 맞은 거지. 너는 할아버지의 급격한 노쇠를 보니 돌아가시기 전까지 몇 번이나 더 남았을지 모를 명절을 쓸쓸하게 보내시게 하는 게 마음에 걸린다면서 할머니 댁엘 갔지. 

성균관의 발표가 무색하게도 이번 추석에 갖가지 전을 부친 너는 이미 알고 있던 거지? 전통 가족의 범주가 뿌리째 흔들리고 출산율이 0.8%를 찍은 마당에 이성애・남성・가족 중심으로 면면히 이어져 온 가부장제 대신에 전이나 문제 삼고 있는 자들이 내놓는 진단과 처방의 기막힘을.

그렇담 넌 혹시 이것도 알고 있을까? 

결혼 전에도 엄마는 명절이면 친구들과 모여서 음식을 만들었단다. 그리고 명절 같은 날, 더 쓸쓸해지는 곳에 찾아가서 떠들썩하게 먹고 마셨지. 어떤 해엔 이주노동자들의 농성장이었고, 어떤 해엔 장기투쟁사업장의 농성장이었단다. 그러니까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에게 명절은 감사와 나눔의 축제였던 거지. 한 해 동안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온 것에 대해, 또 내가 누리고 살아온 것들에 감사하며 평소에는 잘 해 먹지 않는 음식들, 엄마 어릴 적에 명절에나 맛볼 수 있었던 음식들을 장만하는 노동은 참 즐거웠단다. 그런 음식을 나누는 건 더 즐겁고 행복했지. 

우리에겐 혈연과 의무로 묶인 가족이 아니라, 가족이든 아니든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랑과 돌봄의 '관계'가 필요하다. 가족 역시 우리가 맺어온 관계 중 하나이니 우리도 서로 잘 돌보면 좋겠지. 그렇지만 가족이 최우선일 필요도 없고, 엄마는 너에게 가족 말고도 네가 돌보고 또 너를 돌보는 관계가 많기를 바란단다. 네가 맺고 살 그 관계들 속엔 명절 같은 감사와 나눔의 축제가 많았으면 좋겠고, 그럴 때 같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다양했으면 좋겠어. 아들아! 엄마가 지금까지 명절마다 끔찍한 저항감에 시달리며 했던 수고가, 어떤 사회적 압력도 강요도 없는 관계에서 네가 풍성하게 나누고자 할 때 너에게 본보기로 기억될 수 있다면, 그동안의 내 고통도 보람과 의미가 생길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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