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세계

[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채용 차별 해소, ‘공정’한 출발선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 기사입력 2022.09.16 09:35
  • 최종수정 2022.09.16 09:42
  • 기자명 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가’

‘20대 대선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말해 달라… 마스크를 좀 벗어주실 수 있겠냐. 얼굴 톤을 보고 싶다’

현재 내가 구직자라고 가정해보자. 면접 과정에서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떨까? 취업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자리, 결정권을 쥔 면접관을 마주한 그 짧은 순간을 위해 구직자들은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한다. 채용 정보를 나누는 온갖 커뮤니티에서 구직자들은 ‘결혼해서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예상질문에 대한 경험담을 나누고, 지방대 출신 혹은 비정규직 경력이라는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능력을 어떻게 강조해야 할지 조언을 구한다. ‘어떻게 답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조언이 난무하는 사회는 ‘어떤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원칙과 가이드라인이 부족한 사회의 자화상이다.

지난 8월 부산광역시 인권센터가 학생․시민을 대상으로 ‘구직과정에서의 차별행위 및 인격권 침해 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정치적 성향, 가족관계, 연애와 성관계 여부, 종교활동과 부모의 직업까지 업무와는 무관한 정보를 요구받은 경험이 세 번째로 높게 나타났다. 최근 1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고용노동부의 ‘2022년 상반기 채용절차법 집중 지도·점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구직자에게 키나 몸무게, 부모 학력 등을 요구하는 차별적인 채용 관행 또한 여전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성별, 나이, 용모, 학력 등 ‘면접관의 차별적인 발언’은 ‘지원조건의 제한’이나 ‘채용 시 우대조건’을 제외하고 구직자가 차별을 받았다고 느끼는 대표적인 이유로 꼽힐 만큼 공공연한 차별이다. (박귀천 외, 2011, 『기업 채용과정의 차별관행에 대한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용역보고서 참고)

작년 한국사회에서 여성 구직자들이 처한 차별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사건 이후에도 채용이나 면접 과정에서 차별적인 발언 및 질문을 들었다는 구직자들의 증언이 끊이지 않는다. 물론 차별적인 채용 관행을 변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대안 또한 제시되었다. 기존 「남녀고용평등법」및 「채용절차법」의 실질적인 해석과 적용, 노동위원회의 적극적인 차별판단 및 구제, 차별적인 채용 절차 및 인사 제도에 대한 점검과 평등한 채용 절차를 위한 가이드라인 적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기업은 구직자에 대해 ‘차별적 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한 것은 아니라며 차별 행위 자체를 발뺌하기 십상이다. 면접관의 차별적인 발언이나 질문에 채용 탈락 등 구직자에게 실질적인 불이익을 가져왔는지 결정적인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부는 용기 내어 문제제기한 피해자들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형국이다.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질문들을 통해서 저의 노동 가치를 폄하당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 성차별채용철폐 공동행동 “부당한 성차별 채용과정에 대한 제보자들의 목소리” 중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는 통·번역 인턴사원 면접에 응시한 구직자에게 히잡 착용 의사를 묻는 것은 ‘차별’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회사는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에서 다른 직원들은 히잡을 쓰지 않았는데 당신은 어떠한가를 그저 물었을 뿐, 실제로 채용 탈락을 결정한 이유는 진정인의 낮은 태도 점수와 어휘능력 때문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인권위는 면접에서 ‘직무능력이나 직접적인 업무 내용과 관련 없는’ 히잡 착용과 관련한 질문은 그 자체로 차별적 처우에 해당한다며 ‘차별’의 내용을 명확히 했다. 특히 사회적 소수자의 특성과 연관된 질문은 구직자에게 심리적인 위축감이나 모욕감을 줄 가능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채용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또한 지적한 바 있다. 한 공기업에서 여성 구직자에게 가정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하다보면 생기는 어려움에 대해서 질문한 면접을 차별로 판단한 사례와 마찬가지다.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일, 그래서 여성은 남성보다 야근이나 업무 몰입에서 불리한 조건이라는 고정관념 없이 이러한 질문은 가능하지 않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2020년에 펴낸 <평등정책 보고서-노동/일의 세계>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면접이라는 채용 단계는 면접관의 차별적인 편견이나 관점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암묵적인 사회적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적 관행과 기준이 큰 영향을 미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은 채용 시 성별이나 성별정체성, 종교․출신국가 등의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면접관의 관점을 드러냄으로써 다른 면접관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면접 점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바로 이것이 면접관이라는 ‘지위’에서 발생하는 영향력이며, 구직자에게는 실질적인 불이익을 가져오는 요소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서 차별적 질문에 마주하며 구직자들이 느끼는 위축감이나 모욕감, 좌절은 차별적인 채용 판단 기준과 관행, 구조적 차별로 인한 것이라기보다 개별적인 자신의 특성이나 능력, 통제력 문제로 수렴되기 쉽다.  

채용 성차별에 대한 가시적인 문제제기와 불공정 해소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이 쉽게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채용 절차에서의 차별적 질문이 그 자체로 ‘차별’에 해당한다는 사회적 원칙, 차별적 질문이 구직자에게 어떤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채용 차별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과정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필수적인 사회적 과제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모집․채용에서의 차별의 내용을 상세하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집․채용의 기회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류지원 및 면접 시 차별금지사유를 이유로 직무와 관련 없는 정보․질문․조건을 제시하거나, 요구하거나, 채용의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을 구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채용 성차별을 비롯해 정치적 사상, 인종, 장여, 외모 및 신체조건, 가족형태 및 가족구성, 사회적 지위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포괄적인’ 채용 차별을 ‘복합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점은 무엇보다 ‘모두의 일할 권리’를 위해 중요하다.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노동’을 기록한 희정 작가의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에는 스스로를 젠더퀴어로 정체화한, 하지만 사회에서는 남성으로 바라보는 한 구직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면접에서 ‘왜 (남성인데) 머리를 길렀냐’고 물어볼 것을 예상하고 ‘모발 기증을 하려고 한다’는 대답으로 대응하며 착한 이미지를 자신의 전략으로 활용한다. 그 외에도 자신만의 전략을 고민하며 홀로 분투하는 수많은 구직자들이 있을 테다. 노동자들이 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기 위해 각개전투 전략으로 고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공정하고 평등하게 일할 권리를 진전시키는 출발선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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